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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 류시화

답시를 올립니다.

by 쏘리
류시화.png


p. 13


민들레


민들레 폴씨처럼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게

그렇게 세상의 강을 건널 수는 없을까



(* 나는 민들레 폴씨 보단 강아지 풀을 더 많이 갖고 놀았다.

손으로 몸통 부분을 잡고 잡았다 놨다 하면 아래로 내려가기도

위로 올라가기도 한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민들레 폴씨를 보면 불고 싶은 마음보단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불면 날아가버리니까.



그냥 그게 꽃잎인 줄 알았다.



근데 민들레 폴씨는 불어줘야

멀리 날아간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그래서 나이가 서른이 되고서야

민들레 폴씨를 불지 않고 지켜주는 게 아니라

확 불어버린다.



훨훨 날아가게

다른 곳으로 네가 원하는 곳으로

멀리 가버리라고.)



민들레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네

슬프면 때로 슬피 울라고

그러면 민들레 풀씨처럼 가벼워진다고



(* 나는 눈물이 어쩔 땐 하염없이 잘 흐르고

어쩔 땐 가차 없이 눈물 한 방울로 흘리지 않는다.



그에 대한 기준은 잘 모르겠다.

터져야 할 땐 터지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믿는 사람들 앞에서만 울었다.



내가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선 절대 울지 않는다.



내가 믿는 사람들 앞에선 발가벗은 내 모습도

다 보여줬다.



믿어서 보여줬는데 믿어서 깠는데

그게 아닌 사람들이었다면 내 탓을 해야지



그들 탓을 해봤자

뭔 의미가 있으랴



속으로 이 시발 것들 절대 내가 이 수모는

두 배로 갚아준다.



아니다.


이미 갚아버렸다.)



슬픔은 왜

저만치 떨어져서 바라보면

슬프지 않은 것일까?



(* 동의할 수 없다.

슬픔은 떨어져서 바라보면

절대 보이지 않는다.



가까웠기에 보일 수밖에 없는

슬픔이다.



가까웠다고

가까워서

가깝다고



그래서 보였는데

그래서 곁에 묵묵히 있었는데



근데 다시 홀씨처럼 불어버린다.

너무 가까이에 있어도

전염을 서로 주고받을까 봐

멀리 불어버린다.



착각하지 마라

그냥 버리는 게 아니라

불어버린다.



멀리 가라.

슬픔 따윈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얼마만큼의 거리를 갖고

그렇게 세상 위를 떠다닐 수는 없을까

민들레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네




(* 코로나가 세상을 흔들었다.

안전한 거리두기 수칙, 코로나가 여전히 있나?



그 코로나19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과 많은 업무와 노동을 했는가



그 코로나19로 돈 버는 사람들

기가 막히게 벌어가고

그 코로나19 후유증으로 떠난 사람들



그 사이에 아무 일 없던 사람들



코로나19가 가르쳐 준것들

처음 겪는 일엔 모두가 허둥지둥이다.



그러니 속지 말자.

그러니 깨어있자.)



슬프면 때로 슬피 울라고

그러면 민들레 풀씨처럼 가벼워진다고



(* 풀씨를 지켜주는 게 아니라

불어버리자.



가벼워진다고

가버리라고

가라고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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