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은 사치다
P. 68-69
실직을 당한 친구가 있었다.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고 몇 개월을 고민하고 술에 취해 있는 모습을 보았다. 고민의 핵심은 간단하다. 취직이 안 된 다는 것이다. 왜 안 될까? 경기가 어려워서? 천만의 말씀이다. 핑계를 외부에서 찾지 말라. 채용될 만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이 나온다. 채용될 만한 사람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 맞다. 실직이든 실연이든 그 고민과 상처에 취해 있는 모습은 딱히 반갑지 않은데 그렇다고 어느 누가 그런 아픔의 과정 없이. 성장통 없이 성장하는 사람이 있을까? 배트맨 조커도 다 나름의 사연들이 있다. 범죄자에 사연이 없다고 하지만 그 범죄자에 사람 자가 붙는다. 그의 유년시절이 범죄에 면죄부를 줄 순 없지만 그의 사연 또한 살펴볼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같은 뱃속에서 태어났어도 기질이 다 다르듯이. 고유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슬프고, 화나는 감정을 온전히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간 조차 주지 않고 다그치는 새끼들은 아주 싸닥션을 갈겨 주고 싶다. 모든 감정은 소중하다고 가르쳐 놓고선 좋은 슬픔이와 기쁨이 뭐 이런 감정만 보이게 한다. 만약 분노나 두려움 불안감이 보이면 그게 무슨 그 사람이 나약하고 잘못인 것 마냥 물어뜯기 바쁘다.
내가 울고 있을 때 호들갑떨면서 다가오는 게 아니라 모른 척 휴지를 쓱 하고 건내준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에게 베스트 엄지척을 준다. 위로에도 방법이 천차만별인데 위로한다고 모두 위로가 아니다. 어떻게 위로해야하는지도 가르쳐줘야 할 판이다. 언어, 영어, 수리, 외국어만 가르칠게 아니라 어떻게 사람과 관계를 쌓아야 하는 지도 대인관계 훈련이 정신의료기관 프로그램에만 있어야 하는가? 아닌데? 학교든 회사든 대인관계훈련, 정서관리 훈련들은 필히 하셔라. 국회에서도 대인관계훈련, 정서관리훈련 넣어드려야 할 판이다.)
(* 핑계를 외부에서 찾지 마라. 본인이 뽑힐 깜냥이 아직 안되서 그렇다. 그러면 무엇을 보완해야하는지를 여쭤보고 답변이 없으면 찾아내야한다. 찾아 내기 전까지 다른 일을 하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그래야지 손 놓고 있지 말란 소리다. 손 놓을 때는 하도 처먹어서 뱃살이 뽈록 나왔을 때 숟가락을 내려 놓을 때만 내려놔라. 나는 다이어트 하고 싶어서 카톡명에 "수저를 내려 놓는다." 이런 문구를 썼나? 그랬더니 아빠가 부리나케 카톡이 왔다. 전화가 왔나? 수저를 내려놓는다는 표현은 죽겠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거였나보다. 그래서 걱정이 되셨나보다. 딸래미는 그런거 잘 모르고, 그냥 하도 처먹고 운동안해서 살 빼고 싶어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말이었다. 수저좀 내려놔라. 도야지야. 라는 의미였는데 그러니 세대차이가 아니라 나는 닭대가리라는 것이다. )
앤드류 매튜스는 <마음가는 대로 해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도 하고 공부를 하고 사람들을 사귀면서 최대한으로 노력하고 있는데도 인생에서 좋은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여태껏 본 적이 없다."
(* 새벽에 일어나고 있고, 운동도 하고 있고, 공부도 하고 있다. 사람 사귀는 건 후순위라 뒷전으로 두고 있다. 좋은 일 그냥 평화로운 삶이 좋은 일이다. 별 거 없다.)
나는 올빼미 체질이어서 늦게 자기에 새벽에 일어나지는 않지만 그의 말을 믿는다. 고민이 많다고 해서 한숨 쉬지 마라. 고민은 당신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아 그대로 실행하라. 해결책이 보이지 않으면 무시하라. 고민하나 안 하나 결과는 똑같지 않은가. 그러므로 고민은 10분만 하라.
