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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Apr 23. 2021

철없는 딸. 뒷정리는 늘 엄마 몫이었다.

주말이 되면 엄마는 엄마가 운영하는 연수원겸 펜션으로 갔다.


매일 보면 더 보고 싶다고 했던가.

같이 사니까 매일 봐놓고도, 엄마는 주말이 되면 없는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우리가 오기를 바랐다. 물론 내가 낳은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였다. 겉으로 따로 표현은 하지 않지만 나와 신랑을 마음 깊이 사랑한다는 것도 안다.


엄마는 직선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단 한 번도 내게 오라고 통보하거나 명령한 적 없다. 

딸의 자유의지는 존중하지만 단지 보고 싶음을 못 참는 우리 아이들의 할머니였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네. 여기 마당에서 뛰어놀면 너무 좋겠다"


"오늘 육회 거리가 싱싱한 게 있네"등등


우회적인 표현들로 우리가 와주기를 바라고, 우리를 기다렸다.

 

코로나가 생기기 전, 우리는 수많은 엄마의 바람을 뒤로한 채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말마다 목적지를 정할 때 신랑이 엄마가 있는 연수원에 가는 게 어떻냐고 말하면 "아"하고 낮은 탄성을 내뱉어서 정확히는 엄마의 바람을 뒤로 한 건 늘 나였다.


엄마는 항상 그곳에 있고, 그 시간이 언제까지고 지속될 줄 알았.

엄마가 있는 연수원은 언제나 차선책으로 남겨두었다.


그러다 작년에 이십년 넘게 무사고 운전자인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고속도로에서 뒷 차가 엄마 차를 박았다.

엄마는 입원을 하게 됐고 주말에 연수원은 텅 비게 되었다. 물론 관리하는 분은 따로 그곳에 계셨지만 엄마가 없는 그곳은 내게 폐허처럼 느껴졌다.


처음으로 엄마 집에 엄마가 없는 경험을 하니 등줄기가 서늘하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거 같았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할 정도로 늘 씩씩하고 억척스럽던 엄마가 이렇게 약한 존재이구나.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 찾아가서 엄마를 보는데 병원복을 입고 퉁퉁부어있는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낯선 곳에서 낯선 모습이었다.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순간 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효녀가 되었다.

 

그리고 엄마가 언제까지고 그곳에서 주말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 일이 있고 나는 바로 바뀌었을까?


아니다. 그러면 철없는 딸이 아니겠지.


그 후로 몇 번만 엄마가 있는 연수원을 찾았다. 그러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까 다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엄마의 연수원을 다시 찾기 시작한 건 코로나로 갈 곳이 없어지고 나서였다. 엄마의 연수원은 제일 안전하면서 뛰어놀 수 있는 넓은 곳이었고, 도심을 벗어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였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게 나였다. 이기적인 딸.


코로나 이후로 거의 매주 엄마의 연수원을 찾다. 엄마는 그때마다 싫은 기색이나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우리 네 식구를 맞아다. 그리고서는 늘 정성 가득 밥상을 차려다. 직적 담근 장으로 제철 식재료를 무쳐 주고, 고기를 구워고 산해진미를 구해다 또 끓이고  지지고 볶아서 다.


우리가 미안해서, 엄마가 고생스러운 게 싫어서 식사거리를 사 가려 하면 매번 그곳에 먹을 게 많다고 극구 말렸다. 그 먹을 거리가 엄마의 피와 땀이 들어가고 나서야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변한다는 걸 엄마만 모르는 듯 보였다. 나는 그런 엄마가 안쓰럽고 미안했지만 엄마는 개의치 않아했다.


이제는 엄마가 해줄 때가 아니라 내가 해 드려야 할 땐데 엄마는 자꾸 해 주기만 한다. 나란 딸은 어쩜 복이 이리 많아서 엄마에게 늘 받기만 하고, 우리 엄마는 나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인데 늘 내게 모든 걸 다 주고도 더 주지 못해 안달일.


나는 미래에 내가 할머니가 돼서 엄마만큼 좋은 할머니이자,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또 느낀다. 지금 당장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딸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낳은 자식이나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내 모습이 일관되게 참 철이 없다고.


우리가 머물렀다 떠나온 연수원에는 늘 엄마가 남아있다. 우리가 미처 치우지 못하고 어지러 놓은 것들을 치우는 동안에도 엄마는 우리 생각을 하고 우리 걱정을 하겠지. 는 길에도 무얼 하나 더 싸줄까 싶어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분주기만 했던 엄마였다.


우리 밥 해 먹이고, 어지럽힌 거 치우느라 힘드니까 가지 않으려고 해도 엄마는 지금도 늘 우리를 찾아준다.


 "오늘 여기 날씨가 너무 좋다고."말이다.


그런 꽃보다 마음결이 고운 우리 엄마에게서 나 같은 딸이 태어나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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