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작던 나는 평소에도 발목을 자주 삐끗했으며 쉽게 넘어졌다. 어디 걸려서 넘어질 때도 있었지만 왜 넘어졌지 싶은 곳에서도 잘 넘어져서 말 그대로 난 쉽게 넘어졌다.
그와 만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그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예쁜 원피스에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나갔다.
뾰족구두는 키를 커 보이게 하고좀 더 날씬해 보이게 해서 자신감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새로 산지 얼마 안 된 구두를 신고 간 게 문제였나 보다. 몇 걸음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발뒤꿈치가 까져서 쓰라리고 아팠다.
한 껏 힘을 주고 나왔는데
걸을 때마다 상처가 쓸려서 정신이 점점 아득해졌다.
고통을 견디고 숨기느라 땀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했다.앞으로 바로 걷지 못하고 비틀대다가 첫 번째로 발목을 접질렸다. 이쁘게 보이려고 신은 구두였는데 그런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짓게 돼서 아픔보다는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그런데 그 순간 나보다 놀란 그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리기 전 가엾은 아이 같았다. 내가 발목을 접질린 게 저렇게 어쩔 줄 몰라하며 슬퍼할 일인가 싶을 정도였다. 발목을 삐끗한 건 나인데 그가 가엾어 보였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스킨십이 어색했던 우리였기에 약간 삐끗한 상황에서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넘어지지도 않고 약간 휘청 한 거라서 잡았다고 해도 서로 어색했을 것이다.
나는 다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또각또각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내 속도에 맞춰 그의 발걸음이 느려지는 게 느껴졌다.
한 번 삐끗하고 나니 엄마의 구두를 신고 나온 아이처럼 이 신발이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삐끗하면서 느껴지던 통증이 걸음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사실 그대로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지금 여기까지만 보여줘도 그에게 충분히 예쁜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말이다. 발뒤꿈치도 너무 쓰라리고, 발목도 시큰거리고더 이상한 모습을 보이기 전에 얼른 집으로 도망을 쳤어야 했는데그러지를 못했다. 함께 있는 일분일초가 아까운 그런 때였으니까.
나는 처음보다 더 엉성하고 느리게 걸으며 그와 함께 점심을 먹기로 한 가게를 향해 갔다. 10분도 안 되는 거리였는데, 두 번이나 더 휘청하며 발목을 삐끗해버렸다. 세 번째 삐끗했을 때는 부끄러움도 부끄러움이지만 구두가 거추장스러워서 그 자리에서 던져버리고, 맨발로 걸어가고 싶었다. 곁에 있는 그를 보며 참았다.
세 번째 삐끗하고 나서는 그에게 거의 부축을 받고 걸었다. 만나고 난 이후로 우리 몸의 가장 많은 부분이 밀착된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겨우 식당에 도착해서 메뉴를 고르고 주문을 했다. 그는 내게 잠깐만 나갔다 온다며 헐레벌떡 뛰어나갔다.
이제 더는 한 걸음도 걸을 수 없을 만큼 발 뒤꿈치는 벗겨져 있었고, 피까지 맺혀있었다. 발목은 똑같은 쪽을 세 번이나 삐끗해서 부어올랐고 욱신욱신거렸다.
우리가 간 식당은 좌식 테이블이 있는 곳이라 기다리는 동안욱신거리는 발목을 주무르고 있었다.
그가 다시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약국 봉지가 들려있었는데, 무슨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그의 표정이 심각해 보였다.
그는 진지한데 나는 속으로 자꾸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 나왔다. 보호받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싶어서 발의 통증이 어느새 사라지는 거 같았다. 그의 이런 모습이 내게는 마취제였다.
내 행복은 거기서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여름이라혹시나 발 냄새가 날까 싶어발을 내 쪽으로 최대한 끌어당기고 앉아있던 내게 그가 발을 달라고 했다.
'아니, 아직 우리 이런 사이 아니잖아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그에게 이미 너무 부축을 받고 들어온 뒤라서 그 말을 하기에도 이상했다.그리고 우리는 스킨십이 어색할 뿐 이미 사귀기로 한 사이어서 괜찮다는 최대한 완곡한 표현을 하며 내 발을 그에게 주지 않았다.
그동안 내게 모든 걸 맞춰주던 그가 그날 그 순간만큼은 단호했다. 괜찮다며 다시 발을 달라고 했던 것이다.
나는 한 마리의 학이 날개를 접듯이 내 발을 살포시 그에게 내밀었다. 어쩔 수 없다. 이제 냄새가 나도 그가 감내를 해야 한다.
그는 뛰어가서 사 온 파스를 뜯을 생각도 없이 내 발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내 발목이 부었다며 걱정을 늘어놓으며 말이다. 이렇게 마사지를 하지 않으면 당장에 무슨 큰일이 날 것처럼 굴었다.
우리 앞에 있는 식탁에 음식이 나왔지만 그의 관심사는 오직 내 발과 발목뿐이었다. 내 뒤꿈치가 까진 것은 언제 또 보았는지 그가 가져온 약국 봉지 속에는 상처에 바르는 연고와 대일밴드도 들어있었다.
아. 사랑받는 기분이 이런 기분이구나. 이제는 내 몸이 온전히 내 것만은 아니구나. 날 소중히 대해주는 그를 위해서라도 조심하고 다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마사지를 한다고 내 발을 만진 그의 손은 우유보다 부드러웠으며, 대일밴드와 파스를 붙이는 그의 행동은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