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야 쫄지마

우리의 파티가 끝나다.

by 쌀집아들

“좀 쉬었다가 여기서 한 번 더 할까?” 개운한 해소감과 뿌듯함이 얼굴에 가득한 재영이가 말했다.

“그럴까? 시간도 좀 남았고 딱히 딴 데 찾기도 힘들 것 같고...” 흥이 오른 나도 동의했다.

장소가 주는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지만 사실 여기 말고 이제 또 어딜 찾아 가서 하겠나 싶은 생각이 컸다. 길가 구석에 쭈그려 앉아 ‘한 번 더 할까 말까’ 하고 있는 우리에게 상민이 형의 지인분들이 다가와 제안했다.

“여기 말고 저 쪽으로 넘어가면 야시장 있는데 그 쪽에서 해봐요. 거긴 여기처럼 지나가는 길도 아니고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분위기가 더 좋을 거예요.” 귀가 번쩍 뜨였다.

“그래요? 근처에 야시장이 있어요?”

“원래는 없는데 며칠간 행사로 하나 열고 있는 야시장 있어요. 아마 오늘까지 일 거예요. 거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훨씬 괜찮을 거예요.”

“멀지도 않고 할 만 할 거예요. 우리가 먼저 가 보고 연락 줄게요.”

“우와~ 좋은 정보 너무 감사합니다.”

“정말요? 너무 감사한데 너무 죄송해서 이거...”

“괜찮아요, 잠깐 쉬고 있어요. 바로 여기니까 가보고 연락 줄게요.”


우와 정말 은인이다. 이런 고급 정보까지 알려주시고 적극적인 도움까지...정말 황송함에 몸둘 바를 모를 정도 였다. 야시장이라는 기대감에 들떠 기다림이 지루하지도 않았지만 얼마 지아지 않아 상민이 형에게 연락이 왔다.


“가자! 야시장 열리고 있데.”

“그래, 가자가자!”

“좋아좋아, 야시장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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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PM


우린 악기들을 들고 메고 BTS를 타고 오후 8시경 야시장이 열리고 있는 makkasan에 도착했다. 우리의 흥은 가슴을 타고 넘어 목구멍까지 차올라 마치 입으로 알이 튀어 나올 것 같았다. 가는 내내 흥분하고 들떠 있었다. 야시장에 도착할 무렵 멀리 보이는 야시장의 광경은 낭만적이었다. 오색찬란한 불빛들이 밤거리에 내려앉은 별들 마냥 반짝이고 있었고 그 가운데에 커다란 무대가 설치되어 있어 야시장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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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보이나? 저기가 바로 우리의 피날레를 장식할 곳이다~~~”

“히야~~~~ 멋지다 진짜!”

“와 흥분되네 이거!”

“가자~~~~~~~~~~~~~”


쓸떼 없는 호기와 씩씩한 흥분으로 야시장으로 전진했다. 형의 지인들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시장에 도착하자마자 버스킹에 완벽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곳은 찾아 볼 것도 없을 것 같았다. BTS로 올라가는 계단을 등지고 정면으로 야시장으로 드나드는 문이 보이며 잔디가 충분한 면적에 깔려 있어 사람들이 음식들을 사 와서 맘대로 앉아서 먹기도 하는 곳이었다.


“여기네. 딱 여기네.”

“너무 적절하다!”

“완전! 더 이상 없다!”

“진짜 완벽해!”

“아~ 이런 곳을 몰랐다니...”

“와 어제 우리 야시장 갔었는데 이건 생각도 못했다.”

“이야~ 여긴 지금까지 중에 최고다!” 모두가 만족 했다.

“그래도 일단 왔으니까 구경 삼아 한 번 둘러나 보자.”

“그럼 나 화장실도 좀 갔다 와서 시작하자.” 아까부터 아랫배가 살살 아파왔던 나는 화장실을 찾아 나섰다. 화장실을 찾는 데도 그 지인들이 도움을 주셨다.

“여기 화장실 이용료 있을 거예요. 휴지도 사야 될 거고.” 형의 지인들의 말처럼 공용 화장실 앞에서는 한 남녀가 휴지를 판매하고 있었다. 생활절약이 몸에 베인 나는 휴지를 사야하나 생각하다 근처 상점으로 가서 티슈를 좀 얻었다. 다행히 화장실에 들어갈 때 따로 입장료를 받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깔끔한 공용화장실의 상태에 만족해하며 상쾌한 몸가짐으로 화장실을 나왔고 야시장 주변을 구경하고 있던 재영이를 만났다.

