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준으로 살아왔다. 세상이 원하는 기준은 어디까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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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연 매출 400억 원대 회사의 영업부 과장직에 앉혔다. 그들은 그가 내게 아부를 잘해서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였지만 나는 그가 너희들 하고는 일하는 근본 자세가 다르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그 사람 됨됨이를 칭찬하는 말이 들려왔다.
(* 내가 2호봉에서 3호봉으로 넘어갈 때 함께 일했던 몇 살 어린 동료 직원이 있었다. 함께 초기 세팅을 하면서 많이 고군분투했던 친구였다. 나보다 어린데도 마음이 매우 깊고, 배울 점 또한 있었고 나와는 다른 성향이기에 서로 보완하며 애썼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가 없었다면 재밌게 일할 수 있었을까? 그 친구뿐만이 아닌 다른 동료들도 함께 애썼지만, 나는 나이가 나보다 많다면 그에 대한 기대치와 환상이 있고, 나보다 더 많이 아실 거야. 나보다 더 나으실 거야. 나보단 더 정직하고 올곧은 사람일 거야. 나보단 더 부지런한 사람일 거야.
그래야 그 위치에 있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이 깔려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있을 수 있나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보다 어린 친구가 나보다 무언갈 더 많이 알고 있다면 나는 그 점을 배우려고, 그 점을 나도 따라서 부족한 부분이 없게 메꿔주려고 애를 썼다. 2018년도 수퍼바이저분은 내가 질문했을 때,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 인정하시고, "이 부분은 내가 아직 잘 모르는데 공부해서 알려줄게." 하시고 알려주셨던 기억이 있다. 슈퍼바이저라고, 상부라고, 상사라고 모든 걸 다 알고 있지는 않구나를 알았고, 어떻게 서든 알아봐 주시고 찾아봐주셨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같이 알아가는 과정에서 함께 공부를 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니, 화성시에 일하러 갔을 때 슈퍼바이저가 누구냐고 질문을 받았다. 그 말은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 물어보셨다. 어느 분 밑에 있었길래 잘 따라오네.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누구라고 말씀드렸고, 전달드리니 "내가 해준 게 없는데 정샘이 알아서 다 잘했지."라고 더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직장에서 안 힘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직장에서 안 바쁜 사람이 누가 있을까. 다 바쁘고, 다 힘들다. 다만 열심히 하고자 하는 사람의 사기를 꺾거나, 동력을 앗아가는 사람은 윗상부에서 건드려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직장에 놀러 온 게 아니니까. 기술직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일이라면 더욱더. 자기 본업, 자기 자격증이 걸린 문제라 생각하고, 공부를 게을리하면 안 되고, 까먹으면 다시 찾아보고, 머리에 집어넣는 작업을 매일같이 하지 않으면 알게 모르게 누수와 실수들이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 아무튼, 그때 난 그 친구의 깊고 따뜻한 마음을 보고 나보다 더 선배라며 그 친구한테 배운 것들이 있다. 그래서 라인을 탄다면 그 친구에게 타야지~ 이런 말을 농담으로 던졌는데 그때 당시 모 직원은 나에게 왜 어린 후배에게 줄을 서냐며 나이 있고 직급 있는 사람에게 서야 하지 않겠냐며 약간의 반문을 했던 것 같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직급과 권위가 아니라 그 사람이 일을 진심으로 대하는 태도가 있는지. 그에 대한 됨됨이가 있어야 직급, 권위가 따라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속으로만 쯧쯧 했다. 나이가 어리다고, 나보다 생각이 다 어리지 않다는 걸 나는 안다. 나이가 많다고 다 생각이 깊지도 않다는 것도 알고. 그래서 그랬다. 내 기준으로 분류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렸다. 나라고 완벽한 사람도 아닌데 한참 부족하고 모자란데 말이다.)
눈앞의 홍당무가 탐이 나서 나오게 되는 행동과는 그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선임자가 미처 모범을 보이지 못한 분야에서는 어떻게 행동을 하여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누수 현상이 생기면서 탄로가 나기 마련이며, 남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행동이기에 보는 사람이 없으면 그 본성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적토마는 홍당무가 없어도 잘 달린다고 내가 말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 내가 무언가를 탐내본 적이 있을까? 사랑도. 권력도. 또 뭐가 있을까. 무언가를 탐내본 적은 없다. 탐을 낸다는 건 내가 갖지 못할 거를 갖고 싶어 하는 마음 아니던가? 탐을 낸다면 그냥 중형 suv에 대출 없이 아파트 등기 치는 정도다. 나머지는 다 관심 밖이다. 탐보다는 바라는 게 있다면 나쁜 짓 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개과천선이 되길 바라지만 그건 너무 큰 욕심인 것 같아서 그냥 내려놨다. 직업상 상담을 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다쳐서, 마음에 상처를, 또는 사회적 문제로 해결되지 않아서 그래서 착한 사람들이 걸리는 병 아닌가.라는 말들도 현장에서 몇 번 들었다. 참다 참다 화병이 나듯이 말이다. 아부나, 아첨은 제일 싫어하고. 성격상 그런 거 잘 못하고. 내적친밀도나 친해지고 싶은 사람한테는 장난도 잘 치지만 장난과 공적인 소통은 별개인 부분인지라. 라인 갈라 치기를 싫어하고. 일을 잘하는 게 우선이고 일을 잘하는 게 제일이고 그 밖에 행위들은 관심 밖이다. 내가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면 아첨, 아부꾼들부터 모조리 치워버릴 것 같다. 일+태도 = 금상첨화, 근데 일을 못하기에 아부로만 아첨으로만 어물쩡 넘어가려는 사람은 말없이 묵묵히 일하는 사람의 사기를 꺾게 만든다. 마치 선배에게 잘 보여서 족보를 얻고 맞담배피고, 술 먹고 그러면 딱히 공부하지 않아도 학점이 잘 나오는 것처럼. 그게 쉬운 길인가? 나는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학점을 낮게 받았으면 낮게 받지 말이다.)
