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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내 세상

유영철 편지 리뷰

조회수가 꽤 높아서 수정합니다.

by 쏘리

https://www.seoul.co.kr/news/plan/crime-victim-report/2024/09/30/20240930500177

유영철, 영화 ‘추격자’ 주인공 실재 인물에 23통 편지 보내


현학적 표현 쓰며 지식 과시…반성 없이 자기 합리화가 대다수

(*현학적 : 학식이 있음을 자랑하는 것.)



유영철 자필 편지와 내용



지난 2004년 유영철로부터 여자친구를 잃은 정삼영(가명·51)씨는 5년 전부터 그와 편지를 주고받고 있다. 정씨는 유영철을 다룬 영화 ‘추격자’의 주인공 엄중호(김윤석 분)의 실재 인물로 유영철을 경찰에 최초로 신고한 인물이기도 하다. 사건 당시 윤락업을 했던 정씨는 자신과 일했던 여성 중 유영철에게 살해당했음에도 파악되지 않은 피해자가 더 있다고 생각하고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여자친구를 왜 살해했는지 ‘그놈’ 입으로 직접 듣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처음엔 반응이 없던 유영철은 정씨의 편지가 계속되자 최근까지 23통(134페이지)의 답장을 보냈다.서울신문은 30일 정씨를 여러 차례 설득한 끝에 입수한 ‘유영철의 편지’를 일부 공개한다. 20년이란 시간이 그를 조금이라도 교화시켰는지 분석하고, 우리 사회가 범죄 피해자 지원을 위해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환기하기 위해서다. 정씨도 이런 취지에 공감하며 편지를 공개하는 것에 동의했다. ‘살인마의 글’이 여과 없이 전해져 피해자들이 또 다른 아픔을 겪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한국신문윤리위원회 강령을 준수하며 공개할 부분을 골랐다. 편지 원문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일부 오타나 비문은 수정하지 않았다.


“(내가 죽인 네 여자친구는) 약쟁이에다 여러 사업가에게 매달 돈을 받는 노리개일 뿐이었어. 너 혼자 착각한 것일 뿐이야. (파악되지 않은 피해자 시신들은) 더 밝혀지면 충격적일 것 같아서 그냥 묻고 가기로 했다. 내 자식들을 생각하면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어서.”



(* 영화 추격자를 한 7번 정도 봤었다. 왜 7번씩이나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시 보라면 못 볼 것 같다. 왜냐면, 실화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가 유영철 사건을 모티브화 해서 만든거였다니. 살인의 추억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임은 알았지만, 추격자는 실화가 아닌데도 너무 영화가 배우가 탄탄해서 많이 봤었다. 근데 지금은 다르게 느껴진다.)



‘보내는 사람 대구 우체국 柳永哲’. 겉봉투에 자신의 이름을 정갈하게 한자로 적은 유영철은 필체도 깔끔했다. 하지만 반성과 사죄가 조금이라도 담겨 있을 것이란 기대와 달리 조롱과 비웃음으로 편지는 시작됐다. 이 편지들은 정씨가 유영철에게 “가족처럼 데리고 있었는데 실종된 여성 4명의 시신을 아직도 찾지 못했다. 그들을 묻은 장소라도 알려달라”고 호소한 것에 대한 답장이다. 정씨는 2018년부터 유영철에게 200통 넘는 편지를 썼고, 이듬해 8월부터 답장을 받았다.


유영철은 시신 행방을 묻는 정씨 요구에는 ‘묻고 가겠다’라며 단칼에 잘랐다. 그는 “짜장면 먹느라 내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던, 쉽게 날 도주하게 만든 경찰들까지 나중에서야 심각성을 깨닫고 갖은 사탕발림과 당근으로 행방불명자에 대한 자백을 회유했지만 나는 오히려 더 밝혀지면 너무 충격일 것 같아서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어”라고만 했다. 이어 “여기저기서 파장은 고려하지 않고 양심선언만 하라고 거래를 제안하고 있는데 응할 리 없고, 나는 그저 쥐 죽은 듯이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경찰에 체포될 당시 유흥업소 여성과 부유층 등 26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다만 수사와 재판을 통해 최종적으로 인정된 피해자는 20명이다.


유영철이 추가 범행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 이유는 자녀들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냉혈한이 자식들 때문에 주저한다고 하면 코웃음들 치겠지만 자식들이 새로운 사실을 뉴스를 통해 듣게 된다면 다시 흔들릴 것이고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증오가 커질 수밖에 없지.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하는 게 우선이라서 신중할 수밖에 없어”라고 했다.



