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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 Sep 05. 2022

로마에서도 지루할 수 있어. 별거야?

로마의 타바치

지금 이곳은 이탈리아 밀라노의 한 한인민박 도미토리이다. 5인 1실 도미토리가 꽉 찼다. 현재 시각 5:10 AM. 추워서 깨버렸다. 기능이 의심스러워 보이는 에어컨이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나 보다. 추워 이불로 온몸을 감쌌지만 보온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불이라 소용이 없다. 텅 빈 대합실 같은 이 방이라 더 시리다.


김물은 파리-니스-로마를 지나 어느덧 마지막 도시인 밀라노에 와 있다. 그리고 오늘 김물의 친구 H가 오늘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 곧 김물의 여행도 막을 내린다.


김물은 이탈리아 로마 한복판에서 극심한 지루함을 경험했다. 온몸이 땀으로 젖을 만큼의 더위와, 최소 몇백 년부터 시작하여 최대 이천 년 동안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유적지들 사이에서. 니스에서 이미 한번 소매치기의 매운맛을 당한 뒤라 가방을 앞으로 메고 수시로 가방을 확인하는데 진을 이미 다 뺐으며 37도까지 올라가는 기온과 건조한 공기는 살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과 새까매진 피부를 남겼다. 이러한 상황들은 더 이상 우리가 로마에서의 순수한 낭만을 즐길 수 없게 했다. ‘그래도 유럽까지 갔는데 내일이 없을 것처럼 놀아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와 이곳에서도 시간이 가는구나. 이곳에서도 그냥 똑같이 날이 바뀌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도 일상의 연속과 다름이 없었다.


로마는 이전에 거쳐온 파리, 니스와는 느낌이 다른 여행지이다. 파리와 니스는 소위 말하는 ‘감성 있는’ 별다른 의미를 가지도 있지 않아도 이쁜 곳 투성이다. 그러나 로마는 다르다. 툭 지나쳐온 곳이 몇백 년은 지난 건물인 것은 당연한 거니와 그런 건물 하나하나에도 역사가 다 있단다. 모든 곳의 의미와 역사를 알아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유적지에 대한 단순한 관심만으로는 커버가 되지 않았을뿐더러 로마라는 도시의 낭만을 가리웠다. 그럼에도 나는 ‘유럽 여행’이니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지루함도, 피곤함도 사치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며 다 타버린 얼룩덜룩한 얼굴을 한 채로.


구천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김물은 서울시 마포구 집에서 화장실 거울을 보고 있는 김물과 마주쳤다. 다른 점이라고는 타버린 피부뿐이다. 그렇다. 유럽 땅에서 느끼는 지루함에도 익숙해졌던 김물은 이내 그녀의 일상 속 지루함은 그 얼마나 당연한 이치인지를 깨닫고 만다. 인생의 ‘노잼’ 시기는 금기 사항처럼, 극복해야 할 사항처럼 느껴지지만 과연 꼭 그래야만 할까? 지루함을 느끼는 게 어때서? 뭐 별건가? 몇천 년 지난 유적지 앞에서도 하품을 하고 있던 그녀인데, 전공서적 앞에서 하품하는 것이 더 이상 걱정되지도 두렵지도 않다.


지루함도 인생의 레이스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어떤가. 지루함도 인생의 영감을 주는 타바치 라고 생각하면 어떤가. 지루하더라도 내 감정이니, 내 인생이니 행복하다. 거울 속의 내가 지쳐 보여도 어떠하리, 나 김물이라는 것만 알면 그만이다.


분명 로마는 계속 머리를 맴돌 것이다. 그의 판테온이, 콜로세움이 아니라 인생 지루의 법칙과 그를 대하는 용기가. 어쩌면 로마는 김물이 아끼는 도시가 될 것 같다. 99%의 확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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