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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꿈 Aug 19. 2021

너의 노래

안녕하세요 민들레꿈 김해리입니다.


9시 정도면 천둥번개는 침대가 있는 안방으로 이동합니다. 커튼을 치고, 형광등을 끄고 수면등을 켭니다. 선풍기를 약풍으로 회전시키고 꺼짐을 예약합니다. 아이들은 자기 베개를 야무지게 배고 양 손에 인형을 하나씩 끌어안습니다. 때로는 제 팔베개를 요청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좌 천둥, 우 번개로 나란히 누워서 잠을 청합니다. 그리고 천둥이가 노래를 시작합니다.


아~야~빠~와와와~​


이것은 노래일까?


아이의 노래에는 특별한 가사가 없습니다.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아빠', '빠방', '오빠', '아멘'과 같은 단어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서로 전혀 연결되지 않습니다. 단어의 나열에 불과합니다. 가사나 의미가 없어도 노래가 될 수 있을까요? 천둥이가 부르는 음의 나열을 들으면서 '이것은 노래일까, 아닐까?'를 생각합니다.

그래도 노래다


아이는 약간 쉰 목소리로 방을 쩌렁쩌렁 울리며 노래합니다. 도중에 손을 인디언같이 '와와와'하기도 합니다. 노래를 시키지 않아도 아이는 신이 나서 노래합니다. 노래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 아이가 노래한다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자기 목소리로 소리와 음을 나열하는데, 감정을 담아서 자신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밤 천둥이가 노래를 자발적으로 부르지 않길래, 제가 아이에게 직접 요청했습니다.


천둥아, 노래 불러 줄래?


천둥이가 노래를 시작합니다. 제 입가에는 미소가 번집니다. 팬이 가수에게 직접 노래를 듣는 느낌이랄까요. 천둥이 노래를 듣고 번개까지 덩달아 부르니,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중창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에는 제가 노래를 불러달라고 해도, 아이는 웃기만 할 뿐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저는 그래도 웃습니다. '그래. 노래하고 싶을 때 해야 제맛이지'라고 생각하니, 웃음이 납니다. 아이의 노래에서 자발성을 발견했달까요.


노래는 너의 것


지인이 어린이집 교사로 일합니다. 제게 자신은 아이들을 위해 해주는 일이 적다고 말하지만, 저는 압니다. 그가 많은 일들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와 대화하다가 지인이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해가 지나면 본인이 맡았던 아이들은 상당수 동요를 외워서 부르게 된다고 합니다. 제가 어떤 동요를 선택해서 가르치는지 기준을 묻자,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동요들을 알려주었습니다. '참 좋은 말', '숲 속 풍경'과 같은 동요들입니다. 위 동요 두 곡만 들어보셔도 지인이 왜 좋은 동요라고 불렀는지 아실 겁니다. 평생 기억해서 불러도 좋을 노래, 함께 부르고 싶은 노래들입니다.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노래 역시 중요한 재산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래를 기억하고만 있다면 어디에 가든 어떤 상황이든 부를 수 있습니다. 노래는 혼자 부를 수도 있고, 여럿이 부를 수도 있습니다. 어려도 부를 수 있고 나이가 들어도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노래도 부르는 사람에 따라 얼마나 다른지 모릅니다. 나의 독특성, 개별성, 창조성을 드러낸달까요. 그런 면에서 노래할 수 있는 능력은 얼마나 소중한 능력인가요. 그래서 천둥이의 노래가 좋았습니다. 천둥이의 노래는 천둥이만이 부를 수 있는 것이고, 오롯이 천둥이의 것이며 아이가 노래할 수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아이처럼 저의 노래를 불러야겠습니다. 노래만 부르면 심심하니, 중간에 인디언처럼 '와와와' 해야겠습니다. 이웃님들 건강하세요.


이 글은 21년 7월에 쓴 글입니다. 원본은 네이버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https://m.blog.naver.com/dandelion_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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