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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 Apr 05. 2023

[물 zip 4호] 꽃과 함께 피어나는 기억

벚꽃이 피는 이맘때쯤 늘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 벚꽃이 피는 시즌이면 늘 올림픽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겼더랬다. 돗자리 한 장을 챙겨 88마당과 소마미술관 중간쯤의 풀밭에 자리를 잡고 돗자리를 폈다. 그 위에 누워 보이는 꽃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점점 쌀쌀해지면 짐을 챙겨 다시 집으로 향하곤 했다. 그때의 나는 연한 분홍색의 후드집업과 회색의 칠부바지를 입고 있었다. 분홍색 후드집업에는 파츠로 된 발레슈즈가 그려져 있었고 파츠가 2-3개쯤 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가끔 허기가 질 때면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소시지와 컵라면도 먹었다. 늘 밖에서 먹는 라면은 왜 이렇게 맛있는지 모르겠다며 엄마와 입을 모으고 아빠는 그게 그렇게 맛있냐며 물으셨다. 나는 이게 그렇게 맛있다며 컵라면 한 개를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며 다 먹었다.


지금 이 순간, 그때의 순간이 너무 진하게 떠오른다. 2010년 어느 봄날, 엄마 아빠와 함께 했던 꽃놀이가 진한 향기로 다가온다. 내가 지금보다 13살이나 어렸던 만큼 우리 부모님도 13년이나 젊었다. 지금 보다 얼굴에 그려져 있는 주름의 수가 적었을 것이고, 지금보다 밖에서 더 돌아다니셔도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의 엄마는 날 업을 수 있고 그때의 아빠는 조금이라도 험한 길에는 날 늘 안고 가셨다. 아빠는 푸른색 바람막이를, 엄마는 빨간색 스포츠 집업을 즐겨 입으셨다. 그때는 반짝이고 이뻐 보였던 옷들이 지금은 더 이상 옷장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지원아 우리 집 전화번호 이제는  031 아니야. 이제는 02야"라고 했던 아빠의 말이 이해가 안 되었다. "왜 02야?"

전화번호 앞에 붙는 번호가 지역번호라는 것을 알기 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제야 아빠가 왜 031이 아닌 02라는 것을 알려주었는지 이해가 갔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때 당시 그들이 했던 말이 기억나며 이제야 이해가 되는 말들이 많다.


'이래서 엄마가 그렇게 말씀하셨구나.'

'아 그래서 아빠가 그렇게 하셨구나.'


왜 그때는 몰랐을까? 왜 이제야 이해가 되는 걸까? 그때 더 잘 알았다면 참 좋았을 것 같다. 참 좋았을 것 같다는 말로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함께 지내지만 이따금씩 그때의 부모님이 그리워진다. 어린 딸을 보며 행복해하셨던 부모님이 그리워진다. 작고 소중했던 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셨던 그들이 그리워진다.


부모님이 마냥 나에게 당연했던 존재였던 그때로 돌아가되 지금의 마음은 가진 채로 가고 싶다. 부모님을 더 사랑하는 지금의 마음을 갖고 더 무조건적으로 부모님밖에 없던 그때가 그립다. 주말에 그들과 손잡고 올림픽공원에 가 사발면을 먹었던 그때, 주말 아침에 일어나 함께 티비를 보던 그때, 평일에는 잠이 덜 깬 나에게 밥을 먹여주던 그때..


가끔 그들 얼굴 속에 늘어난 주름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우리 엄마 아빠. 그때의 엄마 아빠가 무척이나 보고 싶다.


이맘때쯤이면 그때의 그들이 더 사무치게 떠오른다. 그들과 함께했던 향기로운 봄날이, 나갈 때는 따듯하게 나갔다가 돌아올 때면 추워서 뛰어 집 들어오던 그때를 나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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