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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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써라
어떤 러시아 시인은 말했다
피로 써라
시를
시 같은 유서를
다만 피로 써라
나는 피로써 시를 쓰지 않는다
시가 거의 유행가처럼 되어 버린 곳에서
때로는 언어 이외의 것으로 울고 싶어지는
아, 이 무슨 삶이란 말인가.
답시
눈물로 썼다.
러시아 시인,
세이노 자산가,
류시화 시인,
다 각기 자신의 삶을
글로 남겼다.
나는 2023년 겨울엔
베개에 얼굴을 처박고
울고 잠들고 아침엔 샤워하고 울고
2023년 중
어떤 시간이 제일 좋으냐고 물어본다면
뜨거운 물로 출근하기 전 샤워할 때가 제일 좋았다.
그래서 30분간 물을 틀어놓고
울면서 씻었다.
그러곤
아무렇지 않게 또 출근을 한다
김현정 뉴스쇼를 듣고
좋아하는 노래 2-3곡 들으면
주차를 한다.
그리고 머리로 생각한다.
시발 오늘도 출근했네.
죽고 싶은데
샹년들은 또 시비를 건다.
알아서들 살아가지.
뭘 또 꿍시렁 꿍시렁
일이나 하지.
배때지가 불러도 얼마나 부른 걸까.
어디까지 부르고 싶어서
그 난리들일까.
사람들은 죽어가는데
사람들은 울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퇴사를 하고
나사가 빠진 것처럼
지내다가
글을 썼다.
내가 왜 나사가 빠지게 됐는지.
면전에 얘기 못한 그 말들을
쓰니까
독기가 빠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