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내 세상

정신건강사회복지사 현장으로 들어가게 된 과정

안 궁금하실 거 알지만 그냥 씁니다.

by 쏘리


image.png?type=w580 봉담 지지고 컵밥 맛있는데 사라졌어요.



위기팀에 배치되고 지지고 컵밥집에서 낙서로 적은 글 입니다.


중학교 때, 거침없이 하이킥을 보고 코미디 PD 또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근데 공부머리가 없어서 막연하게만 생각해서 이미 머릿속엔 내가 설마. 오케스트라가 될 수나 있겠어?


(* 피디가 되고싶어서 무작정 천안신세계교보문고에 가서 가장 두꺼운 PD 관련책을 샀었다. 그 둔기 같은 책에는 피디는 오케스트라라는 표현이 있었다. 지금 그 책 제목이 기억안난다. 첫 동아방송예술대 자퇴후 그 책을 다 갖다버렸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러고 한 한기 재학 후 자퇴를 하게 된다. 그리고 남은 하반기 죽은 것 처럼 지낸다.


평생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될까봐.


(* 보통 우리나라는 대학교 안 나오면 그냥 인생 최저점이라고 생각을 한다.


대학을 나와도 최저점이 될 수 있고, 대학을 안 나외도 최고점이 될 수 있다.


결국 사람 하기 나름이다, 다만 그 대학 졸업증이 주는 이미지는 어쩔 수 없다.)


(* 장학금을 받아서 가는 게 아니라면 진짜로 학문을 제대로 공부하거나,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러 입학을 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 그냥 4년제 대학 졸업증이 필요해서 가는 거라면 몇 천만원을 꼬라박고 대학생 놀이하는 것 밖에 지나치지 않는다.)


(* 그래도 돈이 있다면 대학은 한 번쯤은 가 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거기에서 얻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경험, 기회, 이런 것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난 여자기에 군대문화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대학교 가면 각 지역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군대도 그렇지 않나?




남자는 그럼 대학 1번, 군대 1번 으로 얼마나 많고, 다양한 삶들을 접할 것이며, 거기서 오는 인생 굴곡들이 있겠지? 인생 공부겠지? 뭐 꼭 군대를 가야만 뭐 꼭 대학을 가야만은 아니겠지만.


그냥 그 게임장에 놓여지게 된다. 머니게임이 아닌 적응게임이라고 하지.

(*게임이라는 용어는 '세이노' 선생님의 표현을 따온 것이다.)


아무튼 자퇴하고 엄마가 유방암이셔서


(* 엄마가 한 창 아플 때, 나한테 혼난 적이 있으셨다. 그 때 내가 만난 7살 연상 남자친구. 만나지 말라고 했는 데 만나가지고 엄마는 본인 아픈걸로 협박하셨다. 내가 이때 쌍용동쪽에 있는 에버그린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서빙하고 있을 때인데, 그땐 데이트도 없는 날인데 추가근무를 요청하셨나? 아무튼 알바 중에 엄마가 아프다고 어쩌구 저쩌구 해서 집에 들어가보니 하하호호 웃고 떠들고 있어서 나는 그날 경찰차가 앞에있어도 무단횡단을 하면서 버스를 부여잡고 집으로 튀어갔다. 근데 아무렇지 않게 아픈걸 무기삼아 그런말을 한 엄마에게 샹욕을 부엇다. 그러고 나선 나는 엄마가 아프다는 말? 어느정도 걸러 들었다. 7살 연상을 만난 내 잘못? 아님 엄마 잘못? 그 7살 연상 남친은 우리 엄마에게 뺨도 맞았다. 근데도 난 만났다. 그러니 부모가 헤어져라 헤어져라 해도. 결국엔 둘이 알아서 헤어지게 되어있다. 난 내가 좋다면 좋다는 거고 싫다면 싫은거다. 그게 부모든 친구들 누구든 내가 하겠다면 했던 것 같다. 그러니 내가 왜 조언을 구하고 다녔는지. 그 때 내가 얼마나 머저리 같았는지. 그 때 내가 얼마나 주변사람들에게 민폐였는지. 이제는 안다. 어차피 지 멋대로 하고 싶은대로 할 거면서. 그래서 이제는 조언을 딱히 구하지 않는건 아니지만. 선택이 내 몫이기에 내 인생에 정답이 상대방, 타인한테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그리 조언을 구하진 않고, 조언이 필요한 부분은 서치해서 취할 거 취하고, 버릴거 버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더 난감했다. 실은 자퇴하기 전부터 엄마는 아프셨고, 이러다가 떠나시는 거 아닌가. 싶었다.


