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어떤 일을 마치고 나면 묘한 아쉬움이 남는다. 내 능력을 다 쏟지 못했을 때, 누군가의 반응이 기대와 엇갈렸을 때, 또는 마음만 앞서 상황이 따라주지 않았을 때. 아쉬움의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그중 가장 길게 여운을 남기는 건 다름 아닌 '타이밍'이다. 행동의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나도록 속도를 맞추는 적기의 기술, 또는 그 절묘한 포착. 어떤 행동도 때를 잘 맞추면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놓치면 흐릿해지기 마련이니까. 머릿속으로는 타이밍의 중요성을 늘 되뇌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그 감각이 멀어져 쓴웃음을 짓거나 아쉬움에 발을 동동 구른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타이밍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아마도 눈치라는 이름의 감각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 말의 틈과 침묵의 결 사이에서 자라는 섬세한 본능이다. 대화하는 도중, 상대의 기분을 살피면서 말을 건네본다. 이 안에 바탕은 배려일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숨 한 번에 입술을 앙다문다. 그 말 한마디에 나와 그 사람 사이에 겨울이 올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론 그렇게 하지 못한다. 내 기분이 앞서, 말하고 싶은 것을 다 쏟아내고 나면, 관계는 서서히 금이 가고 결국 어긋난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어디론가 숨어버린다.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구냐 물어보면 같은 대답을 한다. 가족.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편한 관계. 그러하기에 종종 함부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 내기도 한다. 때론 상처를 받을 것을 알지만. 상처를 주는 말도 상대가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들리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타이밍이다.
말 잘 듣는 아들이 어느 순간에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사춘기가 온 것이라 했다. 그럴리 없다고 부정했다. 아니, 어쩌면 믿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어제랑 오늘, 특별히 달라진 것 없는데 태도와 말투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열렸다. 그때 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에게 눈치를 보았던 것이. 엄마가 무슨 아들에게 눈치를 보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처음엔 나 역시 무슨 눈치를 보냐고 되물었다. 내가 위에 있으니까 괜찮다고 여겼다. 아이의 기분을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때마다 아이는 짜증을 내고 대화는 단절이 되어갔다. 이런 시간이 지속되다보니 꼭 해야 할 말만 하게되었다. 작은 수다는 찾아 볼 수 없고 꼭 업무적으로만 대하는 기분이었다. 다른 식구들에게도 영향이 갔다. 어느 순간에 웃음이 사라진 집이 되어갔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망설이다 필담이 생각났다. 매일 메모지에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오늘 무슨 일을 했고, 아침밥을 안 먹고 간 아들이 걱정된다는 말 등을 하면서. 답장은 기대하지 않았다. 아이는 기분이 좋으면 메모지의 답을 짧게 이야기하고 말았다. 그렇게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말은 많이 하지 않았지만 필담을 통해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는 아이의 기분을 살핀다. 다녀왔다고 말하는 순간 온도를 가늠한다. 말투가 이상하면 아무 말 하지 않는다. 기분이 안 좋은 것이다. 예전 같으면 바로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봤을 텐데 이젠 안다. 타이밍을 보고 조금 진정되었을 때 물어본다. 시험 기간인데도 놀고 있는 아이를 보면, 속에서는 뜨거운 물이 끓는다. 하지만 그 물을 바로 붓지 않는다. 그 물이 식을 때까지, 내 안의 온도가 아이의 마음을 해치지 않을 때까지 가만히 있는다.
말에도 계절이 있다. 감정이 추울 때 꺼낸 말은 바람이 되고, 따뜻할 때 건넨 말은 빛이 된다. 나는 이제 안다. 무엇을 말 할지보다 더 중요한 건, 언제 말을 건넬 것인가라는 것을. 우리는 서로의 타이밍을 배우는 중이다. 그렇게, 다시 웃음이 돌아올 계절을 함께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