“아까 거기가 제일 나은 것 같애. 거기서 하자.” 역시나 처음 발견했던 곳에 판을 벌이기로 결정하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진도 몇 장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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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전에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태국의 종류별 길거리 음식이 다 모여 있는 야시장에서 그 많은 인파를 뚫고 상민이형과 지인분들이 이리저리 힘들게 공수해 온 음식들과 음료들을 잔디밭에 펼치고 둘러앉았다. 잔디밭을 밥상 삼아 거하게 한상이 차려졌다. 한밤에 소풍 나온 기분. 맨잔디에 앉아 뭘 먹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다리에 닿는 잔디의 시원하고 따가운 느낌. 불어오는 밤바람. 잔디밭에 퍼져 앉아 허리를 숙여 가며 숟가락이 부족해 돌려 써가며 우걱우걱 먹어 댔다. 음식을 보니 가려져 있던 허기가 드러났다. 야생의 뮤지션이랄까 헝그리한 음악인이랄까. 괜히 우리가 멋있어 보였다. 무슨 맛인지는 몰랐지만 무엇이든 맛있게 먹었다. 그저 우릴 둘러싼 분위기과 우리의 여정이 한없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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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만감이 차오르고 다시 힘이 생겼다. 야시장 출입구를 바라보며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 세팅을 했다. 이제 진짜 마지막 공연이 될 것이었다. 내일이면 우린 다시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한다. 오늘밤은 다시없을 이런 여행의 마지막 밤이었다.


마지막 공연과 마지막 밤을 장식하기 더할 나위 없는 무대였다. 잔디밭인데다 공간도 넓직하고 야시장 출입구가 가까워 오가는 사람들에 노출되기 쉬었다. 뒤로는 전철역으로 오르는 계단과 밤의 도로를 등지고 있었다.

소음이나 장소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 여정의 마지막이라는 데에 대한 비장한 마음으로 마이크 스탠드를 세우고 앰프의 볼륨을 올리고 테스트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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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아아! 어? 머야 이거? 소리가 안 나네?”


어찌된 일인지 재영이의 마이크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마이크 연결을 다시 확인했지만 연결에는 문제가 없었다. 새로 산 건전지를 넣었으니 충분할 줄 알았던 마이크 밧데리가 나간 듯 했다.


“와 벌써 나간거야?”

“실화냐? 야 건전지 혀에 대봐.”

“아......이게 왠 낭패람.”

“아하....이런....”

“어쩌지?”

“근처 편의점 갔다 와야겠다.”


급하게 주변에 있는 편의점을 검색해봤지만 야속하게 근처에 편의점이나 건전지를 살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택시타고 다녀와야 할 판이었다.


“머야 어떻게 또 근처에 편의점이 없어?”

“택시 타고 얼른 갔다 오자.”

“일단 근처 가게 상인들한테 혹시 건전지 있나 한 번 물어보고 올게.” 이 말을 남기고 진짜 건전지를 구하러 가는 건지 아니면 이 자리를 피하는 건지 모르지만 아무튼 형이 솔선수범하여 건전지를 구하러 어디론가 사라졌다. 뒤에 남은 나와 재영이는 형의 그 뒷모습을 보여 멀뚱히 서 있었다.

형을 기다려야 하나 택시를 어서 타고 가야하나 결정을 못하고 혹시나 가까운데 뭐가 없을까 하며 괜히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괜히 아까운 시간만 흘려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형의 지인들이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건전지가 나가서 마이크가 안 나오는 사정을 설명했더니 웬걸 잠시 후에 ...

“이거라도 써 봐요.” 라시며 내민 AAA사이즈의 건전지 두 개!

“우왓!!이거 머야?” 정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반가웠다.

“우와~~~ 고맙습니다.”

“와 근데 이게 어디서 나온 거예요? 어떻게 건전지를 갖고 계세요?” 어쩜 이럴수가. 어쩜 이럴수가. 진짜 우리의 구세주다!(진짜 후광을 잠깐 본 것 같기도 하다.)


“그러게요. 어떻게 있네요. 하하” 별거 아니라는 듯이 털털하게 웃는 모습. 구원자의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나는 부랴부랴 마이크 뒤꽁무니를 열었다.

아뿔사......하지만 우리가 가진 마이크는 AA건전지용이었다.

“아~~ 근데 사이즈가 안 맞아요. 이건 AA사이즈 들어가는데...아...” 좋다 말았다며 허탈함에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래도 해볼 수 있지 않아?” 맥없는 내 손에서 마이크를 가져가며 재영이가 얘기했다.

“야, 사이즈가 다른데 그게 되겠냐?” 허황된 소리라며 헛수고라 여기며 마이크를 심폐소생하려는 재영이를 내 시야의 끄트머리에 걸쳐만 놓았다.

“아!아! 오~ 되네~~”

“머야? 그게 되나? 말도 안 돼.” 마이크를 통해 들리는 재영이의 목소리에 별로 크지 않은 내 눈이 확 커지며 몸과 고개가 단번에 재영이 쪽으로 획 돌아갔다. 놀라운 일이 연이어 일어났다. 절실한 순간에 건전지가 하늘에서 내려오듯이 나타나고 사이즈가 맞지 않는 건전지로도 충분히 마이크가 작동 되는 정말 어메이징한 일이 일어났다. 해보지도 않고 섣불리 포기하려한 내가 머쓱했다.

“운 좋은 줄 아세요. 주머니에 건전지 넣어 다니는 사람 많이 않아요. 하하핫!” 지인분이 환하게 웃으며 말씀 하셨다. ‘정말 저 분들은 오늘의 구세주시다! 정말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될까?’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은혜로운 나그네와 같은 분이었다.


