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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Jul 17. 2021

말귀 알아듣는 아들에서 글귀 좋은 아들까지.

아들아. 너의 매력은 어디까지이니?

글귀(명사) :  글을 듣고 이해하는 능력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첫째가 7살이 되자 대화를 할 때면 척하면 척이란 느낌을 받는다.


양치를 하러 오라고 부르면 곧장 달려오지 않고 지그재그를 그리며 이곳저곳을 들르고 온다. 하지만 결국 내 앞에 서 있지 않은가.


둘째를 돌보다 긴급 상황이 생겨 첫째를 애타게 부르며 필요한 걸 가져다 달라고 할 때도 그렇다. 이제는 바로 일어나 가 준다.


그런데 웬일인지 내가 직접 했으면 세 번도 더 했을 시간이 돼서야 필요로 했던 게 눈앞에 던져진다. 하지만 결국 내게로 오지 않는가.


사실 이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다.


적어도 다른 것을 가져와서 눈앞에서 해맑게 웃고 있지는 않으니 말이다. 아니면 가져오기는커녕 물구나무를 선다거나 방금 전까지는 전혀 하고 싶지 않았던 일들을 찾아 하고 있지는 않으니 말이다.


이렇듯 소통의 중요이 이렇게 크구나 7살 첫째를 보며 매일 느낀다. 말귀 알아듣는 아들에게 고마움을 느낄 때가 정말 많다.


그런 첫째가 또다시 진화한 걸 발견한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호기로운 도전이 결실을 맺게 된 아름다운 사건이기도 했다.


첫째는 7살이 되며 자기 주관이 생겼다. 차를 타는 걸 좋아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할 일이 생기면 오디오는 늘 첫째 차지가 된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덜 지루해 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즐거움 느끼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동화란 동화는 이미 섭렵한 지 오래다. 요새는 위인전까지 듣고 있는데 신나게 듣다가도 집중력이 연기처럼 퍼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도 딱 그랬다. 그래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에게


"엄마가 복덩이를 위해 쓴 글이 있는데 한 번 들어 볼래?"라는 말을 꺼냈다.


그러자 아이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는지 흔쾌히 알겠다고 말했다.


목을 가다듬고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또렷또렷한 목소리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소리로 복덩이에 관해 쓴 브런치 글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아이가 집중해서 열심히 듣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추임새를 넣거나 상황에 맞게 쿡쿡 웃어가면서 말이다. 읽는데 집중하려 노력했지만 그러고 있는 아이가 너무 신기해서 내 온 신경과 마음은 내 글을 듣고 있는 아이에게 쏠려 있었다.


나는 글을 쓸 때 쓰면서도 아이들이 대학생이나 아기 아빠가 됐을 때쯤 내 글을 읽어보고 이해할 줄 알았다.


이렇게나 빨리 내 글을 아이에게 선보이게 된 것도 계획에 없었지만 아이가 내가 아이에 관한 글을 쓴 걸 읽어주면 좋아하고 듣는 게 너무 감격스러웠다.


가방 속에 간식들을 계속해서 찾는 것처럼 끝날 때마다 "더 없어?"하고 다음 글을 찾았다. 그 모습에 얼마나 가슴 뛰던지.


읽다 읽다 더는 없다고 했을 때도 나에 관한 글을 써도 된다고 많이 쓰라고 했다. 덕분에 금부터는 본인 허가받은 글쓰기를 할 수 있게 됐다.


지금 당장 그 자리에서 써서 들려달라고도 했지만 그 정도 실력은 되지 않는다고 사실대로 말했다.


유심히 내 글을 듣고 생각을 하고 피드백을 할 만큼 우리 첫째가 커버렸다니.


학교와는 영영 만날 일이 없을 것만 같은 아가였는데. 정말 벌써 언제 이만큼.


아이가 내 글을 이해하고 들려 달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아이에 관한 일화들을 더 많이 수집하고 기록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생겼다.


근데 그게 전혀 싫지가 않다. 우리 아이가 좋다는데 해줄 수 있는 거라면 세상에서 못 해줄 게 어디 있을까. 더군다나 그게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라면 내 영혼을 불 싸질러서라도 삼일 밤낮을 쓸 수도 있다.


가장 최근에 입을 떡 벌리게 해서 잊을까 봐 바로 기록한 글이 있다.


첫째가 신나게 만들기를 하며 놀고 있는데 형아가 하는 건 다 좋아 보이는 둘째가 여느 날처럼 슬그머니 형아의 놀이를 방해하러 갔다. 그러자 그 순간 첫째가 둘째에게 한 말이다.


"내가  크면 다 물려줄 건데
돌아갈 때면 내가 번 돈도 다 물려줄 건데
너가 그렇게 할 거야?
복숭이 다 주고 가니까 좀 그러지 마.
후회할 거다. 그때 되면. 지금은 모르겠지만.
내가 크면 너꺼가 될 거야. 그러니까 나한테 좀 신경 쓰지 마."


정말 이 말이 7살 아이가 한 게 믿기지가 않아서 얼마나 놀랐던지. 복덩이는 이렇 듯 자주 우리를 놀래키고 또 그보다 더 자주 우리를 웃게 만들고 존재 자체만으로 행복감을 준다.


아이에게 오늘보다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또 하나 찾은 거 같아 마음이 뿌듯하다.


앞으로 아이에 관한 글들이 브런치를 빼곡히 채운다면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귀엽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겠는 걸 넘어서 말 감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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