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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 Sep 05. 2022

작가 김물의 젖어 있는 삶이란 (3) 물기 있는 법

건조하지 않게 살아가다

어떤 한 사람에 대한 추억이다.


그는 분위기에 매료되는 것을 좋아한다. 그가 어떤 기분이었든, 어떤 상황이었든. 산책할 때의 길가 분위기를 냄새로 여기고 이는 기억이 된다. 그렇게 모인 기억들은 다른 냄새들의 기억과 함께 그의 추억이 된다. 그에게 11월 중순에 풍기는 길가의 냄새는 보통의 겨울 냄새와는 조금 달랐다고 한다. 가을의 낙엽 냄새가 남아있는, 하지만 가을보다는 더 쌉싸름하기도,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게 하는 냄새였다고 한다. 그가 걷던 서울 종로 사직동의 냄새는 가을 잔향 그리고 함께 거닌 사람의 향기였다. 이 기억을 종이 속 추억으로 담았다.


걸을 때마다 보이는 사직동의 붉은 나무들, 낡았지만 알록달록하여 어딘가 촌스럽기도, 멋스럽기도  가게들은 지금의 순간을 기억하라고 말해왔다. 지금 나의 발걸음을, 손짓을, 표정을 그리고 옆의 사람을. 지금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며 그렇기에 특별하다. 오늘 사직동의 기억이 사라진다면 어떤 기억이 마지막까지 남아있을까?’


그는 만약 봄, 여름에 사직에 갔어도 분명 똑같이 분위기를 기억으로, 기억을 종이 속 추억으로 만들 수 있었음을 안다. 또 진실로 그때의 냄새도 분명 사직과 어울렸을 수밖에 없던 것도.


이글이글 거리는 무더운 사직동에서 더위를 피해 들어간 나무의 그늘이,  가까이 가기만 해도 냉기가 느껴지는 시원한 카페들이 지금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며 말해왔다. 지금 이 더위를, 내 손짓을, 표정을, 그리고 손 잡은 옆의 사람을.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거야. 너무 특별해. 만약에 오늘을 잊는다 해도 통째로 잊을 순 없어. 무엇이든 마지막까지 하나는 남아있어’


실제 냄새는 보관할 수 없다. 오직 종이 속 추억을 더듬으며 그때의 발걸음, 손짓, 표정, 옆의 사람을 기억하고 싶을 때 마음대로 냄새를 만든다 스스로.

“그때 그 냄새야”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때의 추억을 더듬었을 뿐이다. 그래서 어떤 냄새든 어울리지 않는 풍경은 없다. 그래서 그가 냄새를 좋아하나 보다. 매번 새로운 냄새인 것처럼,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처럼 아름답게 비출 수 있는 손거울 같아서 좋아하나 보다.


냄새가 아마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것 같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늙으니까. 내가 10년 전에 느낀 모습 그대로 느끼는 것은 불가능해. 어느 순간이던지 하나야. 그런데 냄새는. 같을 수 도 있어. 맡으면 알아. 지금 냄새가 그때 그 냄새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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