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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Mar 28. 2021

산후우울증을 뻥하고 발로 차 버렸는데.

산후우울증을 축구공 차듯 뻥하고 찼다고 생각했는데 탱탱볼 튕기듯이 튕겨졌나 보다. 매번  튕겨서 고스란히 내게 돌아다.


일곱 살 첫째와 8개월 둘째를 키우면서 힘듦을 인정하지 않았다.


낮밤이 자주 바뀐 둘째를 보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 자리에 고꾸라져 박사일 잠만 자고 싶다는 생각 매일같이 했지만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12시 넘어는 오로지 내 몫이니 나 혼자서 견디고 참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둘째가 새벽 네시에 잘 때도 새벽 여섯 시에 잘 때도 이를 악 물고 버텼다. 그럴 때 할 수 있는 건 버티는 것과 애원하는 것 밖에 없었다. 아기를 안고 있다 놓치지 않기 위해서 버텼고 아가야 우리 제발 잠 좀 자자고 애원했다.


둘째는 내가 시야에서 사라지기만 해도 우는 엄마 껌딱지라 혼자만의 시간이 아예 없는데 

그래서 마음이 답답하다는 말도 가족 말고는 차마 하지 못했다.


나는 지금 어떻게 보면 내 인생에서 제일 제약이 많은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잠자는 것도 먹는 것도 쉬는 것도 아플 수 있는 것도 화장실에 가는 것도 다 제동이 걸린다.) 사람들은 우리 부부를 보며 아이들 어릴 때가 가장 좋고 행복할 때라고 했. 


나는 그 말만을 기억하며 늘 내게 세뇌하듯이 되뇌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가 제일 좋을 때래.

그때가 웃을 일도 가장 많고 행복할 때래 하며 말이다.


나는 남들이 부럽다고 말하는 시기를 살고 있다.


하지만 먹고, 자고, 화장실에 가고 같은 기본적인  것들조차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일상에서 우울감은 내게 매번 다른 얼굴을 하고 집요하게 나타났다.


때로는

왜 나는 밥한 끼 맘 편하게 먹지도 못하는지에 대한 억울함으로

왜 자고 싶어도 맘 편히 잠 한번 깊게 잘 수 없지에 대한 서러움으로

화장실에 제때 가지 못해서 방광염도 걸리고 변비도 걸리고 해야 하는지에 대한 속상함으로

우울이 그림자를 드리웠다.


나는 그때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헤쳐나가고 있는데 인정해버리면 내가 부정적인 생각들에 지는 것 같았다.

지다 못해 그 감정에 잠식당해 내 황홀한 이 시기를 다 갉아먹어 릴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내게도 쉴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을 줘야 했. 나라나를 더 잘 돌봐줘야 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나서서 원래 내 모습을 지우고 있었다. 

극한의 상황 앞에서도 이건 아무것도 아니니까 청승 떨지 마라고 몰아붙였다.


그러다 우울은 결국  큰 파도처럼 날 집어삼켰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순간들이 왔다.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평소와 다른 일이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어린아이를 키운다는 건 그 평소가 힘이 든 건데 그걸 인정하지 않아서 나는 불 꺼진 방에서 한참을 펑펑 울었다.


신랑 얼굴 보기가 민망했고, 부모님께 부은 눈을 들키는 게 부끄러웠다. 그렇게 가족들에게는 가끔 터져 나오는 심장을 잠재우지 못해 그런 날 것의 내 감정을 종종 들켰다. 


악의 경우 그 불통이 퇴근하고 와서 피곤한 몸으로도 육아를 하는 신랑에게 튀었다. 


신랑은 언제나 아이보다 날 더 챙기고 육아에도 적극적이고 말도 예쁘게 하는데도 말도 안 되는 걸로 서운해하기도 하고, 시비를 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깡패가 따로 없었다.

그러고 있는 그 순간에도 난 내가 잘 못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제어가 안 됐다.

망가진 티브이 화면처럼 줄이 좍좍 그어진 채 제대로 출력이 안 됐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느라 우울하다고 다른 사람에게 그 어떤 방법으로도 티를 내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처럼 보이게 행동하고 말했다. 나도 힘들다고, 힘들어 죽겠다고 얘기하면 세상이 두쪽 나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철저하게 숨겼다.


좀 더 솔직해도 됐을 텐데.

가족에게 들키는 것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그 모습만 보고 날 불행한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그리고 설사 있다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이람 내가 아니면 그만인데 하고 넘겨버림 정말 그만인데.


그래서 나는 이제

산후우울증이 큰 파도가 돼서 오기 전에

우울하면 우울하다고

힘이 들어 죽겠으면 힘이 들어 죽겠다고

조금씩이라도 티를 내볼까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사람들이 내게만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니까.

각자의 하루를 살아가기에도 바쁘니까 나도 이제 숨기지 말고 숨지 말고 날 것 그대로의 감정도 밖으로 내어놔야겠다.


아기가 안 자면 눈물 나게 힘들고,

밥 먹을 때 계속 울어서 한쪽 다리 위에 안고 먹을 때면 나도 뜨거운 국물도 너무 퍼먹고 싶은데 안 돼서 서럽고,

내 시간도 가지고 혼자서 쉬고 싶은데 그게 매일 안 돼서 너무 답답하고 가끔씩은 숨 막힌다고 할 것이다.

목구멍 속으로 꾹꾹 누르기만 하지 말고 나도 힘들 때가 있다는 걸 할 것이다.

그게 더 인간적이니까.

빛깔만 좋고 속이 곪은 건 과일도 먹지 못니까.


그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육아고, 그런 고충 속에서 또 눈물 나게 행복한 것도 맞다고 솔직하게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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