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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 Sep 20. 2022

첫 공간 ; 외딴섬은 아니야 이제

공간에 대한 첫 경험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김물은 흥미를 잃은 헝겊 인형을 만 지막 거리며 현관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인종이 눌릴 때마다 노란색 가방을 메고 나가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있었다. 총 2명의 아이가 남았고 다시 초인종이 눌렸다.

“물아 엄마 오셨어”

“물아 엄마 왔다.”


기다림에 지쳤던 것도 까먹은 채 양갈래의 머리가 다 삐져나온 것도 모른 채 현관을 향해 달려간다. 다른 한 명의 친구보다 먼저 집에 간다는 사실에 안도한 채.


그날은 그녀의 엄마를 기다리는 데 있어서 조그마한 설렘이 함께였다.


“물아, 오늘 엄마가 물이 주려고 이거랑 이거 샀다?”


방울이 달린 노오란 장갑과 꽃 모양의 플라스틱 머리핀이었다.


“우와!”

“어때 이쁘지?”

“응!”


100센티도 되지 않는 6살의 어린아이와 30대 후반의 여성이 추운 겨울 가로등 불빛 아래를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말할 때마다 입김이 서릴 만큼 추워 어린아이는 코는 빨개져 있었지만 방울 달린 노오란 장갑은 가만히 들고만 있었다.


그러고 들어간 집은 바로 이사한 ‘새’ 집이었다. 그렇다. 그날은 어린 김물의 기억 속 생애 첫 이삿날이다.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대우아파트에서 동양고속 아파트로 이사한 날. 2006년 찬 겨울이었다.


처음으로 집을 장만한 그녀의 부모님의 설렘을 어린 김물도 알았던 걸까 새 마루, 새 벽지, 새 가구들로 가득 찬 그 집은  온 가족의 행복을 담았다. 어린 김물은 방 3개가 딸린 그 ‘새’ 집에 들어서 방 하나하나를 살핀다. 큰 침대와 화장대가 있던 안방, 합판 책상과 참나무 침대가 있던 오빠 방, 그리고 온갖 짐들로만 쌓여있던 김물의 방.


고작 6살의 어린아이였지만 처음으로 방을 마주했을 때 김물은 처음으로 들어갈 곳이 없는 외딴섬의 마음을 느꼈다. 5살 위였던 오빠의 방과는 크기도, 모양도 너무 달랐던 방에 애정이 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아니 애정이 너무 가서 예쁘고 좋은 방을 가지고 싶었다. 슬퍼하는 내 모습을 보며 부모님은 초등학생이 되기 전에는 방을 꼭 꾸며주시겠다 하셨다. ‘나도 조금 더 언니가 되면 방이 생긴대’ 라며 매일 입에 달고 중얼거렸다.


그로부터 1년 뒤 2007년, 초등학생이 되기 전에 방을 꾸며주겠다는 부모님은 실제로 방을 꾸며주셨다. 집에서 차를 타고 남양주 쪽으로 가는 길을 달리다 보면 가구 단지가 나왔는데 그중에 한 가구점에 부모님이 아는 곳인 듯 우리 가족은 들어갔다.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보라던 부모님의 말씀대로 이 책상 저 책상 눈으로 사진을 모두 찍었지만 그 책상을 샀는지는 모른다. 어떻게 책상을 골랐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흰색과 보라색이 연하게 섞여 들어간, 철제 손잡이로 이루어진 가구들을 세트로 그 자리에서 구입했다. 집 오는 내내 새 가구로 꾸며진 김물의 방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지우고 그리고 지우 고를 반복했다. 이미 깜깜해진 집으로 가는 도로에서, 작은 우리 가족 자가용  ‘리오’ 뒷좌석에서 엉덩이도 못 붙인 채 무릎을 꿇고 인디언 보조개가 가득 보이는 표정을 하고선. 그 후로도 매일매일 ‘엄마 오늘 온대?’ “엄마 언제 온대?” 하며 창밖에 큰 트럭이 오나 안 오나 살피고 있었다. 매일매일.


며칠 뒤 진짜로 내 방이 만들어졌다. 흰색과 보라색이 연하게 섞인 옷장, 책상, 침대 까지. 매우 작은 크기의 방이었지만 새 가구들로 가득 찬 방은 오히려 더 풍요로워 보였다.  방에 들어가면 나는 새 가구 냄새가 너무 좋아서 방과 거실을 왔다 갔다 했다. 외출이라도 하는 날은 집에 가는 길부터 머릿속에 그녀의 방을 그렸다. 머릿속에 그린 대로의 방이  눈앞에 펼쳐지는 그 순간이 너무 두근거려서, 사랑스러워서 7살의 김물은 늘 현관에서부터 뛰어 들어가곤 했다.


공부를 하려고, 누우려고 산 책상, 침대이지만 혹여나 책상이 때가 탈까, 침대가 꺼질까 걱정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방 점검을 하고, 누가 방에 들어온다고 하면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더러워지진 않는지 매의 눈으로 ‘감시’도 서슴지 않았다. 어린 김물은 자신의 방을 이쁜 방으로 간직해야했다. 그녀가 가진 첫 ‘공간’이었으니까.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공간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가슴을 가졌다. 새 가구 냄새를 맡으며 잠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 이쁜 가구들로 둘러싸인 자신의 방을 보며 그녀의 첫 공간이 이곳임을 더 이상 이사 첫날 느꼈던 외딴섬은 없다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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