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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May 07. 2021

먹고 마시는 모든 순간을 사랑하게 해 준 존재, 가족

사랑하는 이와 함께 또는 혼자서 음식을 먹는 게 행복한 것이라는 걸 가장 먼저 알려준 사람은 외할머니였다.


4살 때부터 맞벌이를 하던 부모님의 빈자리를 지켜줬던 할머니였기에 할머니는 내게 엄마 그 자체였다. 일하러 가는 엄마를 따라가겠다고 엄마의 다리에 붙어 울고불고하던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할머니는 늘 내 곁에서 함께 밥을 드셔주었다.


내가 음식을 맛있게 먹을 때 그 모습을 지켜보시던 할머니의 표정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 건 나인데 할머니가 더 맛있는 걸 드시고 계시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시던 그 모습.


나는 할머니의 입맛을 닮아갔다. 사랑하면 닮는 것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청국장도 양념게장도 상추에 섞박지만 넣고 싸 먹는 것도 다 할머니가 좋아하던 음식들인데 어느새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되어 있었다. 할머니와 밥을 먹는 시간은 내게 따뜻했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그다음 내게 음식을 먹는 행복을 알려준 사람은 부모님이었다.


육지에서 나고 자란 아빠와 바다에서 나고 자란 엄마는 식성이 완전 정 반대였다. 아빠는 제철 나물과 토란, 전, 면 요리를 정말 좋아하셨고 엄마는 바다에서는 나는 것은 모두 좋아하셨다. 엄마는 매운탕이 나오면 생선 눈깔을 먼저 빼먹었고 홍어 삭힌 음식을 귀하게 여기셨다. 나는 살면서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육지 음식도 바다음식도 원 없이 먹을 수 있었다. 부모님이 맛있게 잡수시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 음식들을 좋아하게 랐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만큼 여러 음식을 맛보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싱싱한 재료들을 구해 직접 음식을 해주시는 건 물론이고 회식을 한 곳이 맛있었으면 집에 오는 길에 포장을 해 오셨다. 포장이 어려울 땐, 직접 데리고 다음에 그곳을 방문해 맛을 보여셨다.     


덕분에 나는 부모님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모두 좋아하게 돼서 무적 식성이 되었다. 생간도 잘 먹었고, 선짓국도 잘 먹었고, 산 낙지도 먹고 멍게도 잘 먹었다.


아침에 일어나  제대로 안 떠지는데도 고기 먹을 수도 곱창, 막창 먹을 수 있었다. 회를 아침으로 을 수도 었다.


엄마는 20년 넘게 방문판매업을 하면서 중간에 횟집도 겸해서 하고 그 전에는 갈빗집도 했다. 그때 고기는 부위별로, 회는 밤낮으로 실컷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디 가서 입이 짧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먹을 수 있는 게 많았기 때문에 세상에는 이토록 맛있는 음식들이 차고 넘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음식을 대하는 자세에 영향을 준 건 신랑이었다.


나는 아침을 먹으면서도 점심에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하고, 점심을 먹으면서도 오늘은 어떤 간식을 먹으면 좋을까를 고민할 만큼 먹고 마시는 것에 진심이었다.


하루가 24시간 인 것도, 하루에 세끼를 먹는 것도 정해져 있는데 내 입맛을 당기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지 그 세끼 안에 그날 먹고 싶은 걸 정하는 건 고민거리였다. 하지만 사실 내게는 그 고민을 하는 순간들조차 행복한 순간이었다.     


신랑은 맛있는 걸 먹으면 맛있다 하고 마는 정도인데 나는 음식을 먹는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정말 맛있다 같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행복해했다.     


신랑은 그런 사람을 처음 본 모양이었다.


신랑이 아는 여자 중에 내가 먹는 속도도 제일 빠르고, 먹는 양도 제일 많다고 신기해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님도 고모님들도 다 소식을 하셨다.


그렇지만 신랑은 내가 거기에 맞추기를 바라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날 인정하고, 그런 내 모습을 사랑해줬다. 맛있게 먹는 걸 외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바라봐주었다.


오늘은 어떤 걸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으면    


“아는 게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은 거야.” 하고 말해주었다.     


어쩌면 내가 살면서 들어 본 음식과 관련된 말 중에 가장 달콤한 말이었다.


신랑 덕분에 음식을 먹고 마시는 모든 순간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가족들로 인해 먹고 마시는 모든 순간에 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았다.     




우리 부부는 첫째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7년째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지금 둘째가 생후 9개월이라 나 말고는 모두 일을 하러 나가기 때문에 저녁 메뉴를 정하는 건 늘 내 몫이다.     


그 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고르느라 행복했다면 지금은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떠올리고 고르는 동안 나는 행복을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고를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더 행복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웃으며 맛있게 음식을 먹을 모습을 상상하면 그 어떤 모습보다 기분이 좋고 미소가 지어지기 때문이다.     


내게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건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식사시간에 나누어 먹는 건 음식뿐만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걸 기억한다. 대화를 나누고 마음을 나누기 때문에 먹고 마시는 모든 순간이 더 소중하다. 먹고 마시는 모든 간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준 가족에게 감사하다.


우리 가족이 내게 그랬듯이, 앞으로 먹고 마시는 모든 순간에 나와 함께하는 상대가 내가 나누는 마음으로 인해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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