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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Mar 25. 2021

글은 쓰기만 하면 낼 곳은 흐드러지게 많다.

글을 시작하기 전에 이 글에는 나의 자기반성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조금이라도 나아지려고 하는 의지까지도 담겨 있다.

봄에 만물이 소생하듯이 나도 다시 불끈 일어나고 싶어서.



물 반 고기 반, 공모전 반 글 반


물 반 고기 반같이 글 반 공모전 반이란 말은 당장 꼭 등단을 하지 않아도 되고, 약간의 당근과 채찍을 원하면서 글쓰기를 꾸준하게 하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낼 공모전이 차고 넘칠 만큼 많다는 뜻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나는 그 많은 공모전 하나하나에 내 글을 응모할 만큼 써놓은 글이 많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지런히 쓰지도 않았으니까.


공모전 어디에서라도 붙으려면 글을 부지런히 내야 하는데 낼 글도 없으면서 가장 짧은 글, 가장 빨리 쓸 수 있는 글을 써서 몇 군데 살짝 발만 담가놓고 언감생시 뽑히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이것만큼 뻔뻔한 일은 없다.

그리고 그 어려운 걸 내가 해내고 있다.


그렇게 해서 소 뒷걸음질 치듯이 등단을 하게 된다고 해도 지금 이대로라면 문제다. 등단이란 걸 하게 되면 원고 청탁이 들어올 텐데 나는 써놓은 글이 없어서 그렇게 바라던 일 앞에서 부끄럽게도 두려움에 떨게 될 것이다. 양질의 글을 쓰기 위해 급하게 써 내려간다고 해도 꾸준한 연습이 선행되지 않은 내 상태에서 온전하고 마음에 차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내가 지금 이 상태로는 등단을 하게 된다 해도 내게 글을 맡기는 사람은 뜯어말리고 싶은 마음이다.


우연히 정세랑 작가님이 유퀴즈에 나와서 인터뷰를 한 걸 보게 됐다. 3년 동안 우리나라에 있는 공모전이란 공모전은 다 내봤다고 그런데 다 떨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 비록 떨어졌지만 써서 냈던 글들이 작가가 되고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도움이 되어 작가 생활이 훨씬 수월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저렇게 유명한 작가님도 저런 고난이 있었구나. 바로 한 번에 턱턱 작가가 되는 건 쉽지 않구나. 나도 지금은 여기저기서 떨어져도 나중에는 될 수 있겠구나.

위로가 되고 희망이 보였다.

나도 정세랑 작가님과 같은 처지를 살아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그랬으면 하는 나의 바람이 만들어 낸 동일시였지 지금 하는 걸 보면 나는 전혀 간절해 보이지도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살며시 다가가 쓰지 않는 사람에게 작가의 미래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달달한 꿈을 꿀 때 꾸더라도 그러려면 글을 쓰라고 채근하고 싶었다.


미루고 미루다가 인생의 끝자락에서 후회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다. 정세랑 작가님이 3년 동안 우리나라에 있는 공모전이란 공모전에 다 내보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유명한 작가가 되지 않았어도, 아니 아예 등단도 하지 못했어도 적어도 후회는 남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할 만큼 한 사람에게 후회 같은 건 남지 않는 법이니까.


그런데 나는 지금 이대로라면 후회 덩어리가 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작이 꼭 답은 아니지만 매일 연습하고 써야 실력도 작품도 늘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느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내가 꼭 깨달았으면 좋겠다. 머리가 아닌 손과 마음이 그 깨달음을 늘 되새기고 쉴 새 없이 움직여주기를 바란다.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한다. 나라고 못할 것도 없지. 나라서 꼭 언젠가는 해낼 거라고. 하늘에 별을 따라는 것도 아닌데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인데 그것도 못하면 앞으로 내가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때로는 먹고 살기 급급해서, 때로는 지금 눈 앞에 닥친 일들 먼저 해결한다고 글을 덜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도 겪어봐서 안다. 말 그대로 글을 덜 쓸 수는 있어도 못 쓰는 환경에는 단 한 번도 놓여본 적 없다는 걸.


핑계는 핑계를 낳고, 미루는 습관은 미루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나를 낳는다.


이번 한 번쯤은 그런 것들 대신 팔이 떨어져 나갈 만큼 쓰는 나를 낳아보는 건 어떨까.

팔이 아파 못 쓰겠다는 탄식이 내 입에서 터져 나온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 작가일까. 그때는 등단 같은 것도 초월해서 나 스스로를 작가라고 불러줄 수 있을 것 같다.


꿈만 꾸는 몽상가 대신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장르 불문 도전하겠다는 건 어떤 장르라도 소화할 수 있기를 바라는 나의 욕심이자 나의 바람이다.  그러다 보면 한 장르라도 제대로 쓸 수 있는 작가로 성장해있지 않을까 하는 착한 기대이기도 하다.


일을 할 때는 일에 미쳤다는 생각이 들만큼 하루 종일 일과 관련된 일만 생각이 날 정도로 일을 해봤고, 육아를 할 때도 육아에 미쳤다고 할 만큼 치열하고 처절할 만큼 불씨조차 남기지 않을 만큼 뜨겁게 해 봤다.

그런데 글만 안 해봤다. 하루 종일 일에 관련된 것만 떠올리고 일에 미쳤다고 할 때도 일을 직접 하고 있었고 육아도 마찬가지로 하고 있었다.

 글로 이루고자 하는 욕심은 저 셋 중에 가장 많고 높으면서 미쳤다고 느낄 만큼 단 한 번도 글을 써본 적이 없다니. 천하태평이 따로 없으면서 어떻게 좋은 결과를 바랄 수 있을까. 이 글을 적으면서 날 많이 돌아볼 수 있었고 반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게는 글이 더 소중하고 또 애틋하다.


글이 곧 내 삶이 될 수 있도록 내가 할 일은 쓰는 것뿐이다. 종이와 펜 하나, 컴퓨터에서는 한글파일 하나면 충분하다.


오늘부터 내 구체적인 목표는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공모전에 다 내 작품을 응모할 수 있게끔 글을 열심히 쓰는 일이다. 그래서 닭이 알을 낳듯이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작품들이 다 내게 피와 살이 될 것을 알기 때문에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쓸 것이다.


비록 내가 써 놓은 글들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다 치더라도, 평생 내 앨범 속 사진들처럼 나만 본다 하더라도 그 글들은 죽을 때까지 내게 행복을 안겨주고 날 치유하는 글들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할 만큼 했다고 느낄 정도로 글을 열심히 썼다면 한 톨의 후회도 남아있지 않겠지. 이게 제일 중요하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열심히 했다는 거. 한 톨의 후회도 나 자신에게 남기지 않았다는 거. 그 일들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정말 열심히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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