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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Mar 28. 2021

나이가 드니 엄마의 전화가 반가워졌다

엄마는 내 삶의 버팀목인데,

그런 엄마의

목소리만 들어도

안심이 되고

안정감이 느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다 보면

그 존재를 소홀히 여길 때가 있다.


연수원에 가 있을 때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내게 전화를 건다.


몇 번

무미건조하게 받다가
했던 얘기를 또 하고있다고 낄 때
멀리서 오지도 않고

잔소리 한다고,

자꾸 전화로만 얘기한다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정작 나는 먼지보다

가벼운 주제로

쓸데없이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 때도 많으면서 말이다.


아마 그때

내게도 똑같이 면박이 돌아왔다면

나는 더는 전화조차 하지 않겠지.

쓰다 보니 참 나쁘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문득
그런 엄마가 세상에 없다면
그래서 불티나게 울리던
그 전화가 지 않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떠올려볼 때가 있다.

얼마나 그리울까.
그때는 엄마 냄새도,
엄마 기억도 모자라
엄마 흔적을 모조리 찾아 헤
그리움에 사무쳐할 이다.


매일 울리던 그 전화가
살아생전
다시는 받을 수 없는 전화가 된다면...


나훈아 님의 '홍시'도 듣지 못하겠지.


엄마라는 단어만 봐도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겠지.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여전히 투덜 될 때도 있지만,

그 잔소리가 자장가보다 감미롭고

초콜릿보다 달콤하게 느껴진다.


내 곁에 있으면서

잔소리를 해줄 수 있다는 게

감사하기 그지없어서.


내가 사랑한다고

수줍게 문자라도 보내면

늘 사랑한다고 답해줄 존재.


내가 몇 살이 되던,

누군가의 아내,

부모가 되어도

늘 물가에 내놓은 아기처럼

불안해할 존재.


받는 것도 없으면서

한 없이 주기만 하는 존재.

그러면서도

그걸 기억하지 않는 존재.

그걸 아까워하지 않는 존재.


나열하고 보니,

유태인의 격언이 생각난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


너무나 공감되는 말이다.


내가 결혼을 하면

내 남편까지 함께 걱정해주고

돌봐주고,

내가 아기를 낳으면

그 아기까지 함께 걱정해주고

돌봐주는 존재가 엄마인 거 같다.


요즘은 내가 낳은 아이들에게까지

무얼 얼마나 더 줄 수 있을지 고민한다.

사실, 그건 내가 해야 할 숙제고 고민인데

엄마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온 정성을 다해 우리 가족을 살핀다.


엄마가 아이를 안고

하는 말이 있다.

꽃처럼 화사하게 웃으며

새벽이슬보다 더 반짝이는 눈으로

"세상에 정말 너무 예쁘다.

어떻게 이렇게 예쁠 수 있지"고.


엄마는 알까.

그 말을 하고 있는

엄마 모습이 가장 아름답고 예쁘다는 걸.


그 순간

내 눈에는

내 자식보다

엄마가 더 찬란히 빛나고 있다는 걸.


내겐
신보다 위대한 존재.
엄마.

조금이라도
아끼고
랑을 표현하고, 고마움을 표현하고
순종하며 살고 싶다.(순종, 이걸 제일 못한다)




엄마. 제 곁에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가 돼주셔서 감사합니다.
점점 더 좋은 딸이 되려 노력할게요.
정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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