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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Mar 28. 2021

아빠와 크레인

우리 집에는 부모님, 나, 신랑 그리고 아이들까지 3대가 함께 살고 있다.

퇴근하고 집에 온 아빠는 늘 지쳐 보였다. 환갑이 지난 나이까지 몸을 쓰는 일을 하는 아빠의 몸이 고단하지 않을 리 없다.


한 번은 아빠의 방문이 열려 있어 아무 생각 없이 아빠의 방으로 들어갔는데 아빠는 침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나는 그런 이상한 자세를 하고 있는 아빠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아빠, 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어?”

아빠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아~허리가 아파서. 이렇게 하고 있으면 허리가 안 아프거든”하고 대답했다.


나는 그때 머릿속 신경에 전기뱀장어라도 갖다 댄 것처럼 찌릿한 느낌을 받았다. 어디가 아프다고 말 한 번 하지 않은 아빠였는데 너무 많이 오래 쓴 탓에 몸 여기저기가 고장 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바르는 파스를 찾아 아빠에게 가져다주었지만 아빠는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이미 발랐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허리가 꼿꼿하고 어깨가 넓어 듬직했던 아빠의 미소가 슬퍼 보였다.

그 후로 몇 번이나 아빠가 그런 모습으로 있는 걸 봤으면서도 나는 점점 아빠의 무릎 꿇은 모습에도 무뎌져 갔다.


우리 아이는 넘어져서 살이 조금 까지기만 해도 다 나을 때까지 약을 바르고 정성을 쏟으면서 아빠는 훨씬 더 쑤시고 아픈 곳이 많았을 텐데... 죄책감이 밀려왔다.


아빠는 나를 아빠의 전화기에 나의 보물로 저장해놓았지만 나는 아빠를 보물처럼 아끼지 못했다.

둘째가 태어난 지 100일도 되지 채 않았을 때였다.

엄마가 허겁지겁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아빠가 크레인에서 추락했대. 엄마 지금 아빠 병원 가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있어.”

그 순간 난 내 두 귀를 의심했다.

아빠가 추락했다고?

내가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크레인 관련 일을 하던 아빠였는데 다리가 조금 긁히고 찍히는 정도의 상처가 난 적은 있지만 병원에 갈 만큼 큰 부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수유를 하던 둘째를 내려놓고 “어떡해”라는 말만 반복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나는 다시는 아빠를 볼 수 없을 거 같은 두려움에 엉엉 울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가 전화를 받는 순간 나는 기적이 일어난 것 같았다. 숨도 쉬어지지 않고 가슴이 꽉 막혔었는데 그제 서야 숨이 조금 쉬어지는 거 같았다. 이것저것 아빠에게 묻고 싶은 말들이 많았는데, 아빠의 지금 상태가 너무 걱정되어 죽겠는데 아빠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내게서 터져 나온 건 아이 같은 울음이었다.

“흐엉엉. 아빠 어떡해. 아빠 괜찮아? 아빠 정말 크레인에서 떨어졌어? 검사받아봤어? 정말 괜찮아? 내가 지금 바로 병원으로 갈게. 아빠 내가 갈게 지금.”


쉴 새 없이 뒤죽박죽 질문을 던지는 나를 아빠는 오히려 달래주었다.


“아빠 괜찮아. 아빠가 이렇게 전화도 받잖아. 응. 검사도 다 받았는데 괜찮대. 머리도 괜찮대. 팔만 조금 다쳤어. 아무 걱정하지 마. 걱정 말고 아기하고 집에 있어. 아빠 정말 괜찮아.”


아빠는 본인도 많이 놀라고, 다쳐서 통증이 심할 텐데도 전화를 끊지 않고 내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날 안심시키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정말 천운으로 아빠는 머리가 먼저 떨어지지 않고 한쪽 팔이 먼저 닿도록 떨어져서 팔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하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끝끝내 내가 아무리 물어도 몇 미터에서 떨어졌는지는 절대 말해주지 않았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지만 나는 태어난 지 백일도 안 된 아기를 데리고 아빠에게 가겠다고 떼를 썼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빠는 병원 침대에서 환자복을 입고 앉아 앞에 식판을 두고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으며 브이까지 그리고 사진을 찍어 내게 보냈다.


아빠는 밥을 먹을 수 있을 만큼 괜찮다고, 활짝 웃을 수 있을 만큼 오늘 일어난 일이 별 일 아니라는 걸 내게 말하고 싶은 거 같아 보였다.


끝까지 나를 걱정하는 아빠의 모습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 사진을 보기 전까지 마음 졸이며 아빠의 상태를 걱정하던 나는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아직도 나는 조금만 다쳐도 아빠 내가 이러이러해서 여기가 아파하면서 아빠에게 쪼르르 달려가 미주알고주알 다 얘기하는데 아빠는 얼마나 강한 사람이기에 그렇게 아프면서 까지도 오히려 날 걱정할까.


사실 이제는 나도 알고 있다. 아빠가 강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나보다 나를 더 많이 사랑해서 내게 어떠한 걱정도 지우지 않으려고 그런다는 걸.


아빠가 크레인에서 추락한 후 나는 아빠와의 시간이 모두 다 기적같이 느껴졌다.

한 공간에서 함께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당연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아빠가 다친 후로 나는 아이를 안고 아빠의 방을 훨씬 더 많은 횟수로 들락날락 거리며 아이와 함께 재롱을 부린다. 그리고 밥을 먹고도 아빠가 먹은 그릇을 싱크대에 담그려는 아빠를 말린다. 그래도 아빠가 날 생각하는 거에 비하면 한참을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감정도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무뎌질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빠에게 조금씩 더 좋은 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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