학교생활은 생활대로 술먹고 끝. 그렇다고 내가 그 학교에서 술도 안먹고 공부에만 매진했나?


그것도 아니다. 새내기 답게 놀거 놀고 기합받을 때 기합 받고 개그 동아리 오디션도 보고. 꽁트 연습도 조금 해보고. 동아리 대표 춤? 안무도 하고 동아리 엠티도 가서 재밌게 놀기도 했다.


아무튼두 번째 입학한 학교는 난이도가 이 전 학교에 비해선 순한 맛이였어서 근데도 진짜 웃긴게 그 두 번째 대학에서도 일진 놀이를 즐겨하는 친구들이 꼭 있다.


폭력이 아니여도 그 여왕벌 같은 친구들. 사람이 3명만 모여도 왕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구조가 생긴다.

이거는 내가 글을 따로 썼는 데 나중에 첨부하도록 할게요. 아무튼


학교가 집하고도 가까워지고 지방 4년제 대학 과도 사회복지학과 내가 지속적으로 다닐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은 이런 조건이었을까? 자퇴생각이 전혀 없었다. 빨리 졸업하고 돈이나 벌고 싶었다.



대학생때쯤엔 사회복지사는 박봉. 사회복지사 공무원 자살. 사회복지사 끼리 결혼하면 수급자.

이런말들이 종종 귀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때 난 그럼 다들 사회복지사 안할 거면 여기 왜 온걸까? 나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서 온건 아니였지만. 결국 사회복지사가 되겠지. 라는 생각이기는 했는데 아무튼 그래서 재밌게 또 잘 다닌다. 그때 만난 한 살 어린 동생 친구들이 참 고맙고 감사하다. 그 중 대각선으로 윗층 아랫층 살던 동생이있었다.


그 동생 덕분에도 4년하고 한 한기를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 글을 본다면. 너가 맞아. ^^


귀여운 애기 잘 키우고, 애 엄마 이전에 나한테는 소중하고 재밌던 의지하던 동생이었다.


하지만 이젠 가정이 있는 아이가 있는 남편이 있는 동생이니까 충실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기를


아무튼 그래서 1.2학년 땐 잘 모르겠고 학교 적응, 교수님들 스타일 적응. 또 이 학교라고 학교생활이 없는 건 아니다 선후배가 없는건 아니다. 하지만 이미 전문대 빡센 똥군기에 단련된 나는


학과 엠티가서 복학생 오빠들에게 기합 받을때 쫄은 한살 어린 동생들에게 귓속말로 친구들아 이정돈 참말로 귀여운 거야.


얼차려 받을 때 나의 해맑음에 더 빡친 복학생 오빠 오빠라는 호칭도 아깝다 모지리


나이처먹고 복학해서 하는 일이 애들 군기 잡는거라니 그렇다고 애들이 싸가지가 없거나 기합 받을 정도였나?


어우 절대, 이제 막 갓 졸업한 고3, 대학생활에 들뜬 친구들일 뿐.


지금 생각해보니 복학생 친구들아 너네 사회나오면 병장에서 사회에서도 병장?


노! 걍 늙은이 복학했다. 조용히 학교 다니고 취업전선에 뛰어들 준비를 갈고 닦으시길요.


* 대학교 축제 때 술을 먹다가 어떤 한 10학번 선배? 11학번인지 이름정도만 어느정도 알고 있던 남선배 서로 인사도 안주고 받는데 술취해서 자기 자취방으로 가자며 했던 그 선배 실명은 까지 않을게요.


그 때 내가 걍 속으론 어라 이새끼봐라 학교생활 그만하고 싶나.


근데 지가 더 술 취해가지곤 힘이 안 써지니 그냥 또 다른 여학우 찾으러가는


고추잠자리들아 그러다 큰일난다.


학교 수업중 핸드폰 위로 카톡 카톡 카톡 섹스섹스섹스 카톡 알림에


급하게 핸드폰을 뒤집어 놓는 남자는 애아니면 개일까요? 재밌습니다.


하지만 모른척 해드렸습니다. 제 알바 아니니까요.


그래서 3학년 때? 실습을 시작해야 하는 때.


아동청소년도 관심있고, 사회복지 공무원은 잘모르겠고 그래서 시작한 굿네이버스 하계실습 4주.


서정리로 다녔습니다. 그 때 직장인 처럼 와 이렇게나?


성동초 친구들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한 반에 다 모여 질문을 쉴세 없이 해주던 친구들 학년이 다 다르니


통제가 너무 어려웠던. 그래도 참 맑고 애너지 넘쳤던 친구들


그 중 꼭 개구장이?쟁이? 남학생.


