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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Jul 05. 2021

주말부부 후 첫 주말 풍경

집 나간 체력아 돌아와 주렴.

우리 부부는 사랑의 유통기한은 없으며 운명이 있다고 믿 로맨티스트들이다.


그런 우리도 떨어진 체력 앞에서는 별수 없었다.



집 나간 체력아 돌아와 주렴.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 보니 주말부부의 고비는 밤에 찾아왔다.


둘째는 새벽이 돼야 잠이 들었다. 리고는 새벽 언제라도 깨고 싶을 때 깨서 울음을 터뜨다. 그리고 바통터치를 하는지 곤히 잠들었던 첫째가 새벽에 한 번씩 소변을 누러 가기 위해 깼다.


원래는 둘째는 나와 함께 첫째는 신랑과 함께 자서 첫째는 신랑 담당이었는데 이제는 둘 중 누가 깨더라도 내가 깨야 다.


그러다 보니 피로가 배로 누적이 되었다.


피곤하면 목부터 붓는 나는 신랑이 오기 심하게는 아니지만 목이 부었다.


신랑이 이사한 주에 하필 회사에서도 이사를 하게 됐다. 신랑이 근무하는 부서가 모두 다른 층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 것이다. 책상부터 시작  물건들을 옮기고 세팅을 마쳤더니 온 몸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있었다고 했다. 더위를 먹은 것 같다고도 했다.


두 아이를 혼자서 보느라 목이 부있던 내가 있는 집으로 일주일 내내 이사와 야근에 시달린 더위 먹은 그가 왔다.




목요일날 둘째와 자고 있는 방에 무려 새벽 5시 47분에 첫째가 들어와 오늘은 유치원 안 가면 안되냐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자다 깬 둘째를 겨우 재우고 침대에 눕자마자 벌어진 일이었다. 


머릿속에 둘째가 다시 깨면 안 된다는 생각이 절실했기에 떼를 쓰는 아이의 음성이 커질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최대한 첫째가 엇나가지 않게 그래서 떼를 쓰는 음성이 커지지 않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자주 그렇게 유치원에 가는 일로 떼를 쓰는 아이가 아닌데 얼마나 쉬고 싶으면 새벽에 눈 뜨자마자 저럴까 하고 말이다. 여러 정황 상 아이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부랴부랴 유치원에 전화를 하고 등원차량이 오지 않게 조치를 취했다. 아이는 한 껏 들떠있었고, 말을 잘 듣겠다는 다짐도 받아냈다. 모든 게 순조로울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는 아이일 뿐. 에너지가 충만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차분하고 얌전하게 놀 수 있을까.


아이는 하루 종일 내게 꼭 달라붙어 엄마를 애타게 불렀다.


함께 팽이에 색칠을 하고 팽이를 만들었다. 어몽어스 밑그림이 그려진 부채에 색칠을 하고 부채를 완성시켰다. 함께 동물의 숲을 번갈아가며 했고, 옥상에 올라가 엄마 아빠 놀이를 하기도 했다. 아이는 만족했고, 딱 오늘만 그러고 다시 유치원을 열심히 다니기로 했다.


다음날 아이는 약속대로 유치원에 갔다.


아침에 일어나 보이는 데로 곁에 있는 사람을 깨우기 시작하는 행동을 남겨둔 채 말이다. 원래는 그러지 않았던 아이라 방심했던 우리는 돌아가며 아이에게 당했다.


동생이 귀엽다며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깨우고, 아침이라며 겨우 잠든 나를 깨우고, 신랑이 집에 왔을 때는 바로 곁에 자고 있는 신랑을 깨웠다. 안 그래도 피곤함이 온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우리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피곤의 바다에 빠진 것처럼 허덕거렸다.


설상가상으로 토요일, 형아에게 깨움을 당해 잠이 부족한 둘째가 하루 종일 칭얼댔다.


주말부부가 되고 첫 주말, 우리가 사실 함께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매일 같이 서로가 그리울 때면, 우리 이거 먹자. 저거 하자 하며 주말을 기약했기 때문이다.


막상 상황이 이러니 그 어떤 것도 기약할 수 없는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어딘가에 엉덩이만 붙이고 앉으면 똑같은 행동을 했다.

앉아 있던 자세가 점점 흘러내리고 그러다 아예 누워있다 나만 모르게 잠깐씩 졸았다.

둘 다 그러고 있는 모습이 천생연분이었다.


안색을 보며, 잠시 하품이 나와 하품을 하는 걸 보며 때로는 눈만 마주쳐도 '들어가서 좀 자'라는 말을 건넸다.


하지만 서로의 피곤함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때마다 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지금 잘 수 없는 이유를 횡설수설하며 늘어놓았다. 내가 자버리면 상대가 훨씬 더 힘들고 피곤해지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서로에게 더 도움이 되고 싶어, 서로의 곁을 더 오랜 시간 지키고 싶어 우리는 각자 자리에서 용을 썼다.


신랑은 집에 온 첫날에 소파에 앉아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들어가 자는 걸 권했다. 여러 번의 권유 끝에 마지못해 들어가서 피로만 조금 덜고는 나와 버렸다.


나는 일요일 오후가 되자 도저히 잠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얼른 가서 자라는 말에 할 수 없이 방으로 갔다.


30분만 자겠다고 했다. 30분이 지나면 꼭 깨워달라고 했다. 그런데 웬걸. 평소에 코를 골지도 않던 내가 잠결에 코 고는 소리를 들을 만큼 달게도 잤다. 무려 두 시간을 잤다.


