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 일하던 회사에서 여자 선배를 동경했다. 그는 스타렉스 운전도 잘하고 일도 척척 해내고 불만이 있으면 대차게 요구해서 원하는 바를 얻어냈다. 어느 날 선배가 운전하는 차에서 단둘이 이야기하게 됐다. 선배 말이 어젯밤에 외로워서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내가 멀뚱멀뚱 듣고 있자, 선배는 외로워서 울어본 일이 없냐고 되물었다. 나는 답했다. "외로운 게 뭔지 모르겠어요" 외로움을 모르는데, 울 수가 있겠나. 나는 외로워서 울기까지 거의 십 년이 걸렸다.
감정을 억압하는 습관은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학창 시절부터 슬픈 노래를 의도적으로 피했다. 슬픈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잘 울지 않지만,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쉽게 울었고 감정에서 쉽사리 나오지 못했다. 내게 감정이란, 언제 덮칠지 모르는 쓰나미 같고, 느끼면 깊이깊이 빠지는 늪 같았다. 따라서 어떤 감정이든 되도록 느끼지 않는 편이 나았다.
20대 후반 상담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다음 해 여러 이유로 급격히 우울해져 상담을 받았다. 상담 선생님이 그때 어떤 마음이었나, 어떤 기분이었나,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물으면, 오리무중이었다. 무슨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버벅거리는 컴퓨터 같고, 참조할 것이 없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 슬픔과 억울함, 괴로움이 팍 터져 나왔다. 상담 선생님 눈에 고인 눈물을 보고, 내가 슬프고 억울하고 괴로울만했구나 인정받는 듯했다. 그때부터 두텁고 높은 둑에 작은 균열이 생기며, 감정이 내 삶에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후로 많이 괴로웠다. 툭하면 울고, 툭하면 슬프고, 툭하면 아프고, 툭하면 외로웠다. 예전 같으면 지나갈 사소한 사건, 떠오르는 기억에 참 많이 아팠다. 하지만 장점도 있었다. 세상이 굉장히 생생하게 느껴졌다. 작은 들꽃이 예쁘고 하늘은 한없이 푸르르고 풀벌레 소리 가득한 공원길이 쓸쓸하면서 정겨웠다. 온 세상이 흑백 티브이에서 칼라 티브이로 변한 것 같았다. 나는 잘 울고 잘 웃는 사람이 되었다.
살면서 몇 번 수술하면서 경험한 바로, 마비가 풀릴 때 가장 아프다. 마비가 풀리면 온 감각이 다 살아난다. 아픈 감각도 강렬하게 생생하다. 하지만 기분 좋은 감각, 행복하고 따스한 느낌도 분명히 살아난다. 마비는 폭력 생존자로서 내게 꼭 필요한 일, 고마운 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멀쩡히 살아남았겠나. 하지만 마비에서 풀린 일 역시 내 삶에 손꼽을 복이다. 덕분에 나는 아이 눈을 들여다보며 말할 수 있다. "속상했어? 화났어? 서운했어? 슬펐어?" 내가 많이 울고 많이 웃는 사람이 된 덕에,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받아주고 이름 붙여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