한 참 청개구리마냥 나랑 기싸움 중 여기 있기 싫으면 가방싸서 너가 가고 싶은데로 가!


했는데 그냥 복도에서만 쭈빗쭈빗 너도 그게 속마음은 아니잖아~


수업 잘 듣고 싶잖아~


가방 싸서 나도 솔직히 어디 멀리 갔나 싶었는데


한 번 져주자. 눈높이 맞춰서 달래주니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는 친구.


민망해도 친구들이 다 쳐다봐도 그게 맞아.


초반이 지나고 나니 다시 웃는 친구들 그러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친구들이 있다.


초반엔 나도 정신없고 파악하느라 이름들 외우느라 좌석배치표에


첫 진행이니 이것저것 일찍가서 준비를 해도해도 또 뭐 놓친거 없나.


순서를 적어두기도. 아무튼 나중에 익숙해지면 눈에 안보이는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잘 웃는 것 같아도 어딘가 맘 것 웃지 못하는 친구 등치 크고 삼대장 친구들이 있어도.


속은 가장 여린 친구들 이 친구 얘기들어주면 저 친구 얘기도 들어달라 아우성


선생님 귀는 두개인데 왜 그걸 몰라주니.


그래서 귀가 4개 였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그때도 했고,


위기 대응팀에 있을 때도 그랬다.


귀가 4개면 어떨까.


발가락으로라도 전활 받아야 하나.? 전화를 놓치면 어떡하지 더 급한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지.


난 왜 저렇게 생각을 했을까. 지 몸은 하나 인데 무슨 분실술을 쓸 수 있는 사람인 것 마냥.


영웅? 정의? 칭찬? 직급? 승진? 노.


걍 나는 나다.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보통 본인 마음이 투영되어서 내 뱉는 말이라고 한다.


영웅이라고 하는 사람은 본인이 영웅이 되고 싶어서?


정의라고 하는 사람은 본인이 정의롭고 싶은데 못해서? 이렇게 해석하는게 맞나?


아무튼 신경은 조금 쓰였지만 내 전화 대신받아줄거 아니면 내 업무 대신 처내줄거 아니면


아갈 싸무시고요. 아 이쁜말,


그 예쁜 입 다무세요.

그 예쁜 입 조용히 해주세요.

그 예쁜 입 셧업.



그래서 굿네이버스 하계 실습을 끝내고,


동계실습은 정신건강영역쪽으로 간다.


시작은 박봉이니 뭐니. 근데 정신건강전문요원은 좀 더 페이가 높고 병원에서 근무한다는 말들


괜찮다는 말들 이 말에 혹해서 경험을 해본다.


이거 플러스 하얀집이라고 불리는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곳이 궁금하기도 했다.


갔을 때, 카니발을 타고 외진 곳으로 갔는데 그때부터 긴장감이 있기 시작했고,


나의 편견은 쇠창살에 얻어 맞는건 아닌가.


근데 궁금하기도 하고. 봉사를 잘 마치고 나왔다.


봉사시간 200시간 채우는게 학과 내 졸업 요건 중 하나였다.


그러니 정신건강쪽에서 200시간 봉사시간을 채웠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정이 안 생기나. 어떻게 생각이 안 나나.


그 곳에 가면


환영해주기도.


경계하시기도.


무관심하시기도.




똑같다.


그냥 우리가 모르는 곳에 갔을 때




모르는 대학


모르는 직장


모르는 군대


모르는 곳에 가면




대부분


환영하기도, 쟤는 어떤애인지 탐색하기도, 무관심 하기도..




그 정신의료기관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다.




다 사람이 지내는 곳이다.




아무튼.




생각한 것보다 내 편견이 많았고,




실습 책에도 썼지만.




간식에 매우 전투적이시다.




폐쇄된 공간이 있다보면




군대도 폐쇄적이지요?




초코파이 하나에


작은 것 하나에


모두가 모여든다.




그걸 갖고 싸우기도 하고


그걸 갖고 하루의 기분이 달라지기도 하고




그 뿐이다.




그 사이에 나는


공부를 하고 케이스를 해야하고


rapport 쌓아야 한다.




라포 쌓는거.


정신의료기관에만 있을까?




아니?


대인관계 맺는게


라포쌓는거나 맞찬가지다.




사람의 힘듦을 경청하고


어떻게 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지.


고민하고 방법을 나만 찾아서 주입식으로 이거 하세요. 저거 하세요.


약드세요. 운동하세요. 뭐뭐하세요.


강압적인게 아니라.




