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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May 20. 2021

외할머니 다리가 엄마를 거쳐 내게로 왔다.

외할머니 다리를 생각하면
코끼리가 생각난다.


종아리, 허벅지 구분 없이
일자로 굵은 다리.


엄마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가 병을 얻어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그때부터

그 굵은 다리로
우리 엄마를 키워내 셨다.


그리고
쉬셔야 될 때
또다시
나를 키우셨다.

할머니는 다리가 자주 아프셨는데,
그렇다고 아프다고 티 내시는 분이 아니셨다.


할머니가 주먹으로 다리를 반복해서 치거나,
일어나실 때 평소보다 어색하고 느린 걸로
난 아픔을 감지할 수 있었다.


어린 마음에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면 되지
왜 안 하시는지 궁금할 때도 었다.


지만 할머니가 아프실 때
내가 얼마나 해맑기만 한 어린애였는지

그래서 얼마나  없었는지
생각해보면 왜 말씀을 안 하셨는지 알 거 같다.


할머니 나이가 되면
몸의 아픔 속으로 쌓이고 쌓
발효가 되려나?


그저 참으신 거지 고통이 줄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어린 내가 아플까
걱정만 하셨지 정작 할머니의  아픔은 뒷전로 밀어놓신 거다.


외할머니는 싫은 소리 한 번 한 적이 없는
살아있는 천사셨다. 다른 이를 험담하는 것도 본 적이 없다.


유독

비가 오면 

고통스러운 통증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훨씬 느려지시고, 덜 움직이셨으며,
표정이 평소보다 조금 어두웠던 거 같다.

그 다리가
엄마에게 갔다.

그리고 나에게 왔다.

엄마의 다리는 그렇게 두껍지 않고,
일자도 아니지만
엄마는 몸이 힘들 때,
다리가 아팠다.


다리가 욱신거려 잠 못 자는 밤이 늘어갔다.
저린 것도 다리였고,
붓는 것도 다리였다.


엄마의 다리는 외할머니의 다리였다.


비가 오면
어김없이
일기예보처럼
다리가 아파왔다.
다리가 천근만근 무겁고,
내가 엄마가 돼보지 않아 뭐라고 딱 잘라 표현할 순 없지만 평소와 달리 엄 다리를 불편해한 것 같다. 적어도 눈에 띄게 무거워는 했다.

엄마는
엄마 다리 자리에
외할머니 다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늘 나를 걱정했다.


엄마가 더 아플 거면서
내가 조금만 힘이 없으면,
내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면
와서 그런가 보다고
날 걱정하고 안타깝게 쳐다봤다.


그 눈빛이
이제 생각해보면
다 안다고 그래서 더 안쓰럽다고
말하는 거 같다.

내가 비가 와
힘이 없이 축 쳐져있음
다른 사람에게
우리 엄마부터
우리가 다 그런 체질이라고
설명해준다.

엄마가 없으면
이제 누가 그런 얘기를 해주지.

비가 와서
다리가 더 무겁고,
때론 저리고, 불편 수 있다는 말을
누가 해주지?


본인을 넣어가면서,
우리가 다 그런 체질이라고
날 이해해주라는 뜻을 내포한 걸
무심하게 누가 툭 던져주지?


외할머니가 없음으로써,
벌써
엄마를 전적으로 이해해주는
태양이 졌는데
내 태양이 지면
나는 정말 오장육부 중
뭐가 떨어져 나간 거처럼 아플까?

엄마가 할머니를 잃었 듯

내게도 언제 간

그런 날이 올 건데.


비가 오면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유다.




사랑하는 엄마
엄마가 없어도,
외할머니 다리가
엄마 다리가 된 거처럼,
내 다리도 엄마 다리가 될 거야.


그래서
세월이 흐를수록
엄마를 더 이해하고 아가게 될 거야.


엄마를 닮은 딸로

살 수 있게

날 낳아줘서 고마워.


우리 아프지 말고

오랫동안 행복하자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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