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미국 석사

미국 대학원 라이프

내 미국석사 박사 유학생 시절은 치열하고 처절했다.


일단 미국 대학원 유학나가는 것 자체가 큰 챌린지였다.


한국에서 학부전공 경영을 하고 미국 대학원으로 스포츠사이언스 또는 운동과학전공으로 나간 케이스는 아마 내가 처음이었을 듯하다.


당시 영어도 부족한데 석사 전공 지식도 거의없는 상태였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


그래서 일단 미국대학원 입학시험인 GRE 시험에 올인을 했다.


6개월 정도 GRE공부에 매진했고 다행히 아주 좋은 점수를 받았다.


15개 정도의 미국 대학들에 지원을 했다.


5학교에서 어드미션을 받았다. 기적이었다. 아마도 높은 GRE점수가 큰 역할을 했던듯 하다.


Columbia U, U of Michigan, U of Texas Austin, Texas A&M U, 그리고 U of South Carolina.


어드미션을 받고 다섯학교에 똑같은 이메일을 보낸다. “땡큐. 그런데 장학금 지원이나 금전적 서포트 가능한 것이 있을까?”


다른 학교들에서는 어렵다는 답장이 왔다. 그런데 U of South Carolina 에서는 외국인들이 내는 등록금이 아닌 in-state tuition, 그러니까 주거주민이 내는 등록금을 낼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2009년 U of South Carolina 로 가게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국땅을 밟는 순간이었다). 심플한 결정이었다.


결국 이게 아주 좋은 결정이 된다.


입학하고 나서 보니 우리과는 당시 내 전공분야에서 미국에서 1-2등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우리 필드의 기라성 같은 교수님들이 과에 포진해 계셨다. 사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라 그분들의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시간이 꽤 지난 후에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미국가기 전 예상했던 것처럼 석사 기간동안 내 삶은 하루하루가 치열했고 처절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었다.


처음 수업 몇 번 들어가자마자 위기감이 들었다.


영어가 편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미국 남부 특유의 사투리 억양은 적응하기 힘들다. 거기다 전공지식도 부족해 수업따라 가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매 수업 렉쳐 전체를 소니 MP3 플레이어로 녹음하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도서관으로 직행했다.


도서관에서 녹음한 렉쳐를 리플레이하면서 텍스트북을 다시 복습했다. 1시간짜리 렉쳐가 끝나면 3-4시간을 도서관에 있어야 했다. 하루에 잠을 4-5시간 이상 잔적이 없었던듯 하다.


이렇게하지 않으면 한국으로 야반도주 해야 할 상황이 생길 것 같았다.


첫 1년 동안 이 과정을 반복했고 2년차 때부터는 녹음기가 필요 없어지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시간에 디스커션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그런데 석사과정은 수업따라가는게 전부가 아니다. 졸업논문 포함 리서치가 더 중요하다.


당시 내 석사지도교수님은 그때 조교수 2-3년차 정도의 젊고 유능한 교수였다. 감사하게도 나를 hourly pay를 받는 research assistant 로 받아 주셨고 석사과정내내 매달 900-1000불 정도 받으면서 공부할 수 있었다.


어렵게 얻은 기회였기에 교수님과 함께하는 모든 일들에 최선을 다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뜨거운 날씨만큼이나 뜨겁게 공부하고 일했다.


교수님의 역량 및 도움으로 석사기간동안 1저자로 2편의 논문과 공저자로 1편의 논문을 내게된다.


이 모든게 기적이다.


석사 2년 동안 아무리 바빠도 운동은 소홀하지 않았다.


통학은 매일 자전거로 했고 테니스도 이때부터 배우기 시작했고 주기적으로 러닝, 축구 등을 해서 좋은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유학생, 대학원생들 모두 공부도, 연구도 운동하면서 하길!


사진은 14년전 석사 학위 디펜스.


박사과정 이야기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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