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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May 24. 2021

손이 많이 가는 네가 내년에도 여전히 손이 많이 가기를

너와 함께 있으면 손이 많이 가지만,마음이 가는 만큼 손이 바쁠까 싶다.

아마 하루 중 네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엄마"가 아닐까 싶다.


사실 "엄마"라고 부르기 전부터 난 언제나 3분 대기조로 너의 동태를 살피고 마음을 살피는데 소질이 있다. 엄마니까.


7살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밥이 앞에 놓여 있으면 먹여 달라고 애교를 부리는 통에 네게 밥을 거의 먹여준다.


동생이 태어나고 다시 밥을 먹여달라고 하는 거라 네게 필요한 게 밥과 반찬이 아니라 애정인 거 같아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들어주고 싶다. 


너는 겁도 많아서 처음 보는 식재료나 채소에는 거부감을 나타낼 때도 많은데 내가 먹여주다 보면 자연스레 편식하지 않는 습관을 기를 수도 있으니 1석2조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너와 관련 된 일들은 좋게 생각 할 때가 대부분이다.


아침에 일어나 네가 먹을 아침을 상에 차려놓고 널 깨우는데 거의 몇 분은 비몽사몽으로 깨서도 일어나지도 못한다. 그럼 난 팬티부터 순서대로 입히는데 잠이 덜 깬 와중에도 적재적소에 맞게 엉덩이를 들어주고 다리를 뻗어줘서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게 엄마와 자식인가 보다.

내가 해주는 건 하나도 생각이 안 나고 네가 해주는 건 모두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귀한 것들이 되는 거.


티비 틀어주고 이 닦아주고 잠이 부족한 날은 짜증 받아주고 투정 들어주고. 아침부터 너와 할 일이 많은데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 건 네가 금방 네 곁을 떠나야 하니까. 그리고서는 5시가 넘어야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네가 네 곁에서 잠시 떨어진 시간에도 네 생각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는지, 밥은 맛있게 잘 먹었는지.


유치원 차를 기다리며 서있을 때는 너희 아빠와 연애를 할 때도 만나기 전에 이렇게 설렜었나 생각할 만큼 매일 잠시 떨어졌다 만나는 건데도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네가 유치원에서 받아오는 민물고기도 민물 게도 버섯종자도 다 내 몫이 되지만 네가 그걸 들고 오면서 신나서 설명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키우는 수고쯤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네 키만 한 앵두나무에서 앵두를 딸 때도 꼭 같이 해야 하고, 여러 번 돌려본 애니메이션에서 네가 좋아하는 장면을 볼 때도 꼭 같이, 자전거를 탈 때도 꼭 바로 곁에 엄마가 있어야 너는 활짝 웃으며 네가 하던 일들에 다시 중을 한다.


내가 학생 때 즐겨하던 보드게임은 왜 아직 집에 있어 네 눈에 들어온 건지.

네가 정한 엉터리 룰에 맞춰하고 있으면 간이 너무 안 가서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한 판을 하는 동안에도 자꾸 룰이 바뀌는 통에 뭐가 뭔지도 모르겠는데 울며 겨자 먹기로 앉아있는데 너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목소리는 업이 돼있고 들떠서 그런 널 보는 재미에 진득하게 엉덩이를 붙여본다.


화투 같은 것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기똥차게 잘 찾아와 놀아달라 한다. 이번에도 룰을 정하는 건 역시나 너의 몫이다.


화투를 눈대중으로 대충 두 뭉치로 나누고 내 손과 네 손에 한 뭉치씩 나눠갖게 하고 하나씩 내서 상대가 가져가 한다.


너도 보는 눈이 있는지 화려하고 예쁜 거 대신 껍데기만 내놓는다. 그래서 나도 슬쩍 껍데기를 내놓으면 그거 안 된다고 다른 거 내놓으라고 한다.

그러다 보면 나에게는 껍데기가 모이고 온갖 화려한 패들은 네가 다 가지게 된다. 근데 그게 참 재밌나 보다. 여러 번 반복해도 지겨운 줄 모르고 또다시 하자고 한 뭉치를 손에 쥐어준다.

 

하루는 색종이를 가지고 시간을 보내주다 색종이를 가지고 더는 접을 수 있는 게 없어 나의 똥 손을 보며 자책하고 있는데, 네가 가위를 들고 왔다.


그리고는 색종이를 여러 번 접어서 가위로 문양을 내며 오리는데 나는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아이가 오릴 수 있는 문양은 한정돼 있는데 나는 그래도 그보다는 많아서 오리는 족족 아이가 우와하고 관심을 가지고 좋아해 줬기 때문이다.


종이컵과 실하나 만 있어도 너와 전화기를 만들어 한 시간도 넘게 놀 수 있고 숨는 데가 정해져 있는데도 숨바꼭질을 한 시간 넘게 하고 놀 수 있다.


네게 가장 필요한 건 우선 엄마이고 나머지 것들은 아주 작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너는 언제나 만족을 한다.


함께 손을 보태고 마음을 보태서 놀아주기만 하면 말이다,


요즘도 가끔씩 이렇게 사랑스러운 널 내가 낳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그보다 더 충격적인 건 네가 벌써 내년에 초등학교에 갈 만큼 컸다는 사실이다.


내가 함께 해주기만 해도 그 어떤 욕심도 부리지 않는 너와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잘 놀아줬을까를 생각하면 후회도 많이 되고 자책도 뒤따른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네가 놀아달라고 날 찾을 때마다 너와 함께 놀아는 건데.

 

이제 앞으로 몇 년이 됐든 간에 너와 함께 신나게 놀아보려 한다. 같이 만들고 만지고 놀 장난감이 어떤 것이 되어도 상관없이 네가 날 찾아줄 때 같이 하려 한다.


너는 내년에 초등학교 들어가면 꼭 엄마 휴대폰을 달라며 약속까지 받아냈다. 네게는 내 휴대폰이 제일 좋아 보이나 보다. 내 거면 다 좋아 보이는 널 보고 있으면 마음속에서 강아지풀로 간지럽히듯이 웃음이 새어 나온다.


네가 내 휴대폰보다 최신 기종이 더 좋다는 걸 조금 더 늦게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네가 엄마랑 노는 것 보다도 더 재미있는 게 많다는 걸 조금만 더 늦게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손이 많이 가는 네가 내년에도 여전히 손이 많이 가기를 바 본다.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너와 함께하는 시간이 좋으니까. 앞으로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널 키우며 너의 엄마가 나라는 게, 그게 자랑스럽다. 그리고 언제나 네가 좋고 사랑스러워 못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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