(* 누가 보지 않아도 열심히 하는 자가 최고다. 누가 보든 말든 그냥 자기 일 묵묵히 하는 사람이 무탈하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알고 싶다면 혼자 있을 때 본인의 모습이 어떤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 나쁜 짓해도 되겠지. 나쁜 거 해도 되겠지. 그냥 넘어가도 되겠지. 그냥 쓱 보면 되겠지. 그래서 얻어지는 건 쥐뿔도 없다.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운 삶으로 도배되게 살지 마라. 요즘 CCTV도 소형카메라도 소형녹음기도 얼마나 많던지 나는 깜짝 놀랐다. 뉴스에서만 봤지 실상에서도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남의 인생 몰래 훔쳐보는 거는 치료가 필요하니까. 내원들 하셔라. 정신과 그리 무서운 곳 아니다. 살면서 한 번쯤은 자기 자신의 응어리 진 부분을 풀어보는 것도 경험이다.)
부자들은 세상이 원하는 기준으로 일을 하여 온 사람들이다. 세상이 원하는 기준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고 넓고 깊다. 세상의 기준에 맞춰 일하라. 그래야 부자가 된다. 그러나 나는 자기 기준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기준을 아무리, 귀가 따갑도록 설명하여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안다. 그들은 오히려 "덜 먹고, 덜 싸겠다" 꼭 그렇게까지 하면서 바둥바둥거리며 살아야 하느냐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잘 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얻게 된 결론은 역시 가난하게 살 사람들은 따로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 내 마인드가 덜 먹고, 덜 싸겠다. 주의였다. 저렇게까지 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랬던 내가 덜 먹고, 덜 싸겠다. 마인드로 살다가 머리가 깨졌다.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에. 그 격차에. 그래도 나는 그 속도와 격차가 느껴져도 해맑게 잘 지냈는데 그런 나에게 돌을 던지는, 의문을 던지는,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순수하다는, 때가 묻지 않았다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 먹고, 자고, 싸고, 사는데 말이다. 근데 나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나에게 던지는 말들이 마치 그렇게 살면 안 돼.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들려왔다. 그럼 뭐가 정답이길래. 나에게 그런 눈빛과 말들을 던지는 걸까 싶었고, 나는 도대체 어떤 세상에 살다왔나. 현실을 마주하게 됐다. 그래서 이제 과거의 내 마인드를 싹 다 갖다 버렸다. 싹 다 버리려고 애썼고, 버려진 부분들이 많고, 아직 남아있는 것도 많지만 다시 그 감정과 기분을 느끼기 싫어서 최고가 되야지가 아니고, 최선을 다했으면 그걸로 됐다. 그렇게 바뀌려고 애쓰고 있다. 인생은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라는 걸 내가 산만큼 앞으로 더 살아가야 한다는 걸 30년 이상을. 세상은 또 어떻게 바뀌고, 어떻게 굴러갈까. 그 사이에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 어떤 우산을 마련해야 할까. 차에 우산을 한 무더기를 싣고 다녔는데 막상 인생에서 내리는 비를 막을 우산은 준비해두지 않았던 나를 발견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 가난을 거꾸로 하면 난가 라는 문구를 봤다. 그렇다. 나다. 근데 상대적인 것이라서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나를 비웃을 수도 있다. 참 재밌는 인생이다.)
20대와 30대 초반까지의 직원은 제대로 가르치고 본인 스스로도 노력하면 바뀔 가능성이 높다. 30대 중반부터 40대 중반까지의 사람들은 50% 정도는 가능성을 보이지만 나머지 50% 시늉만 한다. 나의 경우 40대 중반 이후 사람들에 대해서는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를 전혀 하지 않으며 특히 50대 중반 이후의 사람들은 소귀에 경 읽기였기 때문에 그냥 하던 대로 내버려 둔다. 50대 중반 이후 사람들은 2003년까지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었고 그 이후부터는 아예 내가 입을 다물고 살아왔다. 지금은 좀 바뀌지 않았을까 기대도 한다.
(* 시늉만 하는 50%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시늉이 아니라 바뀌고 싶은 마음이 매우 크다. 40대 중반부터는 변화를 전혀 기대하지 않으신다고 한다. 결국 사람은 고착화되어가기 쉬우니 젊을 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굳어지지 않게 계속 움직이고 머리를 쓰는 습관을 들여놔야 한다. 돈 드는 게 아니다. 오히려 돈이 더 따라오게 되어있다. 그러니 움직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