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글을 올립니다.
p. 104
전화를 걸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당신은 마치 외로운 새 같다 긴 말을 늘어놓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당신은 한겨울의 저수지에 가 보았는가 그곳에는
침묵이 있다
억새풀 줄기에
마지막 집을 짓는 곤충의 눈에도 침묵이 있다
그러나 당신의 침묵은 다르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누구도
말할 수 없는 법
누구도 요구할 수 없는 삶
그렇다, 나 또한 갑자기 어떤
깨달음을 얻곤 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정작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라, 당신도 한때 사랑을 했었다 그때
당신은 머릿속에 불이 났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외롭다
당신은 생의 저편에 서 있다
그 그림자가 지평선을 넘어 전화선을 타고
내 집 지붕 위에 길게 드리워진다.
한줄평 : 제목이 끌려서 골랐고, 내용을 쓱 보니, 내 상황 심정과 비슷해서 골랐습니다.
답시
카톡보단 전화가 더 좋은 사람,
전화보단 카톡이 더 좋은 사람.
당신은 마치 외로운 새 같다 긴 말을 늘어놓지만
(* 나는 외향적인 성격이라 모르는 초면인 사람과도 금방 친해진다. 내 말재간을 이 길 사람이 나와 티키타카가 되는 사람이겠지. 근데 지금은 많이 내려놨다. 나와 비슷한 내적인 도플갱어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는 걸, 그리고 내 장점은 나만 있으면 된다. 그건 상대까지 맞춰줄 필요가 없다. 내가 개그 유머 센스가 있으면 내가 상대를 웃겨주면 그만이다. 근데 나도 가끔은 누가 날 웃겨 줬으면 한데 그 기대 또한 버렸다. 그냥 내가 내 취향인 웃긴 거 보고 낄낄 거리면 그만이지 뭘 또 타인에게 나를 웃겨봐라 하고 있었는지. 그래서 말이 많은 건 이 말도, 저 말도 하고 싶어서 그렇고, 내 하루의 수다 총량 치는 평균치보단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외향적인 사람을 만나면 충족이 되고, 그게 아니면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것 같아서 이젠 판단이 빨라진다. 어라? 에너지가 안 비슷하네 그럼 빨리 다음 열차. 여전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하나하나 다 맞춰가야지! 하기엔 우린 인생이 짧다. 그리고 그 과정은 20대로 족하다. 30대 40대는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다.라는 판단을 내려야 하고, 그 판단이 맞기를 바라야 한다. 근데 또 그 판단이 백이면 백 다 안 통한다. 그게 죄는 아니다. 아직 눈이 덜 컸구나 하고 넘기면 된다. 뭘 또 자책은 금물. 자책 또한 사치다. 자책하려고 태어났나? 왜 태어났냐? 물으신다면 부모님이 사랑을 나눠서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이 되어서 태어난 거다. 뭐 그리 의미 부여하면서 살지 마라 그 의미부여에 답은 없다. 이즈 쏘심플이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 말을 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니, 이 얼마나 놀라 노짜인가. 생각 없이 내뱉는 말도, 농담도 헛투르 보지 않는다. 다 그 이면에는 그 사람의 무의식과 배경과 맥락이 다 깔려있다. 그걸 캐치해 내는 사람과 그냥 생각 없이 넘기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 구구절절 긴 글이든, 짧고 간결한 글이든, 그 사람에 이면이 감정이 생각이 다 담겨있다. 그건 본인만 안다. 타인이 정해주지 않는다. 타인이 보는 그 눈으로 자기 자신을 해치지 마라. 나를 위해서 하는 말들 고맙고 감사했지만 그 말들이 오히려 독이 되어 병이 날 뻔했다. 그건 왜 그랬는지 생각해 보면, 가끔은 내 말이 맞는데도 어쭙잖게 우쭐하며 던지는 그 말들이 내가 존경했던, 내가 와 배울 점 있는 사람이었던 사람들 또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그들에게 더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근데 또 어찌 보면 상처받을 것도 없다. 상처 줄려고 한 말도 아니었고, 나 또한 상처 줄려고 한 게 아닌데 상대가 상처받았다고 하면 사과를 박지만. 고의로 주는 새끼는 10 새끼고, 의도치 않았는데 그렇다 하면 사과를 해야 한다. 그게 예의고 도리다. 내 기준엔?)
