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말하는 것보다 덜 멀어지기 위해

by 키스톤

친구와 3시간을 떠들고 돌아오는 길,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우리는 어떤 수 많은 단어들로 같은 시간을 채웠는지 되짚어 본다.
언제부터였을까.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다시 돌아보게 된 것은.
내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았는지,
혹은 어떤 단어가 내 곁에 오래 머물러 있었는지.


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건 결국 소통이다.
사람들은 오래 이어가고 싶어서, 더 잘 나누고 싶어 애쓴다.
하지만 ‘잘 나눈다’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집에서 하루 얼마나 말을 나누느냐는 질문에
부모는 30분이라 답하고, 아이는 5분이라고 답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부모가 생각한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자신이 아이에게 쏟아낸 말의 양을 기준 삼은 건 아니었을까.
지시와 잔소리를 소통이라 착각한 채로.
아이는 따뜻했던 한 문장만 기억하고,
나머지는 그저 흘려보냈을지도 모른다.


오늘 친구를 만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서로를 향해 말했을까.
아니면 내 말만 꺼내놓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혹은 상대의 말을 묵묵히 받아내는 데서 그쳤는지.
요즘 만나는 사람들에겐 꺼내지 못한 말이 유난히 많아 보인다.
그렇다면, 나 역시 누군가에겐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대화란 마주 보며 주고받는다는 사전적 정의와 달리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연결되지 않는 순간은 자주 찾아온다.
공감이 빠진 말,
평가와 판단이 먼저 앞서는 표현들.
그럴 때마다 설명할 수 없는 피로가 쌓이고,
그 시간은 오히려 거리를 벌려 놓는다.


내가 건넨 말들 속에도
그런 온도는 없었는지,
상대의 마음을 향하기보다
내 기준에 머문 순간은 없었는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다시 돌아본다.

말을 더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덜 멀어지기 위해.
다음에 누군가와 마주 앉게 된다면,
그때는 어떤 말을 남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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