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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 Sep 05. 2022

샌들을 밀라노에 버리고 왔다. 일부로.

소중한 물건을 다루는 법

예전에는 소중한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갖고 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든 물건은 본래의 자리에 있을 때 보다 더 진하게 기억될 수 있는 자리가 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그 물건들의 자리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물건의 영원한 자리다.


프랑스 니스 마트에서 산 6유로짜리 썬크림, 여행 내내 비행기와 숙소에서 신었던 실내화, 지난여름에 에이블리에서 8천 원 주고 구입한 샌들이지만 김물이 작년부터 올해까지 가장 많이 신고 사랑했던 샌들까지. 이 모든 것들을 각자 어울리는 ‘그 곳’에 두고 나왔다.


바르면 이상하리만큼 하얘지는 싸구려 썬크림은 한국에서 가져온 썬스틱을 다 쓰는 바람에 대신 몸에 바르기 위한 것이었다. 처음에 발랐을 때는 인위적인 향과 끈적끈적한 느낌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럼에도 너무 타는 것을 막기 위해 아침에 숙소에서 나가기 전에 매번 팔과 다리에 썬크림을 쭈욱 짜서 펴 발랐다. 바를 때마다 ‘으 끈적여’ 생각했다. 다 바른 다음에는 분을 칠한 것처럼 둥둥 뜬 내 팔과 다리가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여행 마지막 날 텅 빈 도미토리에서 바라본 주황빛의 촌스러운 썬크림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단순히 아끼지 않고 막 바르기 위해 산 싸구려 썬크림이었는데 마지막 날 바라본 썬크림은 버리고 가기에 아까웠다. 버리지 못할 물건이 되었다. 그래서 썬크림을 숙소에 ‘두고’ 나왔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향기를 잔뜩 머금은 그 썬크림의 자리를 지켜줬다. 도미토리의 창가 창틀에서. 김물에게 있어서 니스의 주황빛 싸구려 썬크림의 마지막은 이탈리아다. 끝까지 뜨거운 햇볕을 막아준 썬크림의 마지막 자리는 그곳이다. 아마 서울로 다시 가져왔다면 그 썬크림의 마지막은 ‘서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썬크림의 ‘이탈리아’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래 이게 내 자리야.’


천으로  얇은 실내화는 공항 가기 직전 운동화를 신고 나가는 나를 위해 비행기 안에서 편안하게  있어야 한다며 부모님이 챙겨주신 실내화다. 비행기에서, 숙소에서 신기 위한 것이었다. 17시간 이상의 비행을 하며 운동화를 벗고 얇은 실내화를 신고 앉았다. 발이 덕분에 편안했다. 프랑스 파리 마레 지구에 있는 우리의  숙소에서 나는  슬리퍼를  신었다. 사실 위생이 의심되는 유럽 집의 바닥 때문이기도 하다. 파리의 15구에 있던  번째 숙소에서도, 니스의 바닷가  숙소에서도, 로마의 공동 숙소에서도, 밀라노의 한인민박집에서도 계속  실내화를 신었다. 밀라노 말펜사 공항에서 파리 샤를   공항은 비행시간이 1시간  되지 않았기에  실내화를 신지 않았고, 파리. 샤를   공항에서 인천 국제공항을 오는 비행에서는 14시간이 소요되었기에 편한  실내화를 신었다. 마지막으로 신는 시간이었다. 애초에  실내화를 집으로 가져올 생각은 없었다. 3주간 유럽 땅을 누볐던  실내화의 상태가 멀쩡할리가 없을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예상대로 마지막에  실내화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실밥이 풀려 너덜너덜 해졌다. 파란색 무늬에 흰색 레이스가 달린  실내화는 단지 편안함을 주는 실내화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아니 당연하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그냥 물건이니까. 하지만 물건에 애정을 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는가? 일상에도, 여행에도 모두 3 이상의 향기를 가져다준다. 3 이상의 수분은 당연한 거니와. 김물은  그렇게 한번 물건을 두고 왔다. 에어프랑스 AF 382 비행기 이코노미 48G 좌석에. 너덜너덜 해진  실내화를 곱게 비닐봉지에 넣어 바닥에 두고 왔다. 슬리퍼에 대한 마지막은 그곳이다. 비행기 . 여행의 마침을 선언한  물건이다.


‘날 실내에서 모조리 신어줘서 고마워’


가볍고 통통거렸던 김물의 검은 샌들. 2021년도 7월에 에이블리에서 쿠폰 할인을 받아 8천 원에 산 김물의 샌들이다. 편한 착용감으로 작년이든 올해든 내내 그 샌들만 신었다. 그녀의 검은 샌들은 2021년 7월 8일 서울에서 청주 가는 길에 신은 것을 시작으로 2022년 8월 9일 이탈리아 로마를 마지막으로 신는 기능은 다 했다.

인천 국제공항으로 향하며 김물은 생각했다. ‘ 검정 샌들은 꼭 두고 와야지!’. 니스에서 그녀는 다시 생각했다. ‘아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편해. 두고 가기 아까운데..’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오 두고 가도 티도 안 나겠는데? 주인 할머님도 며칠 동안은 이곳 전용 슬리퍼로 생각하실 거 같아. 좋아 두고 가자.’ 이탈리아 밀라노 한인민박의 신발장이 제 자리인 듯 김물의 검정 샌들은 그렇게 그곳에 남겨졌다. 그녀의 20kg이 넘는 캐리어의 둔탁한 바퀴소리를 들으며 그 샌들은 밀라노에 남겨졌다. 샌들은 그녀의 2년간의 여름을 담고 있다. 20대의 청춘을 담고 있다. 검정 샌들의 마지막 모습을 그곳으로 정한 것은 여름을 함께 해준 샌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기억 속 샌들은 파리와 니스와 로마와 밀라노를 반짝반짝 빛을 내며 유럽 땅을 누빈 그 자국 그대로 간직할 테니. 샌들도 서울에서 끈이 떨어져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보단 럭셔리한 여행은 아니었지만 길거리조차 멋진 유럽의 한 복판에 남겨지는 게 좋을 테니. ‘그래 너 유럽에 있어라! 한국 가도 네가 그립다고 너랑 똑같은 샌들을 사진 않을게. 너는 네가 끝이야. 너로 끝’


‘고마워. 날 유럽에서 신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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