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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Jul 21. 2021

주말부부의 시작. 그가 없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부재가 온전한 나의 부재로 이어졌다.

이 글을 쓰고 발행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주말부부를 하게 되면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요동치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몸살기가 있던 오늘도 마찬가지 였다. 타이레놀을 먹어가며 온 몸을 두들겨 맞는 거 같은 근육통을 버티고 씩씩하게 아이들을 케어했지만, 결국 나는 눈물을 쏟은 후 이 글을 마지막으로 퇴고하고 있다.




주말부부를 하고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태풍이 관통한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나면 유리창에 테이프도 붙이고, 시설들도 점검하고 최대한 바깥 외출도 삼간다. 하지만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해도 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절로 겸손해지는 게 인간이다.


내게 주말부부로 산다는 건 폭풍을 온몸으로 맞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 때보다 헤어짐에 대해 밝게 인사를 나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들이겠다 마음먹었었는데...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 거 같아 속상했다.


신랑의 상황이 어떤지 알아 투정도 못 부리겠다는 마음과 달라진 환경에서 비롯된 괴로운 심정이 거의 매일 같이 상충되었다.


나는 의식적으로 기를 쓰고 부정적인 감정, 슬픈 감정, 괴로운 감정, 힘든 감정은 신경도 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차라리 꺼내서 마주할 걸 그랬나 보다. 꺼내지 않고 눌러두었던 부정적이고 어두운 감정들이 나도 모르는 새 마음에 먹구름을 가득 드리웠다.


주말부부를 시작하기 전에 더 단단히 마음먹었어야 했다. 주말부부가 얼마나 힘든지, 힘들었는지 더 생생하게 기억해 냈어야 했다. 그래서 그것에 대비했어야 했는데 다 잘 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에 위로받고 있었나 보다. 닥치면 다 해 내고야 말 거라는 희망적인 생각들에 마음을 내줘버리고 미처 대비를 못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다시 겪고 싶지 않았지만 또다시 시작됐다. 심연으로 깊이깊이 가라앉은 것처럼 축 처진 나를 발견하는 날들이. 내가 제일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상태였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던 내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일상의 설렘과 행복을 아예 잃은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별 거 아닌 일들이 나를 웃음 짓게 했다. 연한 호박잎 쌈과 다시마 젓갈무침을 먹을 생각에 아침밥을 먹을 때까지 내내 즐거운 날도 있었다. 밥을 먹을 때 둘째가 울며 보채지 않은 것만으로도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느꼈다.


둘째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 새로운 걸 어느날 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경이로운 일이었다. 첫째와 와그작와그작 라면 과자를 씹어 먹으며 유치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듣는 것큰 즐거움이었다. 둘째가 첫째를 졸졸 따라다니며 함께 노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행복했다.


단지 맑개 갠 하늘에 뜬 구름을 봐도 거실에서 보이는 산에 낀 운무를 봐도 아무 느낌이 없었다. 자연을 좋아하고, 자연과 관계 된 풍경들에 흥분하고 감동을 느끼던 내가 고장나버린 것이다.


평소에 좋아하고 기를 쓰고 하려던 것들도 일제히 스톱되었다. 가장 하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했던 글쓰기가 대표적이었다. 쓰고자 하는 욕구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 일이 시들해진 것도 아니었다.


머릿속이 엉킨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이 하나가 없을 뿐인데, 내 일상이 온전히 멈춰버렸다.


당장에 닥친 일들을 해결해나가는 것만으로 벅찰 뿐이었다. 아이 둘을 씻기고 숙제를 챙겨주고 밥을 먹이고 시간을 보내주고 등등. 아직 돌도 되지 않은 둘째와 학교에 들어가기 전인 첫째는 아직도 내 돌봄이 절실했다.


거기다 둘째의 돌치레를 겪게 되자 나는 멘붕을 경험했다. 아이의 열이 떨어지지 않는 건 내가 타들어 가는 곤욕스런 일이었다. 힘이 없이 축 처진 아이를 보며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면 얼마나 빌었는지 모르겠다.


열이 날수록 아이는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낮과 밤의 경계가 모호한 돌봄의 시간들이 이어졌다. 잠도 사치였다.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혼자였다.


이미 내 에너지는 고갈됐지만 눈앞에 닥친 일들은 그럭저럭 해나갔다. 나는 생기와 생동감을 잃었지만 억척스러움과 생활력을 얻게 되었다.


저녁이 되면 괜스레 우울해졌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던 신랑 생각이 더 간절해졌기 때문이다.

함께 하루 동안 있었던 얘기를 나눌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지금 내 앞에 있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함께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몸이 그 전보다 고단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몸이 힘든 거 정도야 정말 아무렇지 않게 감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마음이었다. 마음이 외롭고 힘든 건 내가 감당하기에 벅차게만 느껴졌다.


