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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원하는 기준에 맞추어 일하라(1) - 세이노

세상에 맞추기 싫었는데

by 쏘리
세이노의 가르침 표지.png



p. 182


류시화는 전혀 가난한 시인이 아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 무슨 글을 읽고 싶어 하는지를 찾아내 상품화시키는 유능한 편집자이며 세상에서 대가를 얻어 내는 마케팅 기법도 아는 사람이다.


(* 나는 류시화 시인을 일절 몰랐다. 류시화 시인의 이름보단 책 제목을 알고 있었는데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이 책은 내 사촌남동생이 고등학교를 일찍이 자퇴하고 정서적으로 힘들어할 때 내가 검정고시 책과 이런저런 책을 사다가 줬을 때 그때 어떤 책을 선물해 줄까 하다가 사슴하나가 갸우뚱하며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제목이 고등학교 1학년을 다 끝마치지 못하고 자퇴한 동생에게 와닿지 않을까 싶어서 핸드폰에 사진을 찍어뒀던 기억이 있다. 일찍 자퇴한 것에 기죽지 말고, 일찍 학교를 졸업해 버린 거라고, 오히려 학교에 다니는 친구보다 시간을 더 벌 수 있다고. 그렇게 검정고시 학원을 매일같이 못 나가도 좋으니, 어디든 나가기를. 그때 당시 화성시에서 맡은 업무 중에 원두커피를 회원 분들과 알아가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커피 향이 좋아서 사촌 남동생도 좋을까 싶어서 무작정 차를 태우고 원두커피를 파는 곳에 찾아가 원두를 가는 기계와 커피원두를 사주기고 하고, 정서적 환기에 최대한 애를 써줬다. 책상 배치부터, 정리부터. 달력을 사다가 필요한 일정을 적어야 함은 물론이고, 시험 신청이나 시험을 합격하지 않아도 좋으니 학원에 가서 본인만에 일정한 스케줄이 있길 바랐을 뿐이었다. 키는 180cm 넘는 큰 사내아이지만. 나에게 첫 동생은 사촌 남동생이 처음이라 갓난아기 때부터 봐왔던 친구여서 아무리 키가 크고 등치가 있어도 아기 같았다. 경찰서에서 나에게 연락을 줬을 때도. 부리나케 달려가보니 가출한 여자 아이 하나, 편부모 친구 하나. 그 사이에 내 사촌남동생이. 나도 아직 자녀가 없는데 이럴 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까? 어떻게 훈계를 해줘야 할까? 그래서 페이스북 메시지를 그룹으로 묶어서 무슨 일이 생기거든 언제든 연락을 주라고 했는데 어린 친구들이 내가 부모도 아닌데 평생을 책임져 줄 수 없다면 저 말 또한 가볍게 하지 못하는 말이라는 걸 서른 넘어서 알게 된다. 미성년자 여자인 친구는 부산에서 천안까지 올라온 친구였고, 할머니와 살던 친구. 위장 성매매로 성인의 돈을 갈취하려던 친구. 더 무서운 성인은 그런 어린애를 납치해다가 족쇄를 걸려고 했나. 도망가버렸다고 한다. 그러니 어린 여자인 친구들아. 왜 꼭 여자애 한 명에 남자애들은 우르르 몰려다닐까? 사지 절단을 내고 싶다만 언젠간 깨닫는 날이 올까나. 너무 먼 강은 건너지 말아야 함을. 강을 건넜더라도 헤엄쳐서 다시 빠져나오는 방법을 알려줄 눈군가를 찾아 나서기를 바랄 뿐이다. 평생 정해진 인생은 그 어디에도 없다. 사주팔자. 사주는 정해졌어도 팔자는 고칠 수 있다고 한다. 고치는 건 점쟁이들 관할이 아니고 본인 스스로가 해야 한다. 그러니 점쟁이나 누군가한테 묻지 말고 스스로 고쳐나갈 생각을 머리에 박아둬라. 부모도 친구도 그 누구도 못 해준다.)


