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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Apr 28. 2021

생선 대가리만 있던 내 인생 찌개.

내가 초등학생일 때 주말이면 나의 관심사는 온통 할머니와 같이 먹는 점심 메뉴였다.     


“할머니 오늘 우리 무얼 먹어?”    


그럴 때면 할머니는 여느 때처럼 인자한 미소로 먼저 내게 답을 주셨다. 할머니의 미소는 보기만 해도 편안해지는 마법의 물약 같았다.


약간은 칼칼하면서 약간은 짭조름한 맛이 날 것만 같은 냄새가 폴폴 풍기는 냄비 하나가 밥상에 가져다 졌다.


할머니가 드디어 냄비의 뚜껑을 열었는데 생선의 몸통은 하나도 없고 생선 대가리들만 잔뜩 들어가 있었다. 할머니가 시장 생선가게에서 대가리들만 받아오셨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대가리들만 있을 수는 없다.


태어나서부터 할머니와 함께 자라서 음식의 모양이나 맛을 보고는 어지간해서 놀라는 일이 없었다. 나는 끓어오르면서 어묵과 콩이 둥둥 뜨던 구수한 청국장 하고도 밥 한 공기 뚝딱일 만큼 입맛이 토종이었다. 학교에 가져갈 도시락에도 청국장이 빠지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떤 것은 눈도 제대로 박혀있지 않은 채 생선 대가리들만 빼곡하게 누워있는 그때 그 찌개의 생김새는 25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 본 것처럼 생생하다.


그래도 나는 외할머니의 손녀. 이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외할머니의 손맛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생김새보다 맛이 더 중요하다는 걸 진즉에 깨달았으니까.


생선들은 여전히 가로누워 어딘가를 보고 있었지만(눈이 없어서 사실은 어디를 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할머니가 해준 새로운 음식을 탐험하듯 먹어볼 생각에 잔뜩 들떠 있었다.     


“할머니 이거 어떻게 먹는 거야?”    


할머니는 시범을 보이려는 듯 양쪽 팔을 걷어 부치고 여전히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이것 봐.”하며 대가리를 참 맛있게도 잡수셨다.


입에 넣어서 쪽쪽 빠는 소리가 한두 번 들리더니 생선 대가리는 금세 할머니의 입에서 가시들로 해체되어 툭툭 튀어나왔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 열심히 생선 대가리를 입에 넣고 혀를 굴려가며 발라먹어 보았다. 한두 개만 먹어봐도 뾰족뾰족하고 날카로운 부분들에 찔려서 혀는 적게 사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대신 최대한 할머니처럼 쪽쪽 소리를 내어 생선에 붙어있는 미세한 살들을 빨아들이고 양념을 빨아들이는 게 상책이었다.


입 안에서는 맛있음이 기다렸다가 펑펑 터지는 게 아니라 닿는 곳마다 여기저기서 알터지 듯 톡톡 터졌다. 너무 맛있었다. 매운 걸 잘 못 먹는데도 적당히 매콤하고 적당히 짭조름해서 밥도둑이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할머니 이거 진짜 맛있다.”    


살면서 생선 대가리만 모아서 찌개를 끓이고 그걸 그렇게 맛있게 먹은 적은 그때뿐이었다. 나는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맞은편에 앉아 할머니가 먹는 모습을 관찰하며 할머니가 먹는 대로 그대로 따라먹었다. 할머니와 내 입에서는 쪽쪽 소리가 합창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별다른 대화 없이도 무척이나 편안하고 따뜻한 점심시간이었다.


밥상에는 흐르는 물에 씻어서 물을 탈탈 털고 채반을 받친 상추도 듬뿍 쌓여있었다. 발라진 살점들을 발라먹다가 살점들이 조금 모이면 겨우 넣어 쌈을 싸 먹었다. 상추쌈에는 무로 나박 썰기를 해서 만든 섞박지를 넣어 먹기도 했다. 밥상에 있는 반찬은 그 세 가지가 다였지만 그 조화로움이 말도 못 했다. 양쪽 볼이 가득 차서 입은 쉴 새 없이 오물거리면서도,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면 나는 맛있고 좋아서 키득키득 웃으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어른이 된 지금 그 찌개를 다시 분석해보면 찌개에 들어간 건 생선 대가리 말고는 고춧가루에 간장 정도였을 것이다. 특제소스가 들어간 것도 아니고 들어간 재료도 생선 대가리 말고는 없었는데도 그 찌개가 왜 그렇게 맛있었을까.     


4살 때부터 맞벌이를 하던 엄마의 빈자리를 지켜줬던 할머니였기에 할머니는 내게 엄마 그 자체였다. 나와 할머니는 한 방을 함께 썼기 때문에 엄마 냄새보다도 외할머니 냄새에 더 익숙했다. 어쩌면 내가 움직이면 내 몸에서 외할머니 냄새가 솔솔 풍길지도 몰랐다. 근데 나는 그게 그 어떤 향수보다도 좋았다. 그만큼 할머니가 좋았고, 할머니와 함께 하는 그 시간 모두가 보호받는 것 같았고, 따뜻했다. 그러니까 나는 사실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은 다 좋았던 거 같다. 내게 엄마같았던 외할머니가 어렸을 적부터 해준 음식은 입에 맞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날 먹었던 생선 대가리 찌개는 내가 먹어 본 생선 중에 가장 귀한 것도, 가장 값비쌌던 것도 아니었다. 입에서 발라먹고 뱉어내면 목구멍으로 넘어간 생선 살보다 가시가 더 많이 나왔던 생선 대가리 찌개였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비린내가 나지 않고, 가장 간도 맞았으며, 가장 맛있게 먹은 생선은 단연코 그 생선 대가리 찌개였다. 그 생선 대가리 찌개에는 이제 다시는 맛볼 수 없는 할머니의 손녀 사랑이 양념처럼 버무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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