미안하고 민망한 마음에 빼꼼 고개부터 내밀었는데 밖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신랑이 있으니 이렇게 좋은데. 이게 우리 집인데. 안도감과 함께 감사가 밀려왔다. 이렇게 오래 잤는데도 신랑은 여전히 부드럽게 날 대했다. 천국이었다.


신랑이 곁에 있으니까 너무 편안했다. 고작 며칠 떨어져 있었는데 이 편안함을 느낀 지가 꽤 오래 지난 거 같았다. 그래서 그 편안함이 눈물 나게 반가웠다.


여느 때처럼 아이 둘을 혼자 케어하지 않아도 되니 몸과 마음에 있는 근육들이 긴장을 풀었다. 아이들이 어려서 한 없이 늘어질 순 없지만 신랑 앞에서 나는 다시 어른 아이로 돌아갔다. 그래서 신랑에게 내 애칭은 아직도 '아가'일까.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떠다니는 공기처럼 익숙했으며 공기보다 더 소중했다. 연애를 시작할 때처럼 세상이 달라 보였다.


결핍 후에 오는 이 충만함이 너무나 달아서 결핍도 어쩌면 인생에서 꼭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와 다시 만난 그 시간이 너무나 황홀했다. 별 거 하지 않아도 그냥 좋았다. 여느 때처럼 배가 고파 밥을 먹었고 아이들을 눈으로 좇으면서도 대화를 나누는 여유로움을 즐겼다. 아이를 안고 건네며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 부재가 아닌 내 앞에 실존하는 그를 신기한 듯 쳐다보게 됐다.


삶은 감사로 충만한 것이었다. 이렇게도 아름다운 것이 감사한 것이 많다니!


일요일 오후가 되자 신랑은 오늘 집에 가면 안 되느냐는 말을 넌지시 꺼냈다. 챙기다 보니 짐이 생각보다 많다는 거였다. 음식을 가져가려 해도 내일 회사로 바로 가게 되면 상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그 말에 마음이 상했다. 웃으면서 넌지시 한 번 얘기했을 때는 그저 농담인 줄 알았는데, 신랑이 같은 얘기를 몇 번 더 꺼냈기 때문이다.


나는 주말부부를 해봤었기 때문에 일요일에 그가 가고 나면 함께 있을 수 있는 날이라 그런지 텅 빈자리가 얼마나 큰 지 너무나 잘 알았다. 그래서 신랑과 이번에는 꼭 월요일에 가기로 합의를 봤다. 그도 당연하다고 했었다.


그런데도 불안했던 나는 주말부부가 시작되기 전부터 여러 번 다시 물어봤다. 그때마다 신랑은 당연하다는 듯이 월요일에 간다고 했다.


그랬기에 주말부부를 시작한 첫 주에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 게 너무 속상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신랑이 내일 가겠다고 여기 있겠다고 했다. 얘기를 해보고, 부탁을 해보고 안 되면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물은 거라 했다.


하지만 이미 여러 번 본인의 의사를 얘기했는데  뜨뜻미지근하게 있겠다고 하는 건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주말부부를 하며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예민하고 어려운 문제였다. 신랑은 일요일에 가게 되면 다음날 출근이 편하고 못다 한 정리를 할 수 있어 일요일 집에 가는 걸 선호했다.


나는 주말이라고 해봤자 이틀밖에 안 되는데 일요일  같이 잠들 때까지 함께 있고 싶었다. 그와의 1분 1초가 아깝고, 적어도 그가 가지 않는 날은 마음을 놓고 있을 수 있으니 가지 않기를 바랐다.


이 문제가 가장 어려운 건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내 감정도 내 편함도 중요하지만 서로가 어떤 마음으로 그 말을 꺼내는지 알기에 의견이 다르다고 해도 잘잘못을 따질 수 없는 문제였다. 부탁하고 때로는 애원해도 안 될 때는 어쩔 수 없이 상대가 오죽하면 저렇게 까지 하겠나 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사실은 제일 현명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방에서 대화를 했다. 솔직하게 서로의 처지와 상황을 얘기했다. 신랑은 아이에게 책을 읊듯이 내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하필 그 목소리가, 그의 말투가 왜 그리 다정하게 느껴졌을까. 왜 이리 사람이 진실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사람 마음 약해지게. 신랑이 하는 말은 다 맞는 말이었고,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해가 되었다.


나는 신랑의 힘듦을 받아들였다. 월요일 아침 꽉 막힌 고속도로의 추억을 이번만큼은 안겨주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고마웠던 마음을 이렇게라도 갚아야지.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집을 나선 신랑이지만 나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두고 가는 나를 안쓰러워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의 온기가 내게 남아있으니까.




그래도 이번 주말. 우리 가족 할 껀 다 했다.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엄마가 하는 연수원에 가서 쉬는 시간을 가지면서 자연에서 맘껏 뛰놀았다.


나머지 시간은 정말 집 안에서 뒹굴뒹굴 거리며 푹 쉬었다.


둘이 앉아 아이를 돌보는 와중에 휴대폰 게임을 함께 하기도 했다. 같이 둘러앉아 맛있게 밥도 먹었다.


무엇을 하든지 늘 함께 했다. 그게 가장 중요했다. 늘 함께 했다는 것.


특별하게 정해 놓은 걸 한 건 없지만, 특별했던 주말이 가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우리 네 가족 어디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함께 보낼 수 있는 주말이 더없이 감사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에게 주말부부란 일상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파랑새를 찾아는 일 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이 사변치 말라고 신이 우리를 글게 만들어 주는 인지도 몰랐다. 


서로에게 더 꼭 맞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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