당신이 지금 해야할 건


집중하셔야 할건


회복이고, 그 회복이라는 마라톤에


나는 동반주자라는 것이다.




이걸 수천번 수백번


인지시켜드리고




함께 하는 게


정신건강전문요원이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일이다.


JOB.




그렇기에 이게 내 일상에 너무 침범하면 안 된다.


전지전능한 신은 이 이승에 없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2년간 봉사했던 곳에서


좋게 봐주셔서




수련을 받게 되었고,


지역사회로 나오게 되었다.




그러면서




만성질환 - 급성기 위기개입 - 중증 재활 - 응급실 자살시도자




대략 이렇게 경험들을 쌓고




한 사람이 조기 정신증에서 위기까지. 만성으로 가는걸 막고.


만성일지라도 일상에서 스스로의 주체성을 갖고


살아가실 수 있도록 돕는 걸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몸 소 체득하고 경험하면서




나도 사람인지라


내 인생 챙기기도 바쁘면


그만 뒀다.




나라고 그만 두고 싶었을까.


백만장자 부자도 아닌데


내가 뭔 ..




그러니 각자만에 사정이 있고,




머니게임


윤리게임


적응게임




그 사이 어딘가 다들


치열하게 살기도


동굴에 들어가기도


다시 어찌저찌 살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이게 내가 현장에 들어오게 된


간략한 history 입니다.












(* 이렇게 솔직하게 쓰는 이유는.


내가 살아오면서 들었던 피드백 중.




최고 관리자는 "자기만에 색깔이 없다."


간호부장님은 "너를 좀 드러낼 필요가 있다."




나는 저 말을 듣고


내가?


아닌데 내 색깔 확고한데


다만 직장에서 나대서 좋을 거 없으니


조용히 지냈지만


내 사람들한테는 오도방정 오바쌈바다.


하지만 내가 오도방정 쌈바를 안보여줬다면




그건 당신과의 나와의 거리가 그 만큼


가까워질 이유도,


그리고 가까워질 수 없는 위치에 서로 놓여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하도


걱정을 하거나


하도 와글와글해가지고




쓰다보니


재밌어서 쓴다.




어떠세요


제 색깔.




궁금하거나


말거나




그건 제 관심 밖


그냥 제가 하고 싶어서 합니다.




범법행위는 아니니까요.






(* 말투가 좀 공격적이거나, 따뜻하지 않고 건방지거나.?


이런 부분들은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을 쓰다보면 그때의 그 감정이나, 느낌이 글로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하계 굿네이버스 실습 끝난 후


지도해주셨던 슈퍼바이저 선생님이 주신 마지막 편지







image.png?type=w580






(* 정소연쌤~ 반가워용!! 요렇게 마무리 인사를 또 하네용!! 실습은 마무리 되었지만. 앞으로 또 다른 모습으로. 만나게 될 것이라 그 모습 또한 기대가 되요. 실습 내내 너무 잘 따라와줘서 고마워요. 최대한으로 여러 기관 연계해서 편하게 프로그램 진행 할 수 있도록 노력해도, 과제도 많고 ㅠ3ㅠ 주교사도 해야되고 ㅠㅠ 많이 힘들었지요? 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긍정의 아이콘으로 견뎌주어서 고맙습니당. ^-^


특히나, 정반대의 학교에 배치되어서 더 힘들었을거예요. 그만큼 쌤을 많이 신뢰하고 배치한거라는 점. 잊지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번 실습이 선생님의 꿈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이 고민이 많을 시기일거예요. 나도 선생님때 참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것저것 하기는 하지만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이게 맞는걸까. 그럴 때는 여러가지로 해봐요. 경험도 많이 해보고. 여행도 꼭 다녀보고. 늦은게 아니예요. 늦은 건 없어요. 아주 잘 하고 있으니까. 항상 퐈이팅하구용 고민있으면 언제든지 불러용. 치킨 들고 기다릴게요.ㅋㅋㅋ


- ** 간사가 -)



어느 곳에 가든.


나와 맞지 않는 사람.


나와 맞는 사람.



내 수고를 알아봐주는 사람.


내 수고에 어깃장을 놓는 사람.


내 수고에 무관심하는 사람.


셋 중에 난 알아봐주는 사람은 감사고.


내 수고에 무관심하는 사람을 제일 좋아하고.


어깃장을 놓으면 개같이 물거나


아님 그냥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하고 그만 둡니다.


퇴사 이유중


1. 나와 가치관이 맞지 않을때


2. 내 개인적 사정으로


3. 더러워서.


셋 중에 하나겠지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영화] 조커: 폴리 아 되(2024) -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