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속에서의 버스킹
*5PM
이제 각자가 어떤 걸 손에 들어야 하는지 익혔다. 익숙하게 악기들을 챙겨 내가 점심을 먹으러 갔던 그 길을 따라 전철역을 바라보고 걸었다. 아직 한낮의 더위가 가시지 않아 더웠다. 기타 가방을 맨 등으로는 땀이 차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적한 거리라 카오산 로드에서 처럼 사람사이를 비집어가며 걷지 않아 훨씬 수월하고 여유가 있었다. 역 근처에 도착하니 아까 돌아오는 길에 본 바이올린 버스킹을 하는 소년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와 근데 이런데서 할라하니 또 새로 떨리네.”
“여긴 분위기가 완전 다르네.”
“그니까, 또 처음 시작하는 기분이다.”
“할 만한데 본 데 있어?”
“아까 보니 전철 타러 올라가는 길에 되게 좋은 데 많던데 거기선 안 되겠지?”
“거긴 안 될 거야.”
“그래. 보니까 완전 길거리여야 되는 것 같애.”
“아쉽군... 저기 진짜 좋던데 그림 완전 이쁘게 나올 것 같던데 안타까움...”
BTS에서 내려 쇼핑몰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약간의 공간이 너무 탐났지만 우리가 소란 피우면 안 되는 곳이란 걸 모두가 알았다. 보도 블럭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며 공간을 찾았다.
“여기 어때? 좋아 보이는데?”
“근데 여기 좀 사유지 같애. 바로 옆은 흡연 구역인데 여긴 금연 구역이야.” 그랬다. 흡연 구역이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 바로 옆에 금연 구역이라고 무언가 다른 곳과는 다른 느낌으로 경계를 지어놓은 것 같았다. 바닥에 깔린 돌도 달랐다.
조금 더 걸어갔다. 처음 도착한 역 입구의 반대편 입구에 도착했다. BTS로 올라가는 계단 주변의 보도 블럭을 펜스가 둘러싸고 있고 바로 옆에 쓰레기통이 놓여 있었으며 쇼핑몰 입구가 정면에 보였다.
“여기 괜찮아 보이는데?”
바로 옆에 쓰레기통이 있었지만 말 그대로 길거리였고 인접한 도로 위의 수많은 차들로 인해 소음이 있어 적당히 볼륨도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보행자들의 동선도 피할 수 있었고 쇼핑몰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흘낏흘낏 보기도 좋아 보였다.
“오~ 좋네. 여기 느낌 있네!”
“여기로 하자!”
“오케이, 풀자!”
차도와 펜스를 등지고 쓰레기통 근처 옆에 악기들을 펼쳤다. 부산을 떨며 카메라를 설치하고 볼륨을 조절하며 이리저리 자리를 잡고 있는 데 방콕에 거주 중인 상민이형의 지인 두 분이 응원을 오셨다. 게다가 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들고...와~ 이 더위에 아이스 커피라니... 사막의 오아시스에 버금갔다. 너무 고마웠다. 방콕에 계신 분이 일부러 우리를 보러 오셨다는 것이 괜히 미안하면서 감사했고, 이 더운 날씨에 건네주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은 정신을 확 깨우고 몸을 번쩍 세워주웠다.
“이야~~형 대단하다. 안 그냐?”
“그러게. 여기 지인이 있다니..”
“진짜...전 세계 어디에나 아는 사람들이 있어. ㅋㅋㅋ”
“호주 생활의 유산인가? 신기해~”
“암튼 저런 거 보면 참 놀라움.”
나와 재영이는 연신 시원한 커피를 빨아가며 반갑게 인사하는 상민이형과 지인들을 보면서 내심 형의 사회성에 감탄했다. 나와 재영이도 같이 인사했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보잘 것 없는 걸 보여드릴 것 같아서 좀 죄송하네요. 하하핫!”
“아닙니다. 보기 좋네요. 보는 우리도 기분 좋아집니다. 하하”
사람 좋은 얼굴로 호탕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응원의 말을 해주었다. 버스킹을 시작한 이래로 처음으로 고정 관객을 두고 공연하게 되었다. 그 모두가 상민이형의 지인들이었지만...
종전까지와는 너무 다른 환경과 사람들의 시선에 가슴이 진동모드 였지만 긴장감을 뚫고 쓰레기통과 펜스, 계단에 둘러싸여 공연을 시작했다. 이제 공연의 뻘쭘함이나 쑥스러움은 없었다. 그저 즐거웠다. 주변 도로에서 내뿜어지는 자동차들의 매연이 심했지만 ‘현대 사회를 살면서 뭐 이 정도쯤이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반복하다 보니 여유가 많이 생겨 정말 내 기분을 만끽하며 연주하고 나 좋을 대로 노래하고 놀았다. 저 넘어 쇼핑몰 입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중 몇몇의 호기심 어린 눈빛과 주차장에 담배 피러 나온 사람들의 담배 피우며 보내는 시선들이 재밌었고 이 하나하나가 우리의 공연의 사이즈를 크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들에겐 정말 깊은 감사의 마음이 일어났고 눈길 한 번 흘깃 주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웃음이 났다.
형의 야심찬 열창이 끝났을 때 잠깐 머물렀던 사람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었다.
“감사합니다~~ 다 한국 분들이시네요~~하하” 상민이형이 멘트를 쳤다.
공연이 중후반으로 흘러갔지만 형의 지인들은 계속 자리를 지키시며 열심히 박수쳐 주시고 응원해 주시며 지켜 봐 주셨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제 거의 다 끝나가요. 조금만 참으세요~~ㅎㅎ”
“더 해도 돼요~~재밌어요~~” 고마운 분들이 화답했다.
나름 방콕 시내 한가운데서의 공연은 카오산 로드에서와는 또 다른 생동감이 있었다. 자체의 분주함과 소란스러움이 오히려 활력처럼 느껴졌다. 아쉬움과 만족감을 남기고 깔끔하게 준비한 모든 노래를 마쳤다.
“고맙습니다~ 진짜 고맙습니다~~!”
“아~ 감동이었다.”
“즐거웠다 진짜.”
“최고다!” 역시나 공연을 끝낸 우리는 흥분감이 고조되었다. 게다가 또 새로운 땅을 개척한 듯 한 정확히 알 수는 없고 감히 갖다 붙이기는 죄송하긴 하지만 콜럼버스의 개척감과 비슷한 기분이 이런 류의 기분이 아닐까 하는 자뻑감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