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하나가 다섯 개가 되던 날
우리는 모두 이익을 좇는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니까.
나 역시 그랬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닐 것이다.
이익 앞에서 솔직한 사람을 탓할 수는 없다.
굳이 더 얻지 않더라도, 최소한 손해만 보지 않으면 괜찮다고 믿었다.
그 생각을 오래 붙들고 살았다.
코로나 시기, 그리 가깝지 않은 지인이 반찬을 보내왔다.
"엄마가 아프면 식사 챙기기 힘들잖아요."
상자를 여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아등바등 내 것만 쥐고 살았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계산하며 살았는데, 누군가는 계산하지 않고 마음을 보냈다.
그때부터였을까.
크지 않아도 좋으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나누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그리고 그것이 모여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에도 변함없이.
지인이 쇼핑백을 건넸다.
"선물이에요."
안에는 두쫀쿠가 다섯 개 들어 있었다.
얼마 전 내가 했던 이야기가 머리에 떠나지 않았다면서
"아이 마음이 너무 예뻐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어요. “
그날이 다시 떠올라 혼자 웃음이 나왔다.
큰아이가 학교에서 두쫀쿠 하나를 받아왔다.
반을 먹고 남은 것을 동생들과 나눠 먹으려던 찰나, 입맛을 다시던 큰아이가 막내에게
"조금만 남겨줘" 했고, 결국 귀퉁이 하나를 얻어먹었다.
그 모습이 괜히 마음에 남아 지인에게 말했던 것이다.
아이에게 말했다. "네 덕분에 선물을 받았어."
입이 삐쭉 튀어나왔다. 얼굴을 붉히며 왜 그런 얘기를 했냐고 투정을 부렸다.
나는 말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그 마음이 감동이 되어 돌아온 것뿐이라고.
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먹었다면 더 많이, 더 배부르게 먹었을 것이다.
그날 아이는 조금 덜 먹었다. 대신 우리는 함께 웃었다.
그리고 쿠키 하나는 다섯 개가 되어 돌아왔다.
이익은 계산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흘려보낸 마음이, 어느 날 다른 모양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손해 보지 않으려 꼭 쥐고 있던 손을, 조금은 풀어도 되겠다고.
아이는 그걸 나보다 먼저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