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하영 Apr 24. 2021

시댁에서 당신에게 반한 이유.

나보다 나의 불편함에 예민한 당신께 바치는 글.

신랑은 시골에서 나고 자랐다. 집는 큰 마당이 있고 당 앞에는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만한 작은 도로가 있다. 도로 앞에는 넓은 논이 펼쳐져 있다. 네에 도 잘 없다. 근처에 세, 네 가구의 집이 있는 정도다. 슈퍼에 가려고 해도 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논 너머에는 산 둘러싸고 있다.  위로 파란 하늘이 하얗게 비친다. 

마당에 있으면  너머로 가득 찬 산이 근한 이불 같아 편안다.


도시에서 볼 수 없던 수많은 풀들과 그 사이에 군데군데 피어있는 꽃들은 햇볕에 반사되어 일렁이는 바닷물처럼 반짝거다. 어디를 보더라자연이 아름다워 눈이 맑아지고 마음까지 덩달아 맑아다. 애써 공기를 빨아들이지 않아도 맑고 쾌적한 공기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마당 옆으로는 아버님이 키우시는 갖은 농작물들이 자라고 있다. 하나하나 아버님의 손길이 닿았을 걸 생각하니 농작물들에 더 관심이 갔다.

관심은 늘 질문으로 이어졌고, 몇십 년 동안 수 없이 키웠을 농작물들의 이름을 해맑게 물어보는 내게 아버님은 늘 웃으시며 다정한 목소리로 알려주셨다.


그리고 갈 때마다 농작물들을 캐고 베고 뽑 흙을 털고 깎고 말리고 가지런히 담 우리에게 주셨다.


집 뒤로는 오솔길이 있었다. 그곳에는 밤나무가 있었는데 밤꽃이 필 때면 꽃 치고는 이질적인 냄새에 동화 속으로 이어지는 신비로운 길처럼 느껴졌다. 


조금 걸어 올라가면 언덕이 나오고 그 언덕에는 기차가 지나가는 기길이 있었다. 차가 지나가면 집에서도 소리가 들리는데 소리가 날 때면 아이가 창문으로 기차가 보이는지 찾곤 했다. 어렸을 적 신랑도 그랬을 걸 생각하니 신랑의 어린 시절을 보는 거 같아 마음이 따뜻해졌다.


처음 신랑 본가에 가서 내가 느낀 건 내가 꿈꾸던 곳이 어쩌면 이 곳일지도 모른다고 생이었다.

마당에서 기른 채소를 아와 요리를 하고 가족들과 함께 소박하지만 정성 가득한 밥상을 가운데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잠드는 것.


이 곳에는 밤이 되어도 바깥이 밝지 않아서 좋았다.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좋았다. 사방이 고요해서 바람의 숨결조차 온몸으로 느낄 수 있 좋았다. 조금만 어두워져도 이 집 안에서 가족들하고만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도 좋았다.


그가 순수하게 느껴졌던 게 이 곳에서 자라서라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




나보다 나의 불편함에 예민한 .


그곳은 다 좋은데 내게 한 가지 불편함을 안겨줬다. 방 세 개인데 화장실이 한 개뿐인 거였다. 그것도 하필 거실 한 복판에 화장실이 한 개.


그 덕분에 가족들이 거실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를 화장실에서 세세하게 다 들을 수 있었다. 반대로 화장실 소리도 밖에 다 들 거 같아서 불안한 마음이 증폭되었다.


나는 어머님도 아버님도 정말 사랑하지만 내 소리와 냄새까지도 공유하고 싶진 않았다.


예민한 내게는 차라리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다 같이 한 방에서 자도 좋으니 화장실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미 지어진 집을 바꿀 수는 없다.


내가 변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이건 내가 마음을 먹어도 잘 되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시댁에 가면 화장실 가는 걸 참기로 했다.


한 밤 자고 올 때면 처음에는 자유롭게 산책도 하고 시부모님과 얘기도 나누고 너무 편하고 즐거웠다.


그러다 배가 불편해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빨간불이 켜졌다. 신호는 오는데 가지는 못하고, 끼니마다 밥상은 차려지고.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혼자 안 먹으면 이상하니 밥을 꾸역꾸역 먹어야 했다. 먹는 속도가 느려졌다.


화장실도 참다 참다 보면 조금 괜찮아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 시간이 지나면 더 큰 고통으로 날 덮쳤다. 나는 얼굴이 노랗게 떴다.


신혼이라 신랑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는데 신랑이 내 안색이 이상한지 내게 계속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할 수 없이 나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화장실이 가고 싶은데 가질 못하겠어서 참고 있다고 했다. 그 얘기를 하면서도 나는 너무 부끄럽고 그 얘기를 해야 하는 사실이 속상해서 숨고 싶었다.


그런데 신랑은 그런 날 보고 얼마나 힘들었냐며 날 귀엽 바라봐주었다. 그러면서 진작 얘기하지 얼마나 힘들었어하며 내 손을 잡고 현관문 쪽으로 데리고 갔다. 구세주를 만난 것 같았다.


"엄마. 잠깐 나갔다 올게요. 뭐 좀 사 올 게 있어서요." 하며 날 데리고 차로 향했다.


나는 얼떨결에 차에 탔는데 신랑이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 말이 로맨틱하게 들렸다.


'아. 이제 살았나'라 탄식이 속에서 절로 나왔다.


차로 5분 거리에 역이 있었다. 시골이라 작은 역이었는데 그곳은 대합실 안에 화장실이 없고 대합실 옆 분리된 외부공간에 화장실이 있었다. 내게 이보다 더 쾌적하고 안성맞춤인 곳이 있을.


차에서 기다리는 신랑을 뒤로하고 나는 어느 때보다 기쁘고 가볍게 화장실을 향해 달려갔다.


그 후로는 시댁에 갈 때면 어른들만 모르는 우리의 외출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


신랑 내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화장실에 가고 싶지 않냐고 물어보고 내 상태를 살펴주었다.


우리 집에 화장실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예민하게 구냐고 면박을 줄 수도 있었고, 내 일 아니라고 모른 체하고 자신만 편하게 있다 갈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아 줘서 얼마나 고마는지 모른다.


내가 신경 쓰는 것도 힘든 것도 싫다고 언제든 불편한 게 있으면 얘기하라는 신랑 덕분에 나는 시댁에 가서도 끙끙 앓고 있지 않는다.


살면서 당신에게 반할 이유는 수 없이 많았다.


특히 시댁에서 내 불편함을 나보다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당신에게는 도저히 반할지 않을 가 없다. 내가 결혼한 사람이 당신이라 너무 다행이다.




작가의 이전글 철없는 딸. 뒷정리는 늘 엄마 몫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