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빼면 시체. 유머 중시하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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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은 질리고 다섯 번은 하기 싫고 일곱 번은 짜증이 나는데 아홉 번째는 재가 잡힌다."
(* 나도 이랬던 적이 있었다. 처음 할 땐 내가 이걸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고, 새로운 습득이란 늘 즐거우니까. 그러다가 세 번쯤 할 때는 익숙해져 버려서 쉬워져서 처음 할 때 보다 어려움이나 부담감이 줄어들고 일곱 번째는 이거 눈감고 발로도 할 수 있겠는데(?) 그러다가 아홉 번째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도 에너지를 처음 할 때만큼 쓰지 않아도 그냥 쓱 해버린다. 그때쯤에 나는 딴생각으로 빠지게 된다.
내가 이거 하려고 4년제를 나오게 됐단 말인가(?) 내가 나온 대학교는 지방 모 사립대 대학이다. 그 대학을 낮춰서 표현하기는 싫지만 인서울권보다 낮은 건 사실이니까. 근데 일이 익숙해지고 나니 한 곳에 있기가 싫증이 나버렸다.
그래서 타지로 나가고 싶다고 그랬다. 한 번도 집 밖에 자취한 번 해본 적 없는 내가 아버지께 허락을 받기 위해서 무릎 꿇고 타지에 나가서 취업해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방송국일을 배워보고 싶어서 안성동아방송예술대에 갈 때도 탐탁지는 않았어도 항상 내 선택을 존중해 주셨고, 뭐든 하라고 해주셨다. 다만 결과에 있어서 그 결과가 좋지 않아도 그 결과로 인해 내가 힘들어할지라도 섣불리 언급하지 않으셨고,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늘 기다려 주셨다. 나는 그 기억이 항상 감사하게 자리 잡고 있다.
아빤 아무래도 내가 스스로 또 잘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으니, 그랬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내가 사회생활에 뛰어들고 꼴배기 싫은 실은 상사 때문에 화가 터져버렸을 때 그때 술을 찾을 때 그때 아버지가 오버랩이 되면서 딱 아빠 나이와 내 나이가 비슷해지는 그 시점에 아빤 왜 그리 술을 드셨을까?
그게 이해되는 지점이 왔을 땐, 펑펑 울었다. 아버지 또한 열심히 살아보고자 하셨음을 말이다. 그렇게 술을 드시던 아버지가 미웠는데 술 없이 당최 나도 그분을 삭이기가 너무나 힘들어서 혼자 먹는 술은 맛도 더럽게 없던데 그래서 혼자 처음으로 소주 한 병을 사서 자취방으로 들어가서 아버지가 잡아준 주꾸미를 데쳐서 집에 돌아가면 요리할 기운도 없이 들어가서 주꾸미를 데쳐서 혼자 소주를 석 잔을 마시니 그 기분이 더 좆같아서. 내가 알코올의존자들에게 교육했던 내가 혼자 그렇게 술을 마실 땐 절대 혼자 마시는 줄을 늘리지 말라고 강조했던 내가 그런 시점이 왔을 땐 아 다 좆같아서 마셨구나. 싶었다.
근데 몸에 해로운 건 곧 죽어도 하기 싫은 나라서. 소주 3잔엔 취하지도 않는다.
그냥 또 그다음 날 출근하기 위해 남은 술을 싱크대에 부어버리고 혼자 베개에 눈물을 적시다가 다음날 샤워하고 또 출근해서 방긋 웃으며 다녔다.
그게 직장인의 삶이고 내가 앞으로 고작 몇 년 안 했지만 결국 어디에 소속되어야지만 나를 지킬 수 있나 싶어서 어디를 가야 하나 찾아봤지만 어디가 좋더라 어디가 편하다더라 수없이 알려주는 정보를 듣고 가봐도 거기가 거기다.
결국 지옥에 떨어져도 천국으로 만들어야 할 줄 알아야 하고, 천국이더라도 내가 지옥처럼 느끼면 아무 소용이 없단 소리다. 그러니. 좆같아도 뭐다? 좇도 없지만. 비속어 한 번 하기 어려워했던 내가 그 응답하라 1988 바둑기사 택이가 대국에서 지고 힘들어할 때 친구들이 찾아와서 그런다. 시발 좆같네 해보라고.
택이는 어수룩하게 지발됻같네. 발음도 뭉개져서 이 욕을 해도 되나. 싶은 채로 어설프게 내뱉는다. 나도 그랬다. 욕을 하면 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될까 싶어서. 근데 지금은 안 하고는 못 배기는 것 같아서 면전에는 못해줬지만 글에다간 시발 좆같네. 필터링 없이 쓰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됐다.
사회 초년생들을 보면 내 모습이 보인다. 선배들도 내 어린 모습을 보고 그들의 과거가 떠올렸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몇몇 선배들은 내가 떠날 때 개인톡으로 그렇게 연락을 줬다. 선생님의 모습에서 본인의 모습을 봤다고. 나는 그 선배랑 그렇게 친분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속으로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고, 그들도 대놓고 친분을 표현할 수 없는 건 보이지 않는 이해관계와 갈등관계 때문에 섣불리 다가오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괜히 도와준다고 나섰다가 휘말리는 것보다야 그냥
나쁜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과, 언행을 바르게 하는 것.
다시 말하지만 농담이라는 건 상대방도 웃어넘길 수 있을 때 농담이라고 하는 것이다. 기분이 나쁜 멘트를 던지면 이제는 나도 듣고만 있지는 않고 똑같이 박아줘 버린다. 나이? 장유유서? 그 앞에 수식어 하나 붙자. 어른다운 어른한테 한정으로 어른대접해 드린다.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 취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 친구들 후배들에게도 말한다. 나에게 어른 취급? 아첨? 챙김? 어디 가서 못된 것만 배워서 알짱거리는 것보단 네가 맡은 일을 묵묵히 하고 자기 성장을 게을리하지 않는 친구야 말로 눈여겨보고 있다가 갑자기 내가 문득 손을 내밀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