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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리 Nov 27. 2024

미래를 미리 계산하지 마라(2) - 세이노

미래는 없다. 오늘만 산다.



p. 54

십몇 년 전 음향기기 사업을 했을 때, 왜 그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고아 출신의 한 젊은 직원을 고층 건물 옥상으로 데리고 올라가 밤거리를 보여 주면서, "저기 저 성냥갑 같은 수많은 아파트들 중 네가 들어가 쉴 곳이 하나도 없어 보이지?"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과거에 그랬듯이 그 역시 같은 생각에 절망하고 있었다(어쩌면 당신도 강남의 수많은 아파트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절망할지 모른다.) 


(* 저는 태어나서 연립주택, 아파트, 연립 주택, 아파트, 번갈아 가면서 지냈습니다. 이사를 수도 없이 다녔지요. 늘 전셋집에서만 살다가 부모님의 악착같은 노력으로 50대가 되서야 두 분의 자가를 마련하셨습니다. 꽤나 좋은 아파트가 아닐지라도 그 때의 든든함은 이루 말할 수 없으셨겠지요. 그 동안에 부모님의 고생은 노후는 그걸로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합니다. 부모님의 노후자금을 건들이고 싶지 않습니다. 두 분이 얼마나 고생해서 사셨는지를 알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결혼할 때 한 푼도 받기 싫습니다.)


(* 20대 중반 연애할 때 남자친구도 차가 없고, 저도 차가 없어서 뚜벅이 데이트를 많이 했습니다. 수원과 천안 그리 장거리는 아니지만 천안 구석을 다 돌아다녔고, 그래서 다시 천안으로 왔을 땐 같이 안 걸었던 곳이 없어서 꽤나 힘들었습니다. 수원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2년 이내로 쇼부 낼게 아니면 헤어지는게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4년이 지나서야 그 다음 남자들을 만나고서야 잊혀지나봅니다. 썅. 내 청춘 내 비용 ㅋㅋㅋ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다음 열차 알아봐야죠. 인생이란 그렇습니다. 아무튼 뚜벅이 시절 산책을 좋아하던 저는 수원 광교 호수공원에도 갔습니다. 그때 이휘재 연예인이 살았던 시절이었던 것 같은데 둘 다 거기를 걸으면서 "우와" 이러기만 했지 오늘 저녁은 피자 먹을까 떡볶이 먹을까 그러고 있었습니다. 



 구 남자친구는 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언제는 피자 대신 떡볶이 먹고 싶다고 얘길하니까 갑자기 길 한복판에 서서 저한테 미안하다고 그러다고요. 그렇게 자존심부리며 싸울땐 미안하다는 말을 곧죽어도 안하는 사람이 갑자기 왜 미안해하는지 몰라서. 더 맛있는거 사주고 싶은데 떡볶이나 피자만 사주고 매일 같은 데이트를 해주는게 미안했나 봅니다. 그래서 저는 무궁화호 타고 놀아가는 길에 비밀 계정에 글을 하나 남겼습니다. 반복하는 데이트일지라도 나는 너무 재밌고 좋다고요. 뭐 비싼 아파트, 비싼 데이트 코스를 바라고 만나는게 아니라 같이 있으면 재밌고 좋으니까요. 그러니까 중고차 300만원짜리를 사가지고 와서 더 이곳 저곳 쏘다녔지요. 그 차 마저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는데 주변 형들이 타는 좋은 외제차들? 그게 뭐라고. 그냥 대가리 겉멋든 형들이 뭐가 멋있다고 그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돈이 천 만원이든 1억이 든 만약 좋아하는 여자가 꽃뱀, 김치녀가 아닌 이상 내 남자친구가 얼마를 벌든 그건 중요치 않습니다. 이러면 또 대가리 꽃밭소리 들으려나? 모르겠네요. 뭐 닭대가리나 꽃밭이나 내가 무슨 남한테 피해주는 것도 아닌데 그쵸? 중요한 건 그놈이 그놈 그연이 그연이라 내면의 케미가 맞고 취미가 맞는 사람 만나서 같이 늙어갈 죽마고우 한 명이면 그뿐이고, 그 죽마고우마저 질릴 수가 있다는 게 팩트입니다. 2년 섹스 어필 이후가 진짜 케미인데 7년 8년을 만나고 헤어지는게 포인트가 아니라 7년 8년간 함께 쌓아온 시간이 중요하겠지요.)   


그리고 그날 밤 나는 그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내 밑에서 3년 정도 일을 어떻게 하는지를 배웠고, 그 뒤 독립하여 줄곧 용산에서 1인 비즈니스를 해 왔는데 5, 6년 전에 결혼도 하고 아파트도 장만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아직도 용산 전자상가에 있다. 지금 상신에게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건물 옥상에서 수많은 아파트 불빛들을 바라보며 내가 그 직원에게 건넸던 말들이다. 


(* 전자상가 한 번 놀러가야겠네요. 옛날 감성 느므 좋아요. b 그리고 저는 고아에 젊은 친구도 아니지만 같이 옥상에 있었던 것 처럼 잘 귀담아 듣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면 된다'라고 말하였지만 나는 도무지 할 것이 없었다. 뭘 하면 된다는 것인지 도대체 할 수가 없었다. 


(* 제 고등학교 동창 친구 4명이랑 공주 숙소에 놀러갔던 적이 있습니다. 한 친구는 운전 담당이라 피곤해서 일찍 잠들고, 나머지 두 친구들이랑 수다를 떨었는데 그때도 직업병인지 그냥 친구들이 좌우명이 궁금해서 물어봤는 데 , 유일하게 J 유형인 친구만 "하면 된다." 이 4글자를 내 뱉더라고요. P 유형인 저와 나머지 한 친구는 빵터졌습니다. 근데 지금 보니까 그 J 유형 친구만 멋진 남편분을 만나서 결혼하고, 임용고시도 붙고, "하면 된다." 처럼 해내더라고요. 

 멋진 친구입니다. 세이노 선생님 책을 읽는다고 냄새 풍길때 유일하게 먼저 선톡으로 본인도 그 책을 읽고 있다고 마음으로 많이 응원하고 있다고 연락 준 친구입니다. 월봉고 고등학생때 콜로세움이라고 원형인 공간이 있는데 점심 먹고 나면 거기를 같이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친구야 성공해라! 넌 진짜 하면 된다. 성공만 해라. 나도 마음으로 많이 응원하고 있다.)


군 제대 후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며 대학생도 아니었다. 홀로 세상에 던져진 가난한 청년에게 '하면 된다'라는 말은 정말 사기나 다름 없었다. 아침 햇살을 가슴 벅차게 안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는 지긋지긋한 가난이었다. 라면 살 돈도 없어서 라면 스프만을 얻어다가 양은 냄비에 물을 붓고 연탄불 위에 끓인 뒤 거기에 다 식어 빠진 밥을 김치도 없이 계속 먹어보아라. 무슨 희망이 있다고 살맛이 나겠는가. 


(*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가난이 어디까지의 가난인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똥꼬가 찢어지게 가난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기초수급생활을 해본 적은 없으니까요. 근데도 나약한 소리를 하고 자빠졌었네요. 배때지 부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나약한 소리한 닭대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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