그는 여전히 다정하고 자상하고 늘 한결같은데 난 왜 이런 생각을 하지. 죄책감이 느껴졌다. 퇴근하고 전체 열기를 해야 다 볼 수 있을 만큼 카카오톡으로 정성 들여 매일 편지를 써줬다. 나는 편지를 읽을 자격도 없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의연하지 못한 내가 미웠고, 한심했다.


주말부부를 하며 참는 연습을 했다.


아프다는 말을, 힘들다는 말을, 피곤하다는 말을 목구멍 밑으로 구겨 넣는 일을 했다.


그런데 목소리로 뱉어지지 못 한 말들은 실체가 없어 그런지 금세 힘을 잃었다.


'생각보다 별 거 아닌데 괜히 말해서 걱정시킬 뻔했네'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그러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말들을 습관처럼 뱉을 때 당장에 아파 죽겠거나 힘들어 죽겠거나 피곤해 죽겠을 때가 몇 번이나 됐을까.

그 습관적인 말이 상대의 기운을 빼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그가 곁에 없으니 오히려 그를 생각할 시간이 늘었다. 그리움이 배가 됐다.


그는 힘이 빠지는 말들은 삼키는 게 습관인 사람이었다.


대신 나비의 날갯짓처럼 나비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사소한 일이라도 그게 내가 한 일이라면 칭찬과 표현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다.


늘 그 자신보다는 내가 먹고 싶은 걸,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내가 하고 싶은 걸 고르라 말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좋은 게 본인은 행복하다 말하는 순박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잘해주기만 하면서도 미안하단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내게 모든 걸 건 사람처럼 보였다. 나도 그에게 그렇게 비쳤을까 생각해 봤지만 내 부족한 점들이 떠올라 슬퍼졌다.


그런 그를 위해 지금이라도 나에게 말고 그에게 관대한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했다.


하지만 주말부부를 하는 지금은 내게도 그에게도 점점 관대하지 못하게 된 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나를 돌보지도 못 하고 그렇다고 온전히 그를 이해하지도 못하는 내가 있었다.




주말부부를 하기 전 그가 하던 일들을 내가 하게 되면서 그의 하루를 떠올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 몫이 되어보니까, 내가 몸 소 해보니까 비로소 그가 얼마나 힘들고 고단했는지 알게 되었다.


첫째를 재우는 건 그의 몫이었다. 아이를 재우러 가면 아이는 한 시간 가까이 잠을 안 잤다. 내가 재워보니 하루 종일 집에만 있던 나도 눈꺼풀이 천근만근인데 그는 얼마나 피곤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때마다 어떻게든 견디고 버텨서 둘째와 내가 있는 방으로 와 주었다. 나와 둘째를 함께 돌보다 빠르면 한 시, 늦으면 두시가 되어서야 잠을 자러 갔다.


극도의 수면부족에 시달렸을 텐데. 극도의 피로감이 늘 그를 덮쳤을 텐데. 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싫을 만큼 피곤했을 텐데 집에서조차 정신력으로 버텼구나 생각되었다. 어쩌면 그에게 직장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곳이 집이 아니었을까. 주말부부로 한 시간이라도 늦잠을 잘 수 있게 된 게 오히려 그에게는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신랑은 퇴근하고 오면 아이들 본다고 하루 종일 얼마나 고생했냐며 매일같이 다리랑 발을 주물러 주었었다. 신랑은 나한테 귀한 사람이라 늘 아깝다고 말만 했지 실상은 신랑이 날 돌본다고 가장 몸이 축났겠구나 싶었다. 그 손과 마음의 온도를 생각하니 한 없이 따뜻했지만 또 그만큼 미안해졌다. 그에게 주말부부가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가 씻으며 함께 씻긴다며 첫째의 샤워를 시킨 것도 그였다. 그가 매일 올 때는 지금보다 훨씬 수월하고 덜 힘들었을 텐데 신랑 퇴근하고 오기 전에 첫째를 씻겨놓지 않고 뭐 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다시 매일 볼 수 있다고 해도, 맞벌이를 해서 둘 다 일을 하게 된다고 해도 직장이 먼 신랑이 오기 전에 아이 둘을 내가 꼭 씻겨 놓겠다 마음 먹었다.


그에게 자기가 있어서 오늘도 우리 가족이 아늑한 집에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었다고 꼭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요즘은 더 고생을 해서 맘이 아프다고 진심을 전하고도 싶다. 가족 내에서 자신의 몸 돌보는데만 헌신적이지 않은 그를 위해 내가 앞으로 그를 아껴주고 보듬어 주고 싶다.




주말부부로 산다는 게 생각했던 것보다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다.


하지만 주말부부가 힘이 들어 눈물이 나는 날에도, 주저 앉고 싶은 날에도 절대 무너지지는 않을거다.


서로를 아끼는 마음만 여전하다면 주말부부를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또 다시 희망을 걸어 본다. 그리고 그 희망이 이루어 지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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