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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 류시화

답시를 올립니다.

by 쏘리
류시화.png



P. 86



첫사랑

이마에 난 흉터를 묻자 넌

지붕에 올라갔다가

별에 부딪친 상처라고 했다.


(* 보고싶은 마음에 발가락에 피가 나는 지도 모르고,


새벽에 짐을 바리바리 싸서 몰래 집을 나갔다.


불을 잘 키지 않는 성격에 늦은 밤이라


신발장 불이 들어오기도 전에 어딘가에


부딪혀서 아팠지만 보고싶은 마음이 더 커서


발가락을 자세히 잘 안 봤다.


시속을 꽤나 밟았다.

아픈지도 모른채 달리다가


엄마한테 전화가 온다.

언제 집 밖을 나갔니?

바닥에 피가 있어서 무서워.

라는 말씀에 나는 그제서야

.

전화 좀 끊어봐요.



그러고 자동차 불을 켜고



오른발에 엑셀을 떼고



보니.



양말이 피로 물들어있었다.



색깔을 또 초록색 양말을 신어서



중간에 휴게소에 내리니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응급처치도구가 없다고 한다.

그냥 대일밴드로 붙여버렸다.



붙여도 피가 줄줄이 나는데


내가 배운 건



피가 나면 지혈을 잘해주면 된다고 배웠다.



그리고 참 웃긴 게


눈으로 보이니까 그제야 아픈 감각이 느껴진다.



근데 왼발이 아니라 오른발이라

운전을 안 할 수도 없다.



일단 간다.



그냥 갔다.



대일밴드를 덕지덕지 붙이고 갔다.



그랬더니


더 좋은 대일밴드를 사다가 붙여줬다.



지금은 다 나아서 흉터가 있었는지도 모르게 사라졌다.)




어떤 날은 내가 사다리를 타고

그 별로 올라가곤 했다.



(* 나만 맨날 가니까 좀 놀러 오라고 했는데

이젠 놀러 와도 만나지를 못한다. 끝났다. 헤어졌다.)




내가 시인의 사고방식으로 사랑을 한다고

넌 불평을 했다



(* 나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여자라면서


화를 내기도 뭐 하고,

안 내자니 화도 나고,


나름에


간접적인 방법으로 화를 내는

그의 모습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지만


중요한 건 왜


그 시점에 구 남자친구 어머님은


쓸 때 없이 연락을 하셔가지고



눈치 좀 챙겨주세요.



이제 최대한의 어른으로서의 배려는 해드렸는데


내가 너무 또 착하게 답장을 해드려서 그랬나.?



도대체 나는 어디까지가 착해야 하고


어디까지 싹수가 없어야 상대방들이 알아들을까?



이젠 질렸다.


몇 번을 말해도 못 알아듣거나


눈치 없는 사람들한테


굳이 매너나 배려는 해주지 않는다.)



희망 없는 날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난 다만 말하고 싶었다.



(* 나는 알아도 모른 척,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인데



주변에선 어떻게들


우걱우걱 우절우절

평가들을 했는지는 몰라도



내 알바 아니다.


나는 당신들의

우적우적 우 걸구걸에


놀아날 시간이 없다.



왜냐면 죽음의 문턱에 살다 왔기에

근데 왜 그 문턱에 갔냐고 묻는 다면



너희들의 그 오지랖과 원치도 않는

관심들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까 신경들 좀 꺼라.


어차피 내가 없어도 살아갈 사람들.

어차피 내가 있으면 뺏어갈 사람들.



기가 막히게 안다.


이득이 될지 안 될지


좋은 말 해두는 사람만 곁에 두려는 모지리들


싫은 말 옳은 말은 듣기 싫어하니까


안 해주니 왜 말을 안 하냐고 한다.


너한테, 당신한테 해줄 말은 옳은 말 밖에 안 보이는데


그 옳은 말을 싫어하는 데 내가 왜 옆에서 서로 피곤하게



그래야 하는데요?



어차피 살아가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마당에


서로 질척거리지 맙시다.)



어떤 날은 그리움이 너무 커서

신문처럼 접을 수도 없었다.



(* 그리움을 누르다가 정리를 하다가

그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도

그리움이 갑자기 튀어나올 땐,


그냥 있는 그대로 표현을 했다.



웃긴 게, 모든 감정은 소중하다고 가르쳐두고선

분노, 슬픔을 보이면 실컷 즐길 시간을 안 주는 게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와 달라는 게


그렇게나 폭력적인 말인지 나 처음 느꼈다.



원래의 모습이라는 건 없다.


원래의 모습은 그저 당신이 바라는 모습이지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닌데


뭘, 자꾸 원래의 모습, 예전의 너로 돌아와를


외쳐대는지 나 잘 모르겠다.



그런 모습도 있었던 나.

지금 내 모습도 나.



다시 말하지만

영원한 건 없다.



영원한 게 있다면

그냥 하루의 시간은 24시간 누구나 공평하다는 거



이것 말곤 떠오르는 게 없는데

뭐가 또 있을까.)



누가 그걸 옛 수첩에다 적어 놓은 걸까

그 지붕 위의 별들처럼

어떤 것이 그리울수록 그리운 만큼



(* 나는 지금 그리운 게 하나도 없다.

그리워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럼 지금이 나는 좋은 상태인 건가?


그리운 건 없고

가고 싶은 곳은 많다.



가야 하는 데

돈을 또 아끼라고 들 한다.



주유비, 톨비 어쩌고, 저쩌고


아끼면 청춘이 아깝다 그러고


안 아끼면 왜 그러냐 그러고



참 재밌는 세상이다. 이중메시지에 머리가 터졌다.)



거리를 갖고 그냥 바라봐야 한다는 걸



(*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문장이다. 거리두기. 따뜻한 무관심.


아버지는 최고의 벌이 무관심이라고 종종 말씀하셨는데


나는 그 무관심이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그 무관심이 나에게 자유를 가져다줘서 그런가.



알아서 살아가는,

알아서 일하는,

알아서 잘해보려는 사람한테


선수 처서 훈수 둔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 훈수 두는 사람에게도 누군가 훈수를 둔다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떡볶이에 맥주나 먹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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