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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꿈 Feb 17. 2022

허가구하다, 사과하다

안녕하세요 민들레꿈입니다. 저는 31개월에 접어드는 남매쌍둥이, 천둥(아들), 번개() 키우고 있습니다.


몇 주 전부터 번개가 제게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찢어도 돼?


번개가 작은 종이를 고사리 손에 들고, 찢어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자, 저는 얼떨결에 그래라고 답했습니다. 어느 날은 번개가 방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보고는 "이거 만져도 돼?"라고 묻습니다. 저는 "응"이라고 답했습니다. 아이가 제게 허가를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이가 제 허가를 구한다는 사실에 당황했습니다. 제가 "안돼"라는 말로 아이 행동을 하루에도 몇 번씩 제한했는데, 어느 덧 아이가 먼저 자신이 행동해도 될지 여부를 제게 확인하는 겁니다. 저는 아이에게 "안돼"를 수백번 외치지 않아도 되겠단 사실에 잠시 기분 좋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이에게 진지하게 허락을 구한 적이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른, 너는 아기란 생각에 내 생각대로 뭐든지 내가 결정하고, 내가 지시하고, 빨리 빨리 해내려고 했습니다. 아이가 달라진만큼 저도 달라져야겠지요. 나도 번개에게 허락을 구하기로 다짐했습니다.


번개야, 오줌쌌는데 바지 갈아입혀도 돼?

번개는 허락을 구하는 엄마 마음을 알까요.


천둥이는 우리집 대표 떼쟁이, 울보입니다. 아동심리학자 하임 기너트 선생님이 아이에게 꼬리표 붙이지 말라고 했지만, 천둥이에게는 위 별명이 얼마나 찰떡인지 모릅니다. 어느 날 천둥이가 제게 한참 떼를 써서, 저는 무척 화났습니다. 눈은 커졌고 콧김이 절로 나오며 가슴이 들썩들썩했지요. 이 녀석을 어떻게 하나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는데, 천둥이가 촉촉한 눈망울로 말합니다.


엄마, 미안해.


아, 천둥이 31개월 역사 상 처음으로 제게 사과했습니다. 아이 사과를 받자 제 마음이 몽글몽글해집니다. 너도 이제 사과를 할 줄 아는구나. 엄마 마음이 아프고 속상하고 화난 사실을 알고, 네 나름 관계 복구를 위해 노력하는구나. 아이 사과를 받으니, 이제 제가 미안합니다. 왜 제가 미안할까요.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나도 사과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엄마도 미안해"라고 말하며 천둥이를 안았습니다. 꼬맹이들이 서로 싸운 후에, 잘못한 아이가 "미안해"라고 말하면 잘못하지 않은 쪽도 "미안해"라고 말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너를 미워해서 미안해", "너를 떼쟁이로만 오해해서 미안해", "너를 다 알지 못하면서 다 아는 척해서 미안해", "네가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걸 몰라서 미안해"와 같은 오만가지 미안한 이유를 담아 천둥이를 꼭 안았습니다. 세살배기 천둥이 작은 품은 엄마에게도 참 따뜻합니다.


이 글은 2021. 12. 27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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