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에겐 소울푸드가 뭐였을까요?
따끈따끈하게 개봉한 <조커 : 폴리 아 되> 영화를 어제 보고 왔다.
조커 1편은 수원 롯데시네마에서 봤던 기억이 난다. 계단에서 춤추는 씬이 인상 깊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온 뒤 나도 주차장에 가면서 춤을 췄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이번 편은 초반엔 에니메이션처럼 조커의 이중인격을 설명하려는 건지 뭔지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대중 앞에서 보여야 하는 웃음 인격, 속마음은 난폭한 인격도 있는 데. 그 둘이 분장실에서 치고 박고 싸우다가 무대 위로 올라간다. 그 두 자아가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엔 깜방 씬으로 시작하면서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그 깜방 관리자들은 아서에게 비아냥 거리면서 계속 오늘의 농담을 요구했다. 농담을 맡겨둔 것도 아니면서 오늘은 농담 없냐, 오늘은 웃지 않냐. 오늘은 왜 이리 차분하냐 툭툭 던지는 말들. 그러면서 아서의 턱수염을 면도 해준다. 피가 약간 나지만 나머지 뒷처리는 알아서 닦으라고 한다.
비를 맞는 조커가 아닌 아서
그러고 데려가는 길에 비가 오는데 이쁜 형형색색 우산 중에 아서만 안 씌여준다. 그렇게 변호사에게 데려다주니, 변호사는 같이 쓰고 오면 어디 덧나냐고 나무란다. 진심으로 아더를 걱정하고 한 명의 인간다운 존중을 해주는 모습이 느껴졌다.
그렇게 아서에게 그 유년시절에 받았던 학대경험으로 분리된 자아간에 충돌, 여러가지 인격에 대해 잘 인터뷰하고 오라고 한다. 그렇게 어쩌구 저쩌구 하다가. 비아냥 되던 담당 교도관이 노래교실을 신청했다고 한다. 거기서 만난 할리퀸, 리를 만나게 된다. 리는 거짓말을 하면서 까지 조커와 같은 동네에 살았고, 프레디를 죽이길 바랬는데 진짜로 죽였다고. 그래서 당신을 만나기 위해 이 병원에 자의 입원을 했다고 까지 한다. 아무튼 그 둘은 세상 둘 도 없는 찰떡궁합인 자아를 만난 것처럼 사랑에 빠진다. 중간중간 뮤지컬같은 느낌이 났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뮤지컬인 영화를 선호하지 않는다. 대부분 인기가 좋았던 <어바웃타임>, <라라랜드> 영화를 나는 안 봤다. 어바웃 타임을 데이트 할 때 봤는데 너무 현실성이 없어서 중간에 나갔다. 그치만 어바웃 타임과 라라랜드 팬층이 두터워서 다들 재밌게 봤다고 그럴때 나는 갸우뚱 했다. 그럴 수 있다. 조커 또한 현실성이 없는데 1편 보다 2편은 뭔가 더 가벼운 느낌이다.
리는 조커를 꼬시는데 성공을 하고, 이 철창을 벗어나서 산을 쌓자고 한다. 그 사이에 조커는 세상에서 그 누구도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다가 그런 사람을 만나고 나서 제2의 인생을 사는 것처럼 행동한다. 지옥같은 감빵생활, 무의미한 감빵에서도 행복함을 느낀다. 이렇게 사랑은 위대한 것인가? 보면서 모든 사람은, 범죄자들도 사랑에 빠질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즌브레이크> 미국 드라마 에서도 순애보 캐릭터가 나오는데, 나는 저런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엄마한테 그랬다. 세상에 순애보같은 남자가 있을까 싶지만. 아무튼 나는 개인적으로 조커가 변호사를 해임하고 스스로 변론하는 장면에서 한 때는 서커스 동료였던 동기의 변론을 듣는 씬에서 "나는 네가 무서워, 너는 나를 작게 만들었고, 니가 유일하게 극단에서 나에게 잘해주던 사람이었는데.."라고 하며 말 끝을 흐린다. 그 과정에서 조커는 흔들렸다. 과연 자신의 모습이 조커인지 아서인지. 조커로 살고 싶은지. 아서로 살고 싶은지. 나는 아서로 살길 바랬다.
리의 자의입원 퇴원 전, 아서에게 찾아가 아서가 아닌 조커 분장을 시키고 사랑을 나눈다.
: 할리 퀸은 아서가 아닌 조커로 살아가길 바란다. 할리 퀸은 아서가 아닌 조커를 사랑한다.
근데 사랑하는 여자친구는 아서가 아닌 조커로 살길 바랬는데, 조커가 아서로 살겠다는 발언아닌 발언을 간접적으로 했을때, 그 재판을 끝까지 보지 않고 나가버렸고, 아서는 의문의 폭발현장때문에 탈출하긴 했지만. 다시 만난 리가 조커가 아닌 아서 안녕. 이라고 하고 떠나니까...
사랑이 끝났구나. 싶으면서 다시 붙잡혀 들어간다. 마지막 엔딩은 사이코 같은 재소자가 그리 길지 않은 농담이라고 하면서 오줌을 싸네 마네 결국 싸는건 똑같은데 하면서 아서에게 난도질을 한다.그러고 엔딩이 난다.
아무래도 아서로서는 사망이지만 이젠 아서는 죽고 조커로 살아가는 인생이 펼쳐질 듯 하다.
나는 아서이길 바랬지만.
세상은, 사랑하는 사람은 조커이길 바라는 마음을 확인하고 아서는 아서로 살아가는 것보다
조커로 살아가기를 타의적으로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드리는 그런 내적 갈등이 담긴 영화 같았다.
아서야. 그 동안 그 어린 시절 친모의 정서적 학대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주인 부모로 부터의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해 이리 저리 방황했던, 아서는 이제 없다.
그럼에도 아서로 살아가기 위해 애썼던, 고백했던 그 장면은 잊지 못한다. 5명을 죽이고 1명인 엄마마저 베개로 짓눌려 죽었다고 자백하는 그 장면은 옷을 다 벗고 있지 않았지만 옷을 하나도 입지 않은 것 처럼 자신의 마음을 다 고백했던 그 장면은 최고 였다.
그리고, 아서에게 "그 극단에서 유일하게 날 놀리지 않고, 잘 해줬던 건. 아서 너 뿐이였단 말이야. 근데 나는 그 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너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나를 죽일까봐 두려웠어." 라는 친구의 증언 또한. 너무나도 사실적이고, 진심이 담긴 증언이여서 인상 깊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친절했던, 나에겐 천사같았던 친구가 내 눈 앞에서 살인을 하는 걸 목격한 친구.
도대체 어떤 모습이 진짜 그의 모습인지 알 수 없지만.
증언을 마치고 그는 너털너털 걸어간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아서를 등진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