(* 의외였다. 결국 살인자에게도 가족이란 존재는 이렇게 큰 존재였나. 가족을 생각했더라면 그러지 못했을 것 같다.)



그는 정씨의 질문에는 제대로 답하지 않으면서도 “무엇보다 내가 기다린 말은 애들 소식이었어. 연일 애들 꿈을 꾸고 보고 싶은데 그 소식을 전해준다고 해놓고 왜 아무런 말이 없(*유영철이 답장을 안 하다가 답장을 한 이유는 이게 가장 크다.) ”라고 되묻기도 했다.



또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우리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땐데 지금도 아들은 여전히 날 괴물 취급하고, 딸은 날 ‘불쌍한 인간일 뿐’이라고 했다고 해”라고 자조 섞인 반응도 보였다.



그는 살인을 저지를 당시 마약을 투약했던 사실도 털어놨다.



(* 마약이 문제다. 살인도 문제다. 마약을 파는 놈, 사는 놈. 때찌해야한다.)

(*솔직히 알고도 안 잡는거아니냐 이정도면)



그는 “오피스텔 화장실에서 뼈와 살을 분리하던 중 얼굴에 피가 튄 모습을 보고 내가 약을 끊게 됐어”라며 “거울 속에 비친 그놈은 웃고 있었는데 나는 울고 있더라. 약에 의한 환각이었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날 체포할 당시) 약 기운에 그랬다는 것도 전혀 파악 못하더라. 정신과 검사만 했고 약 검사는 한 번도 안 했으니까”라고 했다. 이어 “사이코패스는 나의 수식어처럼 대명사가 됐어” “재수 없게 여론의 장난질로 이어졌고 난 여전히 유배 생활이 길어졌지”라고 한탄했다.



끔찍하게 저지른 살인을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유영철은 경찰에게 붙잡혔을 당시도 “부유층은 각성하고 여자들은 함부로 몸을 굴리지 마라”고 했는데, 20년간 수감 생활을 하면서도 반성의 기미라곤 없었다. 그는 편지에서 “(내가 죽인 사람 중) 오직 사치와 환락 파티에 빠졌던 멀쩡한 여대생, 낮에는 요조숙녀로 신부수업을 받다가 밤에는 즐기는 가시나, 남자를 농락하는 가시나 등이 있었으니 세상은 요지경”이라며 피해자들을 조롱했다. 또 그는 “‘신은 죽었다’라는 니체처럼 나 또한 신이 결코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교회 옆 부유층만을 대상으로 삼았어”라며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니체의 별명처럼 여느 살인자들과 다르게 내가 칼이 아닌 망치를 든 이유”라고 했다.



다른 피해자에 대해서도 “욕하고 대들지만 않았어도 안 죽였다”고 비아냥댔다. 심지어 “누가 내게 아우라가 느껴진다고 하더라. 사람을 좀 죽이면 그런 게 느껴지나? 나 같은 캐릭터가 흔한 건 아니지”라며 살인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도 있었다.



편지에는 유독 어린 시절 얘기도 많았다. 그는 “가난하고 힘이 없어도 사회의 번듯한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막상 현실을 접하자 가진 자들의 장난질이라는 것을 알아버렸어”라며 “고작 15살밖에 안 됐던 내가 가장 크게 충격을 받았던 건 여자들이 사랑을 명목으로 너무나 쉽게 몸을 판다는 것이었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8살 무렵까지 용산역 앞 창녀촌에 살았는데 그때 피임기구 심부름도 많이 하곤 했어. 당시 아버지는 술과 노름으로 돈을 탕진하고 형은 가출했어. 종일 굶는 것은 기본이었어”라며 “어렸던 여동생과 난 만화 가게에 달린 방에서 술집 여자였던 계모와 함께 지냈는데 학대가 싫어서 여동생과 집을 나오기도 했었지”라고 했다. 자신의 범행이 불우한 어린 시절 탓이라고 정당화 것으로 보인다.



사형수로서의 신세 한탄도 있었다. 유영철은 “단 하루만이라도 어머니와 뭘 할 수 없을까 명상에 잠겨봤어.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어. 생각만으로 눈시울이 뜨겁더라”



(* 이게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지만, 살인자에게도 진심은 있다. 살인 범죄는 절대 정당화 될 수 없지만. 그에게도 친모와 정서적 교류가 부재한 것에 대한 아쉬움. 자신의 한 행위에 대한 죄송함은 피해자가 아닌 친어머니에게 좋지 못한 아들로서 성장한 것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이 있다. 그 마음으로 인해 눈물이 흐른다고 한다.)



