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이라고 섣불리 하지 마라 (8) - 세이노

싫어하는 건 섣불리 해도 될지요?

by 쏘리
세이노의 가르침 표지.png



p. 208-209


좋아하는 것을 나중에 하기 위해 일단 먼저 돈부터 악착같이 모으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이제 네가 지겨워> 여주인공은 33세 독신이고 죽도록 성실한 직장인이다. 동물원 산책을 좋아하고, 아프리카 야생동물 돌보는 것이 꿈이라 퇴근 후 수의사 공부를 한다. 경제적 가치가 별로 없는 것을 좋아하지만 통달의 수준과 장인의 경지에 이를 정도 오타쿠 아니라면 섣불리 좋아하는 것을 하면 안 된다.


(* 내가 좋아했던 건 재즈, 떡볶이, 영화, 걷기 산책 이렇게 크게 뽑을 수 있다. 요즘엔 기록하고 남기는 것에 빠져서 하루라도 안 쓰면 뭔가 허전하다. 기록하는 이유가 뭘까 싶었는데 나는 초등학교 때 빼빼로데이 때 받은 쪽지 또한 보관하는 추억박스가 매시절 있었는데 그걸 들춰보는 습관이 있다. 가끔 현생에 바쁘게 살다가 또는 방청소하다가 그걸 들춰보고 있노라면 그때의 기억에 추억에 가끔 도달하게 되는데 그 재미가 내 인생에 낙이라면 낙이였던 것 같다. 근데 나이가 드니 추억박스는 바래지고, 기억도 희미해졌다. 그럼에도 나는 과거에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았는지 들춰보고 싶어서 남긴다.


누군가 자본금을 준다면 나는 '재즈볶이'라는 상호명에 메뉴는 오로지 떡볶이뿐이고, 배경음악은 재즈만 틀고, 와인은 잘 모르지만 저렴한 술부터 떡볶이에 어울리는 와인까지 세팅을 해놓고 낮에는 책도 보고, 저녁엔 담소도 나누는 가게를 차리고 싶다. 웨이팅이 긴 식당은 딱 질색인지라 오로지 한 테이블만을 위해서 시간 대별 손님만 받고 싶다.


언제 세종시 사는 친구가 임신을 해서 놀러 갔는데 그때 한 테이블 가게를 예약하고 치즈에 요거복(복숭아에 요구르트를 넣는 디저트였다. 한 때 유행했었다.) 안주에 처음 경험해 보는 패턴이었다. 그러곤 행정안전부 뷰를 담은 어떤 모 호텔에서 혼자 잠을 잤다.


지금 그 친구와는 차단된 관계다. 그 친구가 먼저 나를 차단했기에 나도 차단을 했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무엇이 차단인 관계로 이끌었을까? 근데 그게 중요할까. 그냥 남아있는 관계에 충실할 뿐이다. 모든 관계를 다 끌어갈 생각도 없다. 관계라는 것은 이제 보니 계절 같은 것이었다. 뜨거운 때도, 차가운 때도, 뜨뜨 미지근할 때도. 계절이 바뀌듯이 관계 또한 고정적인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뜨거웠던 관계들이 차가워지고, 차가웠던 관계들이 다시 뜨거워지기도 하고, 뭐 그게 인생하고 똑같구나. 인생도 뜨겁다가 차갑다가 온탕 냉탕 안 가본 사람이 있을까. 또 반신욕처럼 하반신은 뜨겁게 상반신은 차갑게, 마음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었다. 차가워졌다고 뜨거웠던 순간마저 차가웠던 기억으로 바꾸긴 싫으니 그래서 추억박스엔 버리지 못한 것들이 천지다. 이미 끝난 관계임에도 그때의 그 시절 나는 누구와 함께 늙어갔는지를 담아뒀다. 그때의 나는 또 어땠는지 지금의 나도 중요하고, 앞으로의 나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내 모습 또한 소중했기에 나는 기록하고 보관한다. 그게 나였던 것이다.)


(* 좋아하는 걸 섣불리 하지 말라 하시니, 내 "재즈 볶이" 상호명 가게는 누가 차려줬으면 좋겠다. 떡볶이 고수들이 얼마나 많은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천지차이라 좋아한다고 시작했다가 좋아하는 것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 선 듯하지 못한다. 하는 과정을 즐기는 자라면 실패 또한 경험이겠거니 하고 뛰어들겠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다면 신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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