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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써라 - 류시화

눈물로 썼다.

by 쏘리
류시화.png

p. 99



피로 써라



어떤 러시아 시인은 말했다

피로 써라

시를

시 같은 유서를

다만 피로 써라



나는 피로써 시를 쓰지 않는다

시가 거의 유행가처럼 되어 버린 곳에서

때로는 언어 이외의 것으로 울고 싶어지는

아, 이 무슨 삶이란 말인가.





답시



눈물로 썼다.



러시아 시인,

세이노 자산가,

류시화 시인,



다 각기 자신의 삶을

글로 남겼다.



나는 2023년 겨울엔

베개에 얼굴을 처박고

울고 잠들고 아침엔 샤워하고 울고



2023년 중

어떤 시간이 제일 좋으냐고 물어본다면

뜨거운 물로 출근하기 전 샤워할 때가 제일 좋았다.



그래서 30분간 물을 틀어놓고

울면서 씻었다.



그러곤

아무렇지 않게 또 출근을 한다

김현정 뉴스쇼를 듣고

좋아하는 노래 2-3곡 들으면



주차를 한다.

그리고 머리로 생각한다.



시발 오늘도 출근했네.



죽고 싶은데

샹년들은 또 시비를 건다.



알아서들 살아가지.

뭘 또 꿍시렁 꿍시렁

일이나 하지.



배때지가 불러도 얼마나 부른 걸까.

어디까지 부르고 싶어서

그 난리들일까.



사람들은 죽어가는데

사람들은 울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퇴사를 하고

나사가 빠진 것처럼

지내다가



글을 썼다.

내가 왜 나사가 빠지게 됐는지.



면전에 얘기 못한 그 말들을

쓰니까



독기가 빠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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