당신은 한겨울의 저수지에 가 보았는가 그곳에는 침묵이 있다
(* 나는 궁평항을 자주 갔었다. 가족단위, 연인단위, 친구들과 차박 캠핑, 아저씨들 무리, 불륜무리, 등등 많다. 그 사이에 혼자 갔다. 혼자 핫도그를 먹고 돗자리가 있으면 펼치고 아니면 말고 그냥 모래사장 위에 앉는다. 어차피 옷은 빨면 그만이다. 발에 모래가 껴도 괜찮다. 샤워하면 그만이다. 그 사이에 나는 고요할 줄 안다. 시끄러운 곳에 가도 내 마음이 고요하면 고요하고, 아무리 고요한 곳에 가도 내 마음이 시끄러우면 그곳이 시끄럽다. 결국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에 문제다. 마음이 고요할 땐, 시끄러운 곳에 마음이 시끄러울 땐 고요한 곳에 이렇게 벨런스를 찾아가라. 그게 중도를 찾아가는 것.)
억새풀 줄기에 마지막 집을 짓는 곤충의 눈에도 침묵이 있다
(* 한창 스트레스가 심할 때, 하도 좋지 않은 우울, 분노, 폭행, 자살 현장을 마주할 때. 그래서 모든 사람이 다 그런가?라는 필터가 씔 때. 등산을 많이 탔다. 자연은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자연은 내가 굳이 뭘 하지 않아도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 내가 굳이 말을 걸지 않아도 되고, 자연은 나에게 묻지도 않는다. 그뿐이었다. 그래서 동물이나 자연이 좋은 이유는 의사소통이 안 돼서 좋다. 외국인이 편한 이유. 뭐라고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 근데 그게 스트레스가 아니라 오히려 좋다. 뭔 말을 하는지 알지 않아도 되고, 알려고 애쓰지 않아도 될 좋은 핑계가. 언어를 모른다. 만약 전 세계 모든 언어들을 알았다면? 얼마나 스트레스인가? 이쪽 언어도 들리고 저쪽도 들리고 이쪽저쪽 아우성들이 다 눈에 보이면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프다. 그래서 지식을 쌓는 걸 좋아하는 나였지만 가끔씩은 멈춘다. 너무 많이 알아서 좋은 것과. 너무 많이 알아서 나쁜 것 둘 다를 경험해 봤기에. 근데 경지에 오르면 나쁜 것을 보고도 눈을 감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말을 삼키고, 장님은 아니지만 장님처럼, 오감이 다 작동되는데 작동이 멈춘 것처럼. 그렇게 오감을 갖고 놀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당신의 침묵은 다르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누구도 말할 수 없는 법
(* 나는 살면서 한 번도 겪지 못할,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을 겪었다. 아니다. 영화는 오히려 더 있을 법하다. 근데 나는 말을 못 한다. 그게 사실 맞는지도 모르겠다. 말했다고 한들 내가 겪은 게 달라질까 싶기도 했다. 이렇게 까지 일이 굴러간다고? 이렇게 까지 돌아간다고? 무섭다기보다 그냥 미쳤네 싶었다. 내가 미친 건 미친것도 아니었다. 나중에 꼬부랑 할머니탱이가 돼서 실은 할머니는 이런 것도 겪었단다. 우스갯소리를 하겠지만. 그땐 웃으며 얘기하겠지만 그때의 나는 매일이 울음이었다. 세상은 심플하다고 쓰지만, 세상은 마냥 심플하지 않다. 그래서 내가 자녀를 낳는다면. 내 교육 가치관은 니 멋대로 살아봐라. 네가 나 놈인지 난년인지 범생인지 양아치인지 그건 부모가 정해주지 않는다. 네가 정하는 거지. 나는 너를 정해주기 위해 낳지 않았다. 남편이랑 사랑을 나눠서 네가 나온 거지. 그러니 너의 정체성을 부모에게 묻지 말고 네가 훨훨 날아보든 기어보든 굴러보든 해봐라. 그러다가 힘들 땐 찾아와도 되고, 그게 부모가 아닌가 싶다. 어찌 부모-자녀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 서로 못 떨어져서 안달. 샴쌍둥이도 그러진 않는다. 정신들 좀 차려라.)
누구도 요구할 수 없는 삶
(* 그 누구도, 그 고유한 삶에 왈가왈부하는 건 참 웃긴 일이다. 마치 로또 1등 번호 알려줄게라고 꼬드기는 사이트랑 다를 바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좋은 주식 좋은 정보 알려줄게요. 좋은 것으로 포장된 것도 결국엔 돈이다. 돈 때문에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돈을 써야지. 돈이 사람을 쓰게 만들진 마라. 그게 말이나 되나.)
