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인다. 큰 봉오리를 갖은 꽃 앞에서.
발걸음도 멈추게 하며 자신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꽃은 화려하게 활짝 웃어준다.
반면 꽃봉오리가 작은 것은 무심하다. 일부러 찾아가 봐야 하며 때론 갑작스럽게 선물 주는 듯하다.
하지만 화려했던 꽃의 저문 자리는 사람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눈부셨던 기억을 모두 잊어버리라고 말하듯이. 화려한 생명력은 불과 며칠로 끝나버린다.
반면 작은 꽃봉오리는 긴 생명력으로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잔잔한 기쁨을 준다.
웃음보다 미소처럼. 꽃이 저문 자리는 다시 생명이 쏟아 나올 듯이 사람들이 다시금 고개를 돌려보게 한다.
어떤 꽃이냐에 따라 피는 시기도, 각양각색의 꽃봉오리를 갖는다. 우리 아이들처럼.
난 지금 아이라는 꽃을 키우고 있다. 어느 날, 시 한 구절이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느냐고 시작되는 도종환의 시를 보고 아이들이 생각이 났다.
흔들리는 꽃이 그래도 올곧게 자라나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서 공부했다.
내가 먼저 알아야 흔들리는 시기가 와도 견딜 수 있을 거로 생각했으니까.
언제부터인가 자신감이 생겼다. 아닌 자만이었다.
아이를 위해 관심과 열성을 가지면 사춘기가 오지 않을 거라고. 오더라도 금방 사라질 거라 믿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성장기를 기록한 기록장,
모아둔 성적표와 상장 등을 보면서 나의 마음은 이렇게 굳어갔다.
큰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고서 사춘기가 왔다. 짜증스러운 말투, 대꾸 없는 말.
그래도 이 믿음으로 꿋꿋이 참아가며 아이의 비유를 맞췄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된 큰아들. 사춘기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나만의 오만이었다.
며칠 전 셋째가 내 핸드폰으로 텔레비전 프로를 본다고 갖고 갔다.
말과 다르게 다른 것을 하고 있어 화를 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슬그머니 그 자리를 피하는 큰아들을 보고서 내버려두었다. 당연한 태세 전환이라고 여겼으니까.
셋째랑 이야기를 끝내고 저녁을 먹으라고 하니 싫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면서 몇 마디 나누는데 큰아이가 운다. 당황스럽다. 이유를 물으니, 대답은 하지 않고 울기만 한다. 이야기하자고 해도 나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아이는 메모를 써 우리 부부 앞에 앉았다.
그러면서 엄마 아빠의 잘못이 있다면서 이야기한다. 무엇이 잘못된 거냐고 물으며 아이의 생각이 궁금해 계속해 질문했다. 아이는 자기가 현재 말할 수 있는 것에만 이야기하고 입을 닫는다. 이 시점을 놓치면 다시는 이런 대화를 오고 갈 수 없기에 나는 더 끈질
기게 아이의 작은 말 하나에 매달려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런 방법이 최선이라 여기며.
결국엔 아이는 공부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공부해도 소용이 없고 이제야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면서 아르바이트하겠다고.
순간 얼떨떨했다. 지금의 진로를 정한 것도 아이 스스로였다.
내가 진로를 정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말하는 아이의 말을 믿어야 할지 혼돈이 왔다.
아이가 무슨 의도로 말하는지 빨리 해석해야 했지만 내 머릿속 생각은 멈췄다.
이런 말을 처음 들었으니까. 논리적으로 앞, 뒷말이 맞지 않고 지금의 현 모습만 급급하게 바라보면서 미래를 막연하게 희망에 찬 말에 어이가 없었다.
화가 올라왔다.
그러니 말이 좋게 안 나가고 자꾸 윽박지르듯 몰아치듯 이야기했다.
아이는 나와 더 이상 대화가 안 된다고 여겼는지 방으로 들어간다.
아이는 나에게 부탁의 말을 하는 것이었다.
관심을 가져 달라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라고.
나는 이 본질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아이 입에서만 나오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서 반박했으니 아이 속이 느껴진다.
암흑 속에서 걷는 심정이었으리라. 앞은 보이지 않고 작은 빛도 보이지 않는 채 불안감을 느끼고 무조건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은 아니었을까.
말하는 내내 눈물이 또르르 흘린 모습이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는다.
다 컸다고 어른처럼 대했다. 아직 어리니까 문맥에 맞지 않게 이야기를 한다고 이해를 했어야 했는데.
사춘기가 끝난 줄 알았다.
아니었다.
어쩌면 사춘기의 시작과 끝은 존재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어제보다 조금 변화된 모습에, 어제보다 조금 다른 모습에서 사춘기가 끝났다고 착각하였는지도.
사춘기의 시작과 끝을 알았다면 지금 나의 행동에 작은 멈춤이 있지 않았을까.
아이를 잘 키웠다고 생각한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오늘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사춘기가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새삼 느껴진다.
아이는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우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화려하지만 오래도록 사람들 기억에 남을 수 있게. 바람과 비에 젖으면서 나에게 도움을 필요고자 했다.
우산이 되어달라고. 오늘의 작은 말다툼은 우산을 씌워주지는 못했지만,
꼭 이런 날이 아니더라도 틈틈이 우산이 필요한지 봐야겠다.
어떤 꽃봉오리를 피우면 좋을지 나에게 자문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꽃이 아니라 아이가 좋아하는 꽃봉오리를 만들 수 있게.
아이가 어떤 꽃을 피울지 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