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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박구리의 죽음 - 류시화

답시를 올립니다.

by 쏘리
류시화.png



p. 140


직박구리의 죽음


(* 생물의 죽음)


오늘 나는 인간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 나는 직박구리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직박구리와 인간의 연관성은 무엇인가)


가령 옆집에 사는 다운증후군 아이는 인간으로서

어떤 결격사유가 있는가


(* 정신건강수련생 집합교육 시절

단양리조트에서 정신과 의사에게 들었던 질문

당신 옆집에 조현병 이웃이 산다면 어떨 것 같은가?)


그날은 그해의 가장 추운날이었다

겨울이었고


(* 매년 뜨거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맞는 인생이 이젠 당연하단듯이

즐기는 방법을 알아가게 된다.)


대문 두드리는 소리에 밖으로 나가보니

그 아이가 서 있었다


(*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아무도 찾아오길 바라지도 않았다)


죽은 새 한 마리를 손에 들고


(* 화장실 앞에서 죽은 새끼 새를 보곤

어떻게 해야할 까 하다가 남자친구에게

묻어주고 싶다고 하고 묻어줬다.

그게 낙산사 화장실 앞에서의 일이다.)


늘 집에 갇혀 지내는 아이가 어디서

직박구리를 발견했는지는 모른다


(* 갇혀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우리의 생각이었고

그 아이는 넓은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가 그렇게 규정짓고 있었음을 잊지 말자)


새는 이미 굳어 있었고 얼어 있었다

아이는 어눌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 새는 이미 저승에 갔지만

이승에 남아 있는 새는 어떻게 처리해야할 지

망설인다)


뜰에다 새를 묻어 달라고

자기 집에는 그럴만한 장소가 없다고


(* 이미 그 아이 마음에 잘 묻었다.)


그리고 아이는 떠났다 경직된

새와 나를 남겨 두고 독백처럼


(* 독백처럼 그 아이는 마음에

새를 묻었다.)


눈발이 날리고

아무리 작은 새라도 언 땅을

파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흰 서리가

땅속까지 파고들어 가 있었다


(* 어디에다 묻을까 고민을 하고

조심히 들어다가 화장실 근처 뜰에다가

사람들이 밟지 않는 위치에

묻어줬다. 그리고 애도했다.

그 곳에선 수리 부엉이 새끼도 봤는데

그 아기새는 왜 거기에 차갑게

누워있는지 모르겠다.)


호미가 돌을 쳐도 불꽃이 일지 않았다.


(* 호미도 아는 것이다

지금 불꽃이 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아이가 돌아온 것은 그때였다

다시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아이는 신발 한 짝을 내밀며 말했다


(* 아이는 무엇을 다시 생각하고 왔을까

아이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을까

그 아이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새가 춥지 않도록 그 안에 넣어서 묻어 달라고


(* 더 따듯한 마음에 묻기로 한다.)


한쪽 신발만 신은 채로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을 하고서

새를 묻기도 전에 눈이 쌓였다


(* 그 아이의 마음은 어디까지

헤아렸던 것인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인가


(* 인간이란 규정지을 수 없다

이해하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인가


(*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무표정에 갇힌 격렬함

불완전함 속의 완전함


(* 무표정에 요동치는 생각

불완전함 속의 복잡함)


너무 오래 쓰고 있어서 진짜 얼굴이 되어버린

가면


(* 가면없이 사는 사람 누가 있으려나


가면이 없으면 없다고 난리

가면이 있으면 있다고 난리


그놈의 규정짓기 재밌는 인간)


혹은, 날개가 아닌 팔이라서 날 수 없으나

껴안을 수 있음


(* 팔이 없는 사람은

껴안을 수 없음


하지만

사랑할 수 있음


사랑하는 것에 이유도 조건도 없음


그게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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