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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May 30. 2021

술이 단데 네 앞에선 안 넘어가더라.

술이 좋고 술자리는 더 좋던 나였는데.

7년 전 나는 완벽하게 술을 끊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나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손목 스냅을 이용해 한 번에 깊게 꺾어야 소주의 달달한 맛을 유지한 채 오래도록 소주를 마실 수 있다는 걸 채득 했다.


혀에 닿는 순간이 짧을수록, 입에 머금고 있는 시간이 짧을수록 소주는 달았고 취기가 올라올 정도까지 마시기가 수월했다.


나는 소주 특유의 알싸한 맛과 달달한 맛을 좋아했다. 알딸딸한 취기가 돌면 세상이 뱅글뱅글 돌았고 바닥이 들썩들썩했으며 탄산의 거품처럼 여기저기서 작은 폭죽이 뽁뽁이처럼 터댔다.


맥주를 마실 때는 안주를 많이 집어먹지 않았다. 안 그래도 맥주는 금방 배가 부른데 안주를 넉넉히 먹으면 얼마 못 가 못 마시게 니까.


나는 술을 마시면 애교가 늘었고 일탈 감을 느꼈다. 몸이 몹시 가볍고 홀가분한 기분도 들었다. 내 술버릇 중 하나는 술이 깨지 않게, 그 기분을 유지할 수 있게 계속 마시는 거여서 지금 생각해보면 음주를 하는 유형 중 위험한 부류에 속했던 거 같다.


더 큰 문제는 나는 술이 한 잔만 들어가도 온몸이 빨개지는 술을 분해하는 효소가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빨개지는 만큼 온 몸이 타오를 듯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몇 잔만 마셔도 티가 나서 술잔을 빼앗기기 일쑤일만큼 나는 사실 술을 마시기에 좋은 체질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술이, 술자리좋았다.


대학교 1학년 때 동아리 활동을 했었는데 술자리가 잦았다. 그러다 보니 학교 수업이 없는 날도 술자리에 참석하곤 했다.


하루는 술을 먹다 먹다 남자 동기들까지 테이블에 다 뻗은 날이었다. 나는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사실 조금 뿌듯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랬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비틀거렸다. 선배 하나와 동기 여자애가 날 집에 데려다줬다.


그날 밤새도록 변기를 잡고 씨름을 했다. 왜 술을 마시고 죽을 수도 있는지 몸으로 느꼈다. 구토를 할 때마다 속에서 독한 알코올 향이 올라와서 구토가 무한반복으로 이어졌다. 목구멍도 타들어가는 거 같이 따갑고 뜨거웠다.


그때 배운 교훈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안 되는구나다. 그 일로 술을 마시는 걸 포기할 생각까진 들지 않았다. 


겁도 없이 또 술을 마셨다. 


자주 마셨다.


그만큼 나는 술도 술자리도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술자리를 더 좋아했다. 약간의 취기가 돌아 마음이 풀어헤쳐진 채로 서로를 알아가는 게 좋았다.


특별한 날에는 늘 술이 빠지질 않았다.


생일날이면 일차로 한창 인기가 높았던 막걸릿집 중 한 곳을 가서 기분 좋게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 소주와는 또 다른 달달하고 톡 쏘는 맛이 막걸리가 막걸리를 불렀다. 부워라 마셔라 신나게 먹다가 이차나 삼차로 노래방을 갔다. 거기서 나는 이미 노래부를 수준이 안 될 만큼 취해 어느 정도 술이 깰 때까지 벽에 기대거나 소파에 늘어져 있었다.


나는 술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마셨다.


과일소주도 유행하던 때였다. 유행하던  건 일부로 찾아서 마실 때였다. 색과 향까지 완벽한 과일소주들은 입에 넣으면 과일을 씹을 때처럼 달큰했다. 그래서 다른 술들보다 더 빠르게 술술 들어갔는데 다음날 숙취가 말도 못 했다.


자주 가던 바에서는 맥주 뚜껑을 모으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맥주 뚜껑으로 투명하고 길쭉한 통을 다 채우면 뭔가를 주는 식이었다. 갈 때마다 투명한 하늘색을 닮은 블루하와이를 시켜먹었는데도 통이 꽤 빨리 찼다.


그랬던 내가 7년 전 완전히 술을 끊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당연히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한 건 술이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술은 커녕 일을 할 때 잠이 와 눈이 벌개질지언정 커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을 만큼 아이에게 조금의 해가 갈 수 있다고 생각되는 건 덮어놓고 하지 않 때였다.


지금은 어떻게 그랬을까 나도 그런 내가 신기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아가를 가진다는 기쁨이 그 모든 걸 상쇄시켜 줄만큼 컸던 것 같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또 다른 이유로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나는 안 그래도 덜렁대고 허점투성이인 사람인데 술을 마신 상태 아이를 잘 돌볼 자신이 없었다.


한 번의 실수로 아이가 다칠 수도 있고 평생 몸이나 마음의 흉터를 가진 채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술이 정말 생각조차 나질 않았다.


아이에게 낯선 엄마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싫었다. 아직 어린아이들인데 엄마가 취한 모습을 보이면 너무 충격을 받을 거 같았다. 그리고 취해서 내 몸이나 내 감정도 제대로 못 다스리는데 아이의 말을 평소처럼 경청할 수 있을까? 내게 그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졌다.


아이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서 불안감을 안겨주고 싶지 않다. 안 그래도 엄마는 처음이라 맨 정신에도 서툰 것 투성이고 실수 투성이인데 아이들을 향한 집중력을 떨어뜨 순 없었다.


술이 술이 부른다고 취기가 떨어지는 게 아쉬워서 또 술을 마실 텐데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딱 좋아하며 자제가 될까? 10번 중 9번이 된다고 해도 나머지 한 번의 모습을 아이들이 보는 게 싫어서 주를 선택했다.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나도 신기했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내 모습이었다.


그런 이유들 때문에 첫째 아이가 생기고 7살이 된 지금까지 술을 시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술을 먹는 엄마들을 전혀 나쁘게 보지 않는다. 나보다 술을 분해하는 효소도 충분할 거고 나보다 술도 더 셀 테니까 말이다.


혹여 그렇지 않다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일까. 술을 신나게 마셔봐서 알지만 정신력으로 어느 정도 케어 가능하다는 걸 알기에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술을 마시는 엄마와 다를 뿐이다.

다른 건 말그대로 다른 거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


나도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째가 태어나고 지금까지의 나는 그저 겁이 좀 많고, 그래서 흐트러진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이는 게 무서 엄다.


나는 아이들을 키우며 매일 생각한다.

최고의 엄마는 아니더라도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는 술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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