(* 내가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에서 만난 10대 자살시도자 친구에게 자살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해서 나는 자살생각을 애써 없애지 말라고 그랬다. 스탑워치를 해놓고 더도 말고 10분만, 자살생각만 미친듯이 해보라고 했다. 물론 자살 도구는 없어야 한다. 근데 막상 10분 내내 몰입해서 자살생각만 하라고 하니까 또 그 10분을 채우기 어려워 한다. 만약 자살생각이 시도 때도 없이 든다면 그냥 각잡고 스탑워치 해두고 10분 동안 자살만 생각해봐라. 그 10분 채우기도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그 상담실에서 10분간 노래를 틀어놓고, 자살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10분 채우기는 어려웠나? 아무튼 혹시나 나와의 상담을 끝나고 밖으로 나가서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또 자살생각이 든다면 언제든 스탑워치를 키고 자살만 생각하기를. 자살 동조가 아니라 생각은 생각일뿐. 물론 음독시도를 했던 친구고 결국엔 그 친구는 투신이 생각날때 유일하게 떠오르는 사람이 나 뿐이라서 119도 아니고 112도 아니고 109도 아니고 내 내선번호로 전화를 줬다. 너무 죽고싶은데 생각나는게 나 뿐이라고, 그래서 전화를 했는데 나도 직감이라는 게 있다. 이 친구 진짜 까딱하다간 뛰어내리겠구나. 주소를 받고 싶어도 남자친구 집이라 그 남자에겐 피해를 주기 싫어했다. 그래서 나는 그랬다. 그럼 나를 만나러 와줄 수 있냐고, 언제고 기다리겠다고. 근데 그 친구는 이유는 간단했다. 부모님의 불신을 풀어주길 바랬다. 자녀-부모 서로의 신뢰가 무너질대로 무너진 사이에 집 밖을 나갈때마다 따라붙는 부모님, 의심의 눈초리를 하는 부모님이 숨막혔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 밖에 외간 남자들은 부모만큼이나 따뜻한 사랑을 주는게아니라 지 욕정 풀려고 하는 새끼들도 태반이라서 나는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물어보았고, 나도 10대 친구 입장, 부모입장 조율하느라 머리를 썼다. 위기팀 같은경우라면 내가 외근을 걸어놓고 출장이라도 가겠지만 사무실 킵인 환경에서는 다른 응급시도자가 생길지도 모르고 112 신고는 원치 않아하고, 112 신고는 그 친구와의 라포를 깨는 행위고 머리가 아팠다. 조언을 해줄 지도자는 없었다. 정신과 과장님도 그만 두고, 새로운 닥터는 뽑히지도 않은 상태였다. 혹여나 그 마지막 나를 찾은 전화가 인생에서 마지막 전화가 될까봐 그 두려움과 불안감은 내 스스로를 갉아먹었고, 그 와중에 웃고 떠드는 팀원한테 불똥이 튀기 마련이다. 누구는 삶을 앞다투고 있는데 빙수를 먹자고 하거나, 뭐를 하자고 하는 일들이 나에겐 하찮아 보였다. 하지만 어쩌겠냐. 담당자가 아니면 본인 담당아니면 그 누구도 이 감정을 어찌아랴. 자살은 그렇다. 내 탓은 아니지만 내 탓처럼 느껴지게 된다.
내가 면담을 끊으면 그 친구는 의지할 곳이 하나 사라지는데 그래도 되나? 그렇게 많은 환자들을 만날 수록 그들의 생명이 내 관할도 아닌데 버거워지기 시작한다. 나도 의지하고 싶었다. 그게 다였다. 다행히도 그 친구는 좋은 사람을 만나서 영화도 보고 즐겁게 데이트 하는 모습을 프사로 봤다. 그걸로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인생 별거 없다. 문제는 가족간의 갈등, 사회적 문제, 스스로를 갉아먹는 행동 거기서 얼마나 본인이 깨우치고 제 3자의 시선으로 조율해줄 사람이 있는가가 중점인 것 같다. 나한텐 세이노 책이 그런 역할을 해줬다. 뭐 다들 자신만의 잣대로 나를 평가하러 들거나, 나에 대해 100% 알지못하며 단편적인 부분만 놓고 평가를 하고 어쩌구 저쩌구 하는 그 블라블라에 굳이 끼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눈에 거슬리는 몇몇 종자들이 있었다. 그 뿐이다. 아무튼 세상은 착한 사람이 더 많다고? 글쎄다. 그렇게 믿고 살다가 대가리가 깨지기 일쑤니까. 너무 꽃밭처럼 생각해서도 안 된다. 언제나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는 걸 염두하고 지내야 나중에 대성통곡하는 일이 덜하다.)
고민과 문제를 혼동하지 마라. 고민은 마음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운다는 뜻이고, 문제는 해답 혹은 해결이 요구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고민이 어떤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고민은 중지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 그냥 해라. 결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냥 해라. 결과를 바라고 하지 마라. 그냥 해라. 그게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