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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드렛일부터 제대로 해라(5) - 세이노

제대로 한다는 것은

by 쏘리
세이노의 가르침 표지.png



p. 160


나는 전 직원 중 일부를 골라 불시에 컴퓨터 파일을 체크해 보곤 하였는데 직원의 파일 목록을 보곤 기절할 지경이 되었다. 문서 제목이 모두 001.002.003 순으로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그 의 답변은 "법무법인에서도 이렇게 했었는데요"였다. 내 대답은 '이런 닭대가리'(속으로만 말했다.) 그렇게 정리한다면 무슨 문서가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도대체 어떻게 안단 말인가.


(* 나는 무질서 속에 질서를 알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질러져 있어도 중요한 건 어디에 있는지, 근데 딱히 내 인생에 커다란 변화를 준다거나 당장 내가 꽂혀있지 않은 것들에겐 큰 관심이 없었다. 물론 우선순위야 내가 정하는 부분인지라 타인이 봤을 때 왜 저리 정신이 없을까? 왜 이렇게 칠칠맞지 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걸 생각하고 있어서 그럴 수 있다. 기억할게 한두 가지가 아니고, 머리에 생각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복잡하다. 그래서 시간이란 게 필요하다. 아, 그리고 파일 폴더는 불필요한 것은 바로 지워준다. 활용 후 다시 들여다봐야 할 땐 어떡하지? 하지만 그럴 리가 없고, 그냥 사용 후 지워주거나 영구박제를 해두면 된다. 나는 그게 블로그다. 검색 한 번이면 다시 읽을 수 있고, 용량 차지도 안 한다.)


(* 나도 비속어는 혼자 있을 때 빼고는 속으로 한다. 근데 내가 타인에게 닭대가리 하기 전에 나 조차도 닭대가리였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닭띠라 닭대가리는 맞다만.)


작은 것 하나 귀신처럼 하지 못하는데 더 큰일을 달라고? 웃기지 마라.


(* 귀신처럼 한다는 것은 그 누가 와도 이해시킬 줄 알아야 하며, 그 사람에게 알려줄 때 구체적이지만 간단하고 심플하게도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공부는 천재한테 배우는 게 아니라 바보한테 배우는 것이다. 천재는 왜 모르는지 모른다. 하지만 바보는 안다. 어디 지점이 이해가 안 가고 어느 수준으로 설명을 해주는 게 이해가 될지를 말이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올챙이 시절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천재는 딱히 올챙이 시절 없거나, 짧게 겪어봐서 잘 모를 것 같다.)


1년간 무조건 화장실 청소를 시킨다. 청소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신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정말 그렇다. 청소하나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무슨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 그렇다. 나는 화장실 청소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그런 내가 무슨 다른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거쳐갔던 팀장님 중엔 매우 귀하게 자라신 외동딸 팀장님이 계시다. 그 팀장님은 나에게 갑자기 찾아와서 "소연선생님 화장실 청소할 줄 알아요?" 그러시길래 나는 그때 첫 자취 중이었고, 수건 한 장 빨아본 적 없는 철부지 막내딸이라 화장실 청소해 본 적은 없지만, 사회생활할 땐 일단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해야 하니 "네! 할 줄 알아야요." 근데 왜요? 했더니 자기는 결혼해서도 남편이 다 해주느라 해본 적이 없어서 나에게 화장실 청소를 부탁한다고 하셨다. 근데 며칠이 지나서 곧장 청소부 아주머니가 오셨고, 나는 하진 않았지만. 적고 싶은 말은 있지만 적지 않겠다. 공주님 같은 사람들이 회사에 많다. 나 또한 공주님이었나 싶다. 공주처럼 살생각은 없다. 나는 공주가 아니라서)


정말 자존심이 세다면 낮은 곳으로 내려가라. 낮은 곳에서 걸레를 누구보다 먼저 잡고 하찮아 보이는 일들을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하면서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해치울 때 비로소 사람들은 당신을 인정할 것이다.


(* 인생 두 번째 퇴사 때 최고관리자는 그랬다. 가족에게 인정욕구가 있느냐고. 그렇지만 인정욕구가 뭔지 몰랐다. 다만, 가족들이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씁쓸했지만 아무리 설명해 줘도 철부지 딸처럼 보였을까? 내가 27살 타지로 나가서 자취를 하면서 5천만 원 언저리 안되게 번 돈은 무엇으로 모았다고 생각했을까? 우리 가족은 따뜻하지만 어쩔 땐 매우 무심한 관계들이기도 하다. 아니면 모든 가족들이 그럴까? 함께 일했던 동료 또한 아버지에게 근무할 때 만든 영상을 보여주면서 딸이 이런 일을 하고 있어요. 설명을 해드렸다고 한다. 아버지 세대는 무조건 공무원이 최고라고 인식을 하는 건지. 얼마나 우리가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모른다. 정신질환을 그저 정신병자 미친놈이라고 부르는 생각하는 내 가족들이 바보처럼 보이기도 했다. 실상 본인들도 정신적으로 아플 수 있음에도 말이다. 그때 내가 든 생각은 우리나라 대한민국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개선과 교육을 내 가족부터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예산을 때려 박고, 매년 행사를 개최해도 어제 제자리걸음일까? 입 밖으로 정신병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시민들아. 입 조심해라. 당신이 내담자로 오는 건 시간문제다. 지금 세상이 어떤지는 알고 떠들어대는 걸까?)


당신을 스스로 낮출 줄 아는 사람으로 인정할 때 저절로 지켜지게 되는 것이다.


(* 내가 만났던 최고 상부 중엔 권위와 직급을 가졌어도, 스스로를 진정으로 낮추는 사람을 겪어보기도 했다. 그렇다면 밑에 친구들은 스스로 치켜세워준다. 윗자리일수록 손을 떄는게 아니라 같이 협력해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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