감탄에 감격을 더한 마음에 황홀해하고 있으니 곧 형이 당연히 빈손으로 돌아왔다.

“야 어쩌냐...여기선 구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편의점 갔다 와야 되겠어.”

“이거 봐봐. 형 지인들이 건전지까지 빌려 주셨어.”

“진짜?”

“어. 진짜 신기한 일이지? 아하하핫”

“아~ 진짜 엄청나다.”

“진짜 끝없이 고마우신 분들이다. 저 분들 안 계셨으면 이번 건은 아예 시작도 못 했을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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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세상 혼자 잘 난 맛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역시 사람은 어우러져서 서로 이것저것 나누며 돕고 사는 거구나 라는 감동이 발끝에서부터 온 몸을 채우며 올라오는 듯 했고 나의 섣부른 판단과 생각은 정말 얼마나 하잘 것 없는 것인지 깊이 깊이 반성하게 되었다.

혼자만의 작은 욕심과 꿈에서 시작되었던 일들이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차곡차곡 쌓여 비로소 완성되어 펼쳐졌다.

우여곡절 끝에 우린 공연을 시작했다. 야시장 안에서 어느 가수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안쪽에서 공연이 펼쳐지고 있는 듯 했다.


“시장 안에 공연 하고 있으니까 저 공연 끝나고 해요.” 라는 형의 지인 분 말에

“아닙니다! 우리가 이겨야죠.”

“다이다이 깨는거다~!” 호연지기를 부리며 시작했다. 장소가 달라지고 분위기가 달라지니 버스킹 풍경도 달라졌다.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달리 꽤 많은 사람들이 가던 걸음을 멈추기도 하고 가까운 상점의 상인들이 직접 나와 공연을 보기도 했고 심지어 노래를 따라 부르며 박수를 치고 몸을 흔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연이 계속될수록 사람들이 하나둘씩 더 모여 마침내는 우리를 보며 반원 형태로 둘러쌌다.


짜릿했다! 아~~ 드디어 우리가 생각하고 꿈꾸던 그림을 완성했다.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공연을 꽤 재밌게 즐기는 듯 했다. 아~~ 더 이상 여한은 없었다. 머리끝까지 전율이 차올랐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준비하고 떠나온 버스킹 여행의 정점을 완벽하게 찍어냈다. k-pop의 위상과 한국 사람이라는 것에 자부심마저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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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한국노래 두 번씩 돌리자~!” 우리의 흥분 게이지는 밤하늘까지 차오를 듯 했다. 처음으로 우린 연습 때 정해진 순서가 아니라 관객들의 반응에 따라 노래 순서를 바꾸기도 하고 연주 횟수를 늘리기도 했다. 노래 중간에 한 소녀가 달려와 노래를 보여주며 신청곡을 했다. ‘아~~’ 울고 싶었다. 최초의 신청곡을 받았지만 정말이지 들어본 적도 없는 전혀 모르는 노래였다. 말로 설명은 어렵고 온 몸으로 안타까움을 표했다. “쏘리~ 위 돈 노~. ㅠㅠ” 그래도 그 소녀는 바로 떠나지 않고 남아서 남은 노래를 같이 불러주고 즐겨주었다. 처음으로 현장감과 생동감이 넘친 공연이 계속 되었고 우리가 준비한 k-pop을 다 부를 때 까지 분위기는 이어졌다. 저 너머의 큰 무대 위 멋진 조명 아래의 가수들도 전혀 부럽지 않았다. 오히려 그 순간엔 우리가 더 멋있다고 생각했다.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한 시간이 흘러갔고 더 이상의 레파토리는 없었다. 한국 노래를 두 번씩이나 한 마당에 또 하기는 좀 그랬다.

“어쩌지? 어쩌지?”

“더 없나? ㅋㅋㅋ” 이 분위기를 더 이어가고 싶었지만 준비된 k-pop은 바닥이 났다. 더 많이 준비해오지 않은 것이 처음으로 아쉬웠다.


“이제 팝송 몇 곡 남고 다했지.”

“일단 준비한 건 다 하자!”

“그래 일단 하자.”


몇 곡 남지 않은 팝송을 시작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채 한 곡이 끝나기도 전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고 방금까지 신기루를 보고 달려온 것처럼 정신을 차려 보니 거의 모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사라져 버렸다.


“누가 이 노래하자 그랬어? ㅋㅋㅋㅋ”

“이 노래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며~~ ㅋㅋㅋ”

“니가 하자 그랬잖아~!ㅋㅋ”

사람들이 흩어지자 우리도 덩달아 기운과 흥도 같이 달아나 버리는 기분이었다. 간사한 사람의 마음이란...

“아 사람들 없으니까 갑자기 할 맛 안 나는데?ㅋㅋ”

“확실히 그러네... 할 꺼 다 했으니까 그만 할까?”

“그럴까? 노래도 준비한 건 다 했지?”

“그럼, 두 번씩도 돌렸지.”

“그래, 어차피 다 했네.”

“그래. 그럼 그만하자. 충분했다.”

“수고했다. 진짜 수고했다.”

“멋있었다! 칭찬한다, 우리!”

그리고 우린 서로 악수를 나누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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