(* 두 번째 류시화 시인을 알게 된 건 최인아 책방에서 네스프레소 20주년과 함께 건축과 관련된 북토크에 참여했다가 한참 탐조라는 것에 관심이 생겨 책표지를 보고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책을 사게 됐다. 그 뒤로 가끔 제목을 보고 그날 마음에 드는 시를 하나 골라서 답시를 쓰긴 했는데 재밌어서 썼다. 세 번째로 갖고 있는 책은 휴게소에서 샀다.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이 책은 펼쳐보지도 못했다. 워낙 시작한 책들이 많아서)


약 수십 년 전 기사 한 명을 새로 채용하였다. 그 시절 나는 신경이 날카로웠다. 보통 직원들은 사장에게서 야단을 맞으면 얼굴이 하루 종일 굳어 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별것도 아닌 일에 불덩이같이 화를 내었어도 5분 후에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사장님 약속장소에 가실 시간입니다." 그는 자신이 아는 길이어도 지도를 미리 보고 샛길들을 확인하였다. 그런 태도를 보고 <막히면 돌아가라>라는 책을 사다 주었더니 그는 너무도 좋아하였다.


(* 신경이 날카로웠던 팀장님이 계셨다. 날카롭다기보다 성격이 불같은 느낌이랄까. 근데 나도 불같은 성격이 있어서 그런가. 다른 사람들이 표현하는 것에 비해 나는 불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 불같은 성격은 나에게도 영향이 미치기도 했지만 중요한 건 그 불같은 성격 또한 나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냈었다. 남들은 무섭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무섭다고 한 사람에겐 무섭지 않았고, 무섭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무서운 경향이 있었다. 그건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날카로운 사람이라도, 화가 난 상태여도 나는 능청스럽게 또 말을 잘 건다. 남들은 무섭지 않으냐고 할지라도 나는 잘 몰랐다. 왜 무서워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진짜 무서워해야 할 건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대부분 기사들은 길이 막혀 차가 꼼짝달싹 못하면 "이게 내 탓이냐?" 태도를 보였지만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장님, 저 옆 골목으로 한번 가 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나는 언제나 찬성이었다.


(* 내 탓인 것 만 같아서 좌불안석인 때가 많았다. 내 탓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기사님과 나의 차이는 주저하지 말고 다른 길로 빨리 우회를 해도 되는 것을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그는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음에도 오후에 비가 안 올 수도 있다고 하면서 차를 닦아 놓았다. 그것도 완벽하게 닦아 놓았다. 그는 내가 권하는 책들을 다 읽었고 심심하다고 기사 대기실에서 화투를 치지도 않았다. 우선 차량을 최선을 다해 관리하였고 남은 시간에는 나이 어린 직원들에게 도와줄 일 없느냐고 묻는 사람이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 돈으로 차량 정비 서적을 사서 공부하는 기사를 나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만난 적이 없다.


(* 내가 만나온 직장에서 나이가 든 사람은 어린 친구들에게 맡길 줄만 알지 어린 친구들이 잘 다루는 것을 배우려는 자세는 보이지 않으셨다. 그래서 매번 부탁과 요청을 당연시하게 했고, 그 당연시가 일의 업무 흐름을, 방향을 끊게 만들었다. 나라고 늙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내가 못하는 것을 해내고 있을 땐, 눈여겨봤다가 나도 해본다는 것이다. 영상 편집을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래서 나도 영상 편집을 해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는데 어디에 출품할 게 아니라면 일단 이것저것 만져보면서 만들어보는 것이다. 참 세상에는 해보고 싶은 것도 해봐야 할 것도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태어나서 뇌를 1%도 못쓰고 죽는다던데 내 뇌는 몇 퍼센트 쓰이고 있는 걸까? 그냥 무지한 닭대가리로 삶을 마감하기는 싫은데 말이다. 반 육십이 넘어가는 그 기점에서 나는 무얼 하고 있는 걸까?)


(* 심심하다고 그 남은 자투리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어린 친구들에게 도와줄 일 없느냐고 묻는 사람. 나도 직장에서 딱 한 분 뵀었다. 바쁠 땐 언제든 본인을 써먹으라던 높은 상사분이셨다. 권위를 스스로 낮추시는 분이셨다. 진정한 권위는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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