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하영 Apr 09. 2021

생후 8개월 차, 두 번째 원더 윅스를 겪다.

잠이 부족한 너와 나를 위해 쓰다.

원더 윅스(Wonder weeks)는 아기가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시기를 가리키는 말로, 육아의 입장에서는 더 많이 울고 보채는 과정에서 부모를 가장 힘들게 하는 때를 말한다.

_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첫째 때는 몰랐던 원더 윅스라는 단어를 찾아본 건 둘째가 4개월이 되던 때였다. 3~4일을 내리 밤에 자꾸 깨며 제대로 잠을 자지 않더니 결국 새벽 6시를 지나 오전 7시에 겨우 잠이 드는 기염을 내뿜었다.


그때 내 상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비루하고, 축축했으며, 음울했다.

누구라도 붙잡고 아이가 자지 않는다고 포효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잠, 잠, 잠만 생각나고, 또 그걸 못하니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나는 그때 너무 궁금했다. 아이가 무엇 때문에 잠을 자지 않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애써 태연한 척 아이가 지금 엄청난 성장을 겪느라 성장통을 겪고 있어서 그럴 거라고 말했지만, 내 마음은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가 툭툭 날아와 꽂히는 거처럼 큰 너울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다.


이걸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기약 없다는 생각에 점점 더 지치고 슬퍼졌다. 더는 버틸 체력이 남아있지 않은데 아이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여서 솔직히 두려웠다.


방에서 아이와 단 둘이 있는데 아이의 울음이 메아리로 돌아오는 새벽이면 그 메아리에 넋이 나갔다. 그럴 때면 나도 같이 목놓아 울고 싶어 졌는데 실상은 그럴 기운 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쓰러지면 어떻게 될까를 상상하기도 했다. 곧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힘에 부쳤다.


나는 우리 아이만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와 닿는 강도가 너무 심하니까 우리 아이가 무엇이 불편한데 내가 케어를 해주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이든 다 아는 인터넷에게 자문을 구해보기로 했다.


내가 초록생 검색창에 칠 단어는 '4개월 잠'이었다.

그런데 '4개월'까지만 치자 연관검색어에 잠 퇴행기와 원더윅스가 나왔다.


잠 퇴행기는 단어를 읽기만 해도 바로 해석이 되었지만 원더윅스는 살면서 처음 접하는 단어였다. 잠 퇴행기를 보고 동지를 만난 것처럼 반가운 마음에 검색해서 이런저런 사례들을 읽어 보았다. 딱 지금 우리 둘째가 겪고 있는 증상들이었다. 이 세상에 모든 아이와 함께 잠 못 드는 엄마들이 내 자매 같고, 내 몸같이 친밀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아이가 잠을 잘 못 자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과 부담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원더 윅스라는 단어는 찾아보자마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부모를 가장 힘들게 하는 때를 말한다는 그 문장에 내 가슴에 와서 콱 박혔다. 누군가가 내 고통과 힘듦을 알아주는 기분이었. 어쩜 진짜 내 기분을 한 마디로 이보다 더 명쾌하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 쾌감까지 느껴졌다. 저 말이 있다는 거 자체가 내게 위로 그 이상이었다.


그리고 그 시기가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걸 여러 글들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는 게 축복 같았다. 이제 나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이 시기를 지나 다시 잠을 잘 잘 수 있겠구나 안도감이 들었다. 눈 밑 다크서클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고, 피곤에 잠식되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정신이 돌아온 것도 아니었지만 저 멀리 빛이 보이는 거 같았다.


정말 삼일 정도 그 증상이 지속되더니 아이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밤에 잘 자기 시작했다. 아이를 이리저리 살펴보니 아랫니 두 개가 뾰족 튀어나와 있었다.



어느새, 8개월에 접어든 아이는 또다시 밤이되자 30분 만에 잠에서 깨어 울며 보채기 시작했다. 이가 나서 밤중 수유도 끊어야 해 아이를 안고 달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곤히 잠들어 보여 다시 눕히면 5분도 안되어서 다시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엄마, 엄마"하며 날 찾고 앓기도 했다. 차라리 엄마라는 단어를 말하지 못하면 지금보다 덜 울음소리가 박힐 텐데 날 지칭하면서 우는 아이를 보니 아무리 힘들어도 바로 일어나서 아이를 안아 들 수밖에 없었다. 첫날에 30분이던 게 다음날 10분 단위로 쪼개어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계속 큰 울음을 터뜨리는 게 아니고 끙끙 앓는 듯한 신음소리를 계속 냈다.


그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다시 시작됐구나.


잠을 못 자는 건 내게 내성이 생기는 일은 아니었다. 똑같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피곤하고, 슬프고, 힘이 들었다.


3일째 지속이 되자, 어제는 정말 밤에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어디로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잠을 오랫동안 못 자면 속이 울렁거리고, 메스껍기까지 하다는 걸 둘째를 키우면서 처음 알았다.


그렇지만 첫 번째, 두 번째 원더 윅스를 겪으면서 느낀 건 아이가 날 아무리 힘들게 하더라도 아이가 미운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엄마란 그런 것일까 생각했다.


내가 잠을 못 자는 것보다 앓고 있는 아이를 보며 얼마나 아플까 걱정하고, 보채는 아이를 보며 이 작은 게 얼마나 힘이 들면 보챌까 싶어 안쓰러웠다. 내가 자는 것보다 아이가 잘 때 마음이 편안해지고 평온해졌다. 나도 너무 힘이 들어 죽겠지만 이 원더 윅스가 날 위해서보다 아이를 위해서 빨리 지나가기를 기도했다.


이번 원더 윅스 기간에도 아이는 몰라보게 성장하고 있었다. 계속 뒹굴어 다니기만 하던 아이가 갑자기 엎드린 채로 방향 전환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휙휙 해냈고, 양쪽 손목을 계속 앞 뒤로 까닥까닥거리는데 그건 무엇을 위한 준비운동인지는 알 수 없지만 뭔가 대단한 걸 준비하는 듯해 보였다.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는 더욱더 선명해져서 첫째가 엄마라고 날 부르는 소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굴러다니기만 해도 온 방안을 자유롭게 다녀서 기는 걸 하지 않더니 이제 꿈틀꿈틀하며 제법 잘 기기도 했다. 원더 윅스 기간에도 이렇게 눈에 띄게 성장을 하는 데 이 기간이 지나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기대가 됐다.


두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은 늘 내게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갓난아이일수록 표현을 해도 알아듣는 데 한계가 있으니 키우는 게 더 힘이 든다. 매일 내게 새로운 미션이 주어지고 그것을 깨 나가는 느낌이다.


하지 세상에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어디 있나 생각해 본다면 그래도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참 재미있고,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 종일 칭얼대는 날이더라도 한 번의 웃어줌이 내 심장을 뛰게 하고, 아이의 존재 자체만으로 내 삶의 원동력이 된다. 아이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그 마음이 날 성장하게 한다. 아이가 없다면 나는 이대로 머물러도 아무 문제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아이는 내게 세상 그 어떤 축복과 선물과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소중하고 빛나는 존재이다. 내가 먼저 세상에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있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한 마디로 나의 전부이다.


힘은 들지만 아이들로 인해 나는 또 성장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장난감 정리함과 유아매트가 들어온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