그렇다, 나 또한 갑자기 어떤 깨달음을 얻곤 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정작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 모든 걸 깨우쳤을 땐 빅뱅이 이런 건가 싶었다. 와, 이걸 5년 전에 느꼈다면? 어땠을까? 근데 지금이라도 알 수 있어서 난 너무 좋다. 5년 후가 되어도 나는 마흔 살도 안 된다. 빨리 늙고 싶어서 기대가 된다. 늙으면 또 얼마나 재밌을까? 쭈그렁방탱이가 되는 내 모습이 얼마나 신기하고 재밌을까 싶다. 시간을 역행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그 역행을 위해 돈을 기 까지 지불하고 관리를 한다. 시간은 절대적인데 그러다 마주한 내 모습들을 사랑하기 어려워서 그런 걸까? 타인이 아니더래도 본인의 늙은 모습을 본인이 좋아해 주지 않는다면 누가 좋아해 줄까? 결국 관속엔 본인 혼자 들어간다. 처음과 끝은 샴쌍둥이가 아닌 이상 혼자 들어간다. 그 사이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희로애락을 겪을 뿐. 근데 그 과정에 타인만 있고 본인 자신이 없다면 그게 껍데기로 살았다는 것이지 뭐 있나 싶다. 사랑을 하면 책임질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 책임을 바라고, 나 좀 책임 줘죠요 빼액! 오빠가 다해죠! 누나가 다해죠! 와이프 다해죠! 남편이 다해죠! 엄빠 다해죠! 자녀들아 나 이제 아무것도 못해 다해죠! 그러려고 태어난 건 멋이 없다. 뭐 멋쟁이로 살고 싶지 않으면 의존하고 찡찡대도 괜찮다. 그게 본연의 당신 모습이라면 그 또한 사랑스럽게 봐줄 누군가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렇게 살아도 무방하겠지)
생각해 보라, 당신도 한때 사랑을 했었다 그때 당신은 머릿속에 불이 났었다
(* 난 모든 연애를 불같이 했다. 그래서 남자들이 힘들었나? 근데 남자만 힘들었나? 나도 힘들었다. 진짜 사랑이라는 건 내가 생각했을 때 서로가 좋아야 사랑인 것 같다. 한쪽만 사랑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구나를 꼭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감정이 느껴질 때 아! 사랑? 이거네. 근데 사랑은 365일, 24시간. 유지되지 않는다. 그 순간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 애쓰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애쓰고 노력하지 않아도 사랑을 느끼는 순간들이 길어진다. 근데 내 기준 사랑 중에는 짝사랑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남들은 짝사랑은 아쉽지 않냐라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짝사랑일 때가 더 설레고 좋았다. 왜냐면, 정작 만나고 보면 내가 생각했던 거랑은 달라서 100% 였던 마음이 사그라든다. 그럼 100%가 아닌 마음은 사랑 안 해도 되는 마음으로 굳혀진다. 그렇다고 안 사랑하는 건 아닌데, 사랑은 하는데. 아 어렵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근데 뭐 다 제치고, 같이 놀고, 같이 있을 때 재밌으면 장땡이다. 그리고 힘들 때 옆에서 훈수 두는 게 아니라 묵묵히 아무렇지 않게 있는 그대로를 봐주는 게 최고다. )
하지만 지금 당신은 외롭다 당신은 생의 저편에 서 있다
(* 저편에 있어봤지만. 태어나서 한 번쯤은 저편에 있어본 것도 좋은 경험이다. 저편에 못 가본 사람은 모른다. 인생이 얼마나 재밌는지를, 인생이 얼마나 하찮은지를, 인생이 얼마나 단순한지를, 인생이 얼마나 단순하고 복잡한지를, 인생이 얼마나 좆같은지를.)
그 그림자가 지평선을 넘어 전화선을 타고 내 집 지붕 위에 길게 드리워진다.
(* 나혼산에 김대호 님이 지붕 위에서 대게 열 마리를 맛있게 먹고 마무리로 라면까지 드셨다. 내 버킷리스트는 내 집이 생기면 옥상에서 대게 열 마리와 소주 반 병 마시고 라면까지 끓여 먹고 씻고 대자로 뻗어서 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