고 심경을 밝혔다. 그는 “사형수로 살아가는 십 몇년 동안 운동장도 안 나갔어. (운동장은 나가시지.) 시한부 인생이 바라는 게 뭘까? 좀 더 사는 것?”이라며 “누가 ‘세월’이라는 놈에게는 고통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했는지는 몰라도 내겐 해당하지 않아”



(* 여기서 나오는 고통은 그간 유년시절에 대한 자신의 경험에 대한 고통을 의미한다. 그 고통은 형량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친모와의 따뜻한 교류, 가장으로서의 존경, 인간적인 따뜻한 사랑을 원한다.)



라고 썼다. 또 “(편지 답장을 쓰는 것도) 사형수일 뿐이기에 모든 게 부질없다고 여겨져”라고 했다.



그는 “흉악범들은 노쇠화가 될 때까지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만이 범죄 억제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힘이 없어도 사회의 번듯한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막상 현실을 접하자 가진 자들의 장난질이라는 것을 알아버렸어”라며 “고작 15살밖에 안 됐던 내가 가장 크게 충격을 받았던 건 여자들이 사랑을 명목으로 너무나 쉽게 몸을 판다는 것이었지”라고 했다.



(* 이건 나도 동의하는 바이나,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은 재발을 방지하기 위함, 그리고 죄에 대한 형량으로 절대적인 물리적 시간을 뺏어가기 위함이다. 하지만 유영철은이 접근하는 방법은 이렇게 한다 한들 범죄자들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점. 범죄를 줄어들게 하려면,



1. 가진 자들의 장난질.


2. 여성의 가벼운 성관계.



이 두 가지에 대한 심판을 자꾸 본인이 살인으로 하면 되는게 아닌데.. 나는 서른살이 지나서야 가진 자들의 장난질을 알게되고 나는 여성이지만 가벼운 성관계들이 난무하다는 것도 알게 되어서 그놈이 그놈이고 그년이 그년이고 같은 걸 알고 나서 세상이 왜 이리 썩었나 싶었다. 그 동안 내가 생각했던 세상은 티비로든, 교과서에든 다 착한 사람, 도와주고, 아껴주고, 서로 보살펴주고, 비리, 뇌물은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어른이란 그런걸 줄 알았는데 어른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대가리가 깨졌다. 가정이 있어도 성매매를 하는 남성, 한 학급 여중생을 딥페이크로 하는 남학생들 그걸로 자기 고추를 자위하는 남자들. 내가 사랑한 그 남자친구도 N번방 사건이 터졌을때, 구라로 영상을 올리고 돈을 벌어볼까를 그 8시 뉴스에 조주빈 신상이 터졌을때 원룸에서 밥을 먹으면서내 뱉은 말이 그 말이라서 참.


그때는 내가 아무리 개그코드가 맞아도 이건 아니지 않나 싶어서 노발대발했더니 나에게돌아오는 말 소연아 너가 너무 올곧은거 아니냐고. 시발 그럼 이게 정상인데 나를 자꾸 비정상으로 몰아가는 그 샹련들 샹놈들의 주둥이들, 어른갖지도 않았던 내가 어른이라고 믿었던 그 어른같지도 않은 개돼지 같은 연놈들이 내 꽃밭을 짓밟았다. 그러고 선 뭐? 내가 디프레션? 우울증? ㅋㅋ 걍 웃긴다 지도 공황장애 약을 먹고 있으면서 되려 그 들을 같은 마음으로 보지는 못할 망정. 되려 정신과 의사가 밥을 혼자 먹으니 야, 걔도 이상해 걔도 정신병있는거 아니야? 라고 하는 그 여자가 왜 내 상사여야 했는지도. 그 상사 밑에서 나랑 친했던 그 여자애 동기도 약간 이상해지는 그 모습을 마주했을땐 아 시발 좆댔다. 여기 있다간 나도 돌아가겠다 싶었다. 물론, 초반에 나 무지 애썼다.


초반엔 적응하려고 무지 애쓰고 이 팀 자체가 너무 분열이 나있어서 서로 헐뜯고 하는 문화에 진저리가 났는데 처음엔 이쪽입장 저쪽입장 들어주다가 하도 분위기가 개판나면 주변도 개판나는걸 모르는가? 나중엔 그냥 내가 그 역동에 같이 휩쓸리지 않고 혼자 행동하니까 이젠 내가 그 타켓이 되어있더라. 그 지역은 좋은 지역일 텐데 나에게 첫 이미지가 별로 였다. 1. 직원 2. 병원 운영 마인드 3. 오피스텔 원룸 값.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매미와 고추잠자리들이 섹스나 할 줄 알지 술병 나뒹굴고, 어떻게 하면 코 묻은 돈 뺐을까 하는 그 역겨운 모습에 내가 차라리 아 걍 혼자 다니는게 낫겠다 싶었다. 근데 또 이 세상은 나이가 드니 결혼하라고 지랄이다. 이전에 내 순수함을 내비두지 않는다. 몇 번 만나면 섹스를 꼭 해야하는가? 섹스를 안해주니 아끼다 똥된다라는 소리를 남자한테 듣는다.


