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라는 것엔 다 이유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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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되기 위한 전문적인 교육은 전혀 받지 않았던 그는 단순한 색채와 뚜렷한 윤곽으로 밀림 속 온갖 식물들의 잎새 하나까지 다 묘사해 내었고 20세기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선구자가 되었다.
(* 내가 형식적인 틀, 무언가 배우는 걸 별로 선호하지 않는 이유는 그 과정으로 인해 내 자유성이 침범되는 게 싫어서 그랬다. 글쓰기 수업 중에 왜 줄을 계속 끊어 쓰냐고 물어보셨다. 그 사유는 영어는 못하지만 영어공부할 때 또는 문단에 글이 많으면 이해속도가 더딘 나는 끊어 읽기를 자주 했는데 </> 슬러시를 치면서 읽어가는 편이다.
근데 이런 특성을 가진 내가 글을 쓰다 보니 무슨 시처럼 끊어야 될 부분에 꼭 엔터를 쳐서 글을 쓰게 되는 습관이 들게 됐다. 글이야 가독성이 일단 좋아야 나는 읽히는 편이라 내가 쓴 글임에도 내가 잘 안 읽힐까 봐 줄 바꿈을 남발했다. 또한 나는 카톡 또한 한 두 단어 쓰고 성격이 급한 탓에 바로 보내버린다.
예로 이렇게 보내버린다.
어디야?
나는
지금
집이야.
한 문장으로 나는 지금 집이야. 이렇게 카톡을 보내야 하는데 상대방은 그럼 나는 이 뒤로 내가 무엇을 치는지 기다리는 게 지치려나? 참 아이러니 하다.
성격이 급해서 치는 족족 엔터를 눌러버리는 것뿐인데 상대방은 더 답답할 수도 있다. 상대방은 더 가독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일요화가에서 전업화가가 되는 사람들을 나는 행복한 사람들로 믿는다.
(* 그렇다. 모두가 전업화가가 되는 그날까지 일요재능을 하나씩 만들어보자. 그게 삶의 재미를 가져다준다. 어느 순간 과업이 끝나는 순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그러면 삶이 무료해진다. 예로 빈 둥지 증후군처럼 자녀들을 위해 평생 양육과업에 매진했지만 이제 훨훨 날아가는 자녀들, 그리고 생겨버린 빈 둥지, 그곳을 무엇으로 채울지는 이제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자녀들을 너무 끼고 살기보다. 이제는 스스로의 재미를 선물해 주자. 그리고 자녀에게 무언가 보답을 바라고 주고 "나는 이만큼 해줬는데 너는!" 이런 마음으로 무언갈 해준다면 애초에 주지 말고, 본인 노후생활에 좀 더 보탬을 쌓아보자.
그러니, 무언가 줄 때는 받는 사람에게 물어봐라. "너 이거 필요해?" 대답이 "네 필요해요." 그때 주는 것이다. 필요하지 않은데 주는 물건과 시간과 모든 것들은 짐이 되어버린다. 휘발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상대방은 원치 않았지만.
정작 나중 가서는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너를, 그렇게 불효자로 프레임을 씌우지 말라.
항상 물어봐라.
학원이 필요하니.?
이게 필요하니?
무엇이 필요하니?
자기가 필요했던 경험에 비추어 모든 것을 판단하지를 않길 바란다.
당신은 필요했어도 상대방은 필요하지 않았을 수 있다.)
즐겨서 하는 일, 좋아서 하는 일을 취미라고 정의한다.
(* 좋아서 하는 일은 누가 하지 말래도 그 앞으로 가서 하고 있다.
대가 없이 하는 일들이 진짜 그 사람이 좋아서 하는 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