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이라고 섣불리 하지 마라 (5) - 세이노

싫어하는 일을 섣불리 해라.

by 쏘리
세이노의 가르침 표지.png




p. 207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면 다음 세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하여야 한다.





(* 나는 행복을 믿고 안 믿고의 범주가 아니라 느끼냐 느끼지 않냐의 범주로 생각한다. 행복을 믿는다고 행복이 느껴지고, 행복을 믿지 않는다고 행복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아닌 걸 알아버렸다. 행복을 느낀다는 건 어떤 걸까? 나는 어떨 때 행복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개개인마다 다르다. 행복이란 정의는 1. 복된 좋은 운수 2.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출처 네이버 사전) 나는 좋은 운수인가? 좋은 운수라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행복을 느끼고 있다.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고 흐뭇해서 좋아서 웃기도 한다. 자유주의 자본주의 대한민국에 태어나 현재 나이가 33살에 현금 1억 도 없지만 그 이상을 가진 사람보다 웃음의 빈도수는 높다. 그 이유는 삶에 재미를 찾았기 때문이다. 내 재미는 내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그 재미에 빠졌다. 무인도에 떨어져도 그 무인도를 해부하면서 놀지 않을까 싶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 지내야 한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인가 명제와 참인명제, 거짓인 명제를 구분했던 문제들이 있었는데 수학인데 숫자가 아닌 명제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이 논리적이라 재밌었던 기억이 살짝 있다. 물론 100이면 100 다 맞추진 못했어도 그 챕터를 좋아했다. 그래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니 무조건 사람들과 지내야 한다. 참인 명제일까? 사람들과 지내다가 죽는 경우도 많은데. 가설이 잘 못 됐나. 뭐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현재 교류하는 사람은 가족과 현재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뿐이다. 그 밖엔 생활하면서 짧게 소통하는 건 마트 캐셔 점원분들이나 동네 산책 가서 말 몇 번 섞어본 이웃들이 전부. 그 이상의 관계는 맺지 않으려고 한다. 20대 때는 누군가 생일이면 자정에 맞춰서 생일 축하도 해주고, 경조사를 다 챙기려 애썼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다 챙길 수 없음을 알고는 이제 굳이 대인관계를 늘리지 않는 시기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고는 늘리지 않는다. 나이 들수록 늘리는 게 아니라 줄여가야 함도 느꼈다. 물건을 계속 사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는 물건으로 활용해서 지내함을. 모든 이삿짐은 내 경차 모닝에 담길 정도만 갖고 지낸다. 그 이외에는 짐짝이라는 것을 나는 이사를 수도 없이 하면서 느꼈다. 이렇게나 내가 많은 물건을 갖고 있었다니, 옷은 매일같이 미어터지고, 그러고선 또 옷구경을 하고 기분전환을 한다는 내가. 참 그러곤 돈이 없다고 아파트를 못 산다고, 평생 이렇게 살다가 가는 거 아닌가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러니, 나는 똑같은 기분과 상황을 겪기 싫으니 삶의 패턴을 바꿔버린다. 견물생심이라고 물건이 보이면 사고 싶듯이 물리적으로 나는 분리시켜 버린다. 자신의 보금자리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삶의 무게가 다르다. 내가 1억 6000이라는 빚을 갖고 출퇴근하는 것과, 빚 하나도 없이 출퇴근하는 발걸음이 다르듯이 말이다. 빚 없이 살았던 내가 빚이 생기니 까마득하면서 분수에 맞게 살지 않으려고 지랄을 했구나 싶었다. 그러니, 미디어에 광고에 마케팅에 놀아나지 말아라. 졸부들 빼고 그 미만들은 정신 차려야 한다는 소리다. 부자들은 개미들의 쌈짓돈으로 부자가 된다는 걸 잊지 마라. 그게 세이노 어르신이 강조한 머니게임이다. 근로 노동으로 번돈을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감내하면서도 번 그 돈을 허투르 쓰고, 길바닥에 갖다 버리고는 세상 탓을 하지 말란 소리다. 세상 탓을 한들 그 세상은 내 편이 아니었다. 세상을 내편으로 만들 생각도 없었지만 내편 네 편 쪼개는 그 유치원생들도 안 하는 그 짓거리에 더 이상 내 삶을 갖다 받치기가 싫었다.)





(* 그럼에도 행복이 있다고 믿는 자들에게 세이노 어르신은 화두를 던졌다. 행복을 믿는다면 세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신다. 파헤쳐보자.)





첫째, 그 분야에서 정말 최고 일인자가 되는 길이다.




(* 이인자는 행복하지 않을까? 삼 인자는? 그 외 순위는.. 이인자 하면 박명수개그맨이 떠오른다. 늘 유재석 개그맨 옆에서 이인자 캐릭터로 무한도전에서 활동을 했다. 무한도전은 내가 중학교 때 시험기간이면 유일하게 챙겨봤던 예능프로였는데 그땐 중학생의 시선이었으니, 깔깔 웃고 그들이 던지는 해학 안에 의미를 찾아내지 못했다. 지금은 30살 기점이 넘어가 다시 짤막하게 보여주는 영상들을 들여다보니, 그들이 나왔던 나이가 내 나이가 되니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지금 그들은 무한도전을 하지 않지만 또 각자의 채널에서,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만에 색깔로 길을 걷고 있었다. 참 재밌고 좋았는데 그래서 박명수개그맨은 라디오스타 패널로 나와 그런 말을 하셨다. "언젠가는 도태되겠지"



2013년도 패널이다. 도태라는 단어가 13년도부터 써져 왔구나..




https://www.youtube.com/watch?v=d5CXhk6Ei0w




2분 27초부터 보면 좋다. 3분부터가 박명수개그맨의 웃음기 뺀 자신만의 철학을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인자라는 타이틀을 오랜 시간 가졌지만 나는 박명수 개그맨이 늘 이인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유재석이 그럼 이인자고 박명수가 일인자냐?라는 것이 아니라 각자만에 고유함이 다 다르듯이 프로그램 개수로 순위를 매기기보단 행복의 척도는 일인자도 이인자도 그 외 사람들도 모두 느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뭐 그 분야 최고 일인자면 제일 좋겠지만 일인자라고 마냥 행복한 게 아니다. 그 자리를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서 얼마나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겹겹이 쌓여야 하는지 또한 알아둬야 할 사실이다. 늘 행복할까? 늘 좋을까? 최고는? 1등은? 부자는?