아 물론, 이 말이 나를 겨냥하는 말인지 내 피해망상이라면 망상인가? ㅋㅋ 참나원 섹스 안해주면 피해망상이고 해주면 정상인이 되는가? 말 섞기 싫어서 말안하면 음성증상으로 분류되나? 공적으로 일은 해야 겠고, 주변적 상황으로 얼굴이 똥씹은 표정인데 절대 긍정 절대 감사? 여덟글자로 이 청년의 힘듦이 사라지나? 내가 자살실무자였지만 참.. 뭐 어디서 부터 어떻게 말해야할지도 모르겠더라. 그래도 나보다 나이는 다들 어리니까 걍 참았다. 별 유치한 지랄들을 해도. 근데 가만히 입다물고 조용히 지내려고 했는데 뚫린 입이라고 아주 조랄들을 했다.


그 조랄에 놀아나는 내 측근들도 참.. 바보같아서 내가 다 끊었다. 가족마저도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래서 나도 떼좀 묻히려고 생각하니, 30년을 이렇게 살아왔는데 그게 될리가.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사형수 형량이 맞다. 그치만 이 편지에 담긴 부분을 읽고 내가 쓰는 리뷰는 이렇다.)


응급실 자살시도자 면담 중. 자녀를 폭행, 와이프가 이혼해준다 해서 세상에 나 혼자 남는게 무서워서 급성 정신증이 온 환자가 있었다. 만성으로 가기 전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다시 가라앉는다. 그에 맞는 절차들이 있고, 면담을 진행해야 하는 것을 주변엔 아무도 없고, 전공자도 아니고, 근데 아. 시발 또 생각나네. 그래놓고 뭘 친절하게 뭘 하겠다는 건지. 친절하게 내가 설명해줄때 알아듣는 놈이 그 누구도 없었다. 오히려 무시했다. 뭐 무시라고 하면 또 피해망상 아니야 라고 할까봐 이젠 진저리가 나서 녹음기 필수다. 녹음기를 키면 태도를 바꾸는 것들이 누구인가? 나인가? 니들인가? 하여간 그 병원은 걍 환자들이 안타깝다. 그런 마인드를 갖은 곳. 겉으로 치장은 누가 못하나. 근데 바보들처럼 뭐가 문제일까 고민하는 꼴들이 우습다.)


심판이 필요해”라며 “아무리 불량품인 사람들이라도 인격적으로 대해주고 관심을 가지면 미안해서라도 자중할 텐데 불신과 상실감으로 서로 으르렁거리기만 하는 이곳은 ‘악마 양성소’”라고


