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꾸 듣게 되는 노래가 있다.
귀를 사로잡는 멜로디 때문이 아니라,
한 문장이 마음에 걸려서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
두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집은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
학원이 끝나면 밤 열 시,
늦은밤 현관문이 열릴 시간쯤이면
나는 이미 하루에 지쳐 있고,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짧은 인사 한마디. 그리고 이어지는 일상적인 동작들.
어느새 그것이 우리의 대화가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이들이 일찍 들어왔다.
별것 아닌 일이었는데 괜히 반가웠다.
그제야 알았다. 나는 매일 밤
늦게 닫히는 현관문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특별할 것 없는 일상.
눈에 띄는 사건도, 새로울 것도 없이
비슷한 결로 흘러가는 시간들.
어제와 오늘의 경계가 흐릿해질수록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그래서 괜히 주변을 기웃거린다.
무언가 달라질 계기를 찾듯이,
조금은 더 나아 보이는 방향을 더듬듯이.
하지만 그런 날일수록
오히려 그 한 문장이 나를 붙잡는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얼마 전에는 『채근담』의 한 구절을 읽었다.
“꽃이 화려하고 아름다워도
상록수의 늠름함에는 견줄 수 없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아름다움은 순간에 머물고,
늠름함은 시간을 통과한다는 뜻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따사로운 낮의 시간이
꽃길로 연결해주는 요즘.
온기를 머금은 공기 속에서
꽃들은 다투듯 피어나고,
세상은 잠시 환해진다.
그 풍경은 분명 눈부시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그쪽을 바라본다.
화려하고,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들을 향해.
나는 그 찬란함에만 마음을 빼앗긴 채
사시사철 같은 빛으로 자리를 지키는 것들을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늘 그 자리에 있었기에 오히려 보이지 않았던 것들.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오늘.
하지만 그런 날들이 쌓여
우리의 시간을 만들고,
결국 우리를 설명하게 된다.
우리는 종종
특별한 순간을 기다린다.
눈에 띄는 변화,
확실한 전환점,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장면들.
하지만 삶의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 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
그저 주어진 역할을 해내고,
흐릿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하루.
그 시간들은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쉽게 무너지지도 않는다.
나는 계속 살아가고 있었고,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이 평범한 하루를 다르게 바라본다.
특별하지 않다는 이유로
의미를 덜어내기보다,
흔들리지 않고 지나온 시간으로
가만히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
이제 그 문장은 체념이 아니라
하루를 견디는 방식이 된다.
그리고 나는 안다.
꽃길이 지나간 자리에서도,
오늘 밤 늦게 열릴 현관문 소리를 기다리면서도,
여전히 나는
나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