행복이란, 절대적 척도가 판단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내가 부자가 아니어서 불행한 거야.

내가 일인자가 아니어서 불행한 거야.



내가 부자면 더 행복할 거야.

내가 일인자가 되면 더 행복할 거야.



이 명제가 참인 명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세이노 어르신은 그저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면 가정을 했지

사실확정은 아니니...



그냥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봤다.



그러니 행복은 느끼는 자와, 느끼지 못하는 자.

그러니 나라는 사람의 행복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삶이 재밌다는 것이다.



나는 최고로 돈을 많이 받았을 때가 세후 380만 원 딱 한 번뿐이었는데 그때 나는 원룸방에서 울었고, 그게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걸 알았고. 돈이야 있으면 좋고 재밌고 삶의 편리성이야 높아지겠지만 행복을 보장하는 건 아니었구나. 그러곤 퇴사를 갈겼다. 머저리 같은 판단이었다고 나를 계속 자책해야 할까? 다시 원위치를 가지 않으면 나는 계속 불행한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야 할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또 다른 상황과 경험들이 펼쳐진 것에 나는 주목했고 그 과정을 즐기니 딱히 두려울 것도, 겁낼 것도, 조바심이 날 것도.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월마다 입금되는 월급은 없어도 매일같이 입금되는 하루는 내가 아까워서라도 재밌게 지내야겠다는 마음이. 뇌리에 박혀있다. 평생 일을 해야 한다면 일을 하다 관뚜껑을 덮어야 한다면 지금 이 시기는 충분치 않아도 나에겐 나름 좋은 시간이라는 것이다.)





(* 세이노책을 리뷰하는 것은 처음 리뷰하는 것에 대한 사유도 많이 써놨지만 부자가 되려고 읽기보단 곽상도 50억 판결에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 그리고 같이 일했던 팀장님이 물었는데 못 알아들어서 뭐.. 세이노의 존재는 유튜브를 보다가 어느 사람이 인생이 바뀌었다는 댓글을 보고 뭔 또 책장사하는 놈이구만 그러다가 무료배포라 길래 돈도 없는데 또 바이러스까지 설치되는 거 아니야? 하다가 깔아보니 이 사람 죽은 거 아니야? 했지만 실존인물이라는 걸 알고는 재밌는 소설책 읽는 것처럼 끊어서 봤다. 그러곤 내가 어른다운 어른이 하나 없음에 기가 죽었을 때 이런 어른도 있구나. 내가 살아도 되겠구나. 그러곤 홀릭된 게 전부다. 그렇다고 세이노가 적은 모든 말에 예스를 외치지도 않았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언제 쓸 수 있는 말이냐며 혼자 쉐도우복싱을 하고, 어찌 아랫물에게만 맑기를 바라는지, 윗물들이 보여준 건 썩은 것 밖에 없었으면서 나는 맑은 물을 찾으러 다녔지만 죄다 오염되었는지 모른 체 맑은 척들을 하는 물 밖엔 없었다. 그러고선 나를 나무라니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내 모순은 모순도 아니었더라. 그러니 어린애들보단 어른들이, 한 살 더 나이 든 사람들이 더 뼈를 깎는 고통들을 보여줘라. 나 또한 나보다 어린 친구들 앞에선 바른 어른이 되고 싶어서 나쁜 짓은 하지 않으려고 나쁜 연/놈들이 보이면 보고 배울까. 짖어도 준다. 물리적 힘은 세지 않아도, 경제적 능력은 월등하지 않아도. 잘못된 것을 보면 잘 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종자들에게 개같이 짖어준다는 것이다. 뭐 간에 기별이나 갈까? 가해자가 어떻게 힘을 키우냐면 방관자와 피해자들의 단순함을 좋아라 한다.




그러니 가해자 힘을 키워주지 않으려면 방관을 멈추고,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늘 공부머리와 안전장치들을 늘리고, 가해자를 보면 개같이 짖어주고 고개를 더 빳빳이 쳐들고 개 같은 놈들이라고 쪽을 줘라. 어차피 삶은 한 번뿐. 그걸 깨닫고 나면 못할 게 없더라.




그 문턱에 다녀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만 있을 뿐. 삶은 늘 죽음과 함께 하고 있음을 잊지 마라. 탄생과 죽음은 동시에 찾아오는 것이다. 탄생만 있는 삶은 없다. 그러니 불로장생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불로장생한다는 놈들이 있으면 그놈이 사기꾼 새끼니 돈을 갖다 받치지 말고 자신의 인생을 즐겨라. 그 마음 연약함을 갖고 노는 새끼들은 나라에서 처벌이 약해서 남는 장사들이라 또 날뛰기 마련이니, 왜 이마빡에 적어두지 않는지 모르겠다.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한 놈들은 인두로 마빡에 적어놨으면 좋겠다. 인권이라는 건 피해자 인권이 더 우선적이여야지. 가해자 인권이 피해자 인권보다 그 우의에 있어야겠냐. 싶더라. 아무튼 아직 멀었다. 대한민국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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