(* 나는 전자발찌를 찬 환우분에게 면담을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해드렸으며, 10번 해주다가 1번 내가 업무적으로 바쁘고 피곤해서 거절하니, 나에게 돌연 죽여버리고 싶다는 말을 들어서 수련생신분이라 그 죽여버리겠다는 말에 포기하고 싶진 않았고, 그 10번 이상 우리가 나누었던 면담.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그 사람의 여린 모습, 단. 내가 그의 범죄행위까지 여리고, 좋다고 포장하는게 아니다. 제발 분리좀 해라. 내가 무슨 성모마이아코스프레하는게 아니다. 그 직업으로서의 역할과 신분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래서 한 달간 그 남자 병동은 금지였다. 하지만 다시 옥상 산책에서 만났을 땐, 그 사람이 포스트잇에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고. 나는 직업장 다 떼고 사람대 사람으로 어떻게 그러실 수가있냐, 내가 ***님 면담을 그 다른 분들보다도 가장 많이 했고, 면담 요청이 지나칠 땐, 단 칼에 끊지 않고 내 상황, 내 입장 설명도 논리적으로 납득이 가게 내 업무시간표도 다 보여주며 오해하지 않으시도록, 즉 나는 당신이 싫어서 거절이 아닌 내 객관적 상황이 이러하니 내 근무시간 중에 10분 밖에 할애를 못한다고 하면서까지 면담을 지켰다. 근데, 그 한 번의 거절이 내가 죽여버리고 싶다는 말을 간호 실습생을 통해 들었어야 했냐. 벌처럼 말을 쏘니까 내 눈도 못마주치고 연신 죄송하다는 말만 했다. 그 뒤로 다시 프로그램 참여도 허락해 드리고, 내가 그 병원을 그만 두는 날 그는 그와가장 친했던 병원 동료 환우와 연신 아쉽다면서 그래도 선생님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며 우리는 작별인사를 했다. 내가 유영철이고, 어떤 연쇄살인마이든. 그 법적 처벌이나 형량은 내가 관여할 게 아니다. 내가 다시 정신건강사회복지사로 돌아간다면 내가 해야하는 역할은 정서적 지지와 치료와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게 그런 도움적인 발판을 마련해주는 역할이다. 나도 싫다. 왜 그렇게까지 살인을 하셨어야 했는지. 살인을 하면서도 본인이 미처 느끼지 못하는 그 감정까지 내가 어찌 아느냐. 그 살인 동기를 알았다고 한들. 이미 돌아가신 피해자와, 그 피해자 유족들의 아픔을 어찌 없던일이 되겠느냐 말이다. 그렇다면 다시는 이런일이 발생되지 않게 재발을 막고, 다시는 제 2의가 아니라 그냥 고유의 또 다른 범죄가 발생하지 않은 안전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한다는 말이다. 그게 전문가로만 된다고 생각하나? 절대 노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이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 전부 모두가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 내가 수원에 사는 구남친을 만났을때, 수원 역 부근에 성매매집창촌이 있다. 나는 거기를 처음 가봤다. 25세인가 26세인가. 지름길이 그곳이라 했는가? 아무튼 나는 거기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근데 참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반대쪽은 버스정류장인데 거기엔 멀쩡한 여성들, 그 반대엔 실오르라기 하나 없는 여성들. 같은 공간 다른 복장. 뉴스로만 보던게 실제 존재한다는 걸 보고도 나는 억 소리만 났지. 그냥 무서웠다. 그리고 그냥 떡볶이 먹고 데이트하는 게 좋았다. 아무튼 이야기가 또 샜는데. 결론은 유영철이라는 사람이 8세까지 용산역 부근 집창촌이 아닌 다른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가설을 세워보자. 이게 또 성매매촌 근처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이 그럼 연쇄살인마가 아닌데 너 지금 유영철 두둔하냐? 라고 할 수 있지만 맹점은 그게 아니다. 그냥 나도 진짜 궁금하다. 만약 그냥 평범한 가정이었더라면? 살아가다가 조금이라도 한 명이라도 어른다운 어른, 올바른 사람의 삶을 조금씩 접하면서 성장을 해왔더라면 그 무수한 사람들이 죽었을 까 싶다. 죽은 대상자를 보자. 마약에 취한, 그리고 부유층들. 심지어 신은 없다면서 교회 근처 부유층만 골라서 살인을 했다고 한다. 다 본인의 이유가 있지만 살인은 당연 정당화 될 수 없다. 지강헌 같은 경우에도. 나는 지강헌이 누군지 몰랐다. 퇴사 이후에 유튜브 알고리즘에 떠서 봤다. 뭔 팝송이 익숙한 노래인데 홀리데이라는 노래를 24년도에 정확하게 들어봤다. 이 사람도 총구자살 전에 발악을 한다. 왜 자기가 이렇게 되었는지를 나름에 유서 퍼포먼스라면 유서 퍼포먼스인가?)


반발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행복추구권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는 언제든 나 같은 사람이 또 나올 수밖에 없다”


(* 연쇄살인마저도 이 통찰을 하는 마당에 이걸 모르는 띨빡들이 자리들을 차지하고 앉아 있고, 그 자리에서 타살하는지도 모른채 자살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그러니 내가 현장을 떠날 수 밖에 너무나도 모순적이라. 가증스러워서, 역겨워서. 그 누구하나 사과 하는 사람이 없냐. 이젠 근데 유효기간은 끝났다. 그냥 병신연놈들처럼 살아라. 그리고 우리나라는 언제나 자살율 1위, 출산율 꼴지, 연쇄 살인마가 또 나와도 할 말 없어야 한다. 많은 실무진이 좆뺑이를 처봐라. 윗대가리가 썩었는데 어찌 아랫물들이 그것을 보고 배우고 다시 안 썩겠냐. 그래놓고 누굴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하는 건지. 당최 모르겠다. 그냥 바보처럼 사는게 속 편하다. 병신들 앞에 머리를 조아리느니. 걍 이렇게 살아가는 수밖에.. ^^ 이상 정신질환으로 매도 당했던, 그래서 진짜 정신질환이 왔나? 자살마려웠던 93년생 정소연 유영철 편지 리뷰를 마칩니다.)



고 덧붙였다.

곽진웅·박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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