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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영 Aug 09. 2021

8월의 우리를 기억하며.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엄마와 산책을 했다.




엄마는 그동안 너무 바빴다. 펜션에 연수원에 30년 넘게 한 사업에 다른 일까지 하루하루 숨 쉴틈 없이 이어졌다.


나는 휴일도 없이 일하는 엄마가 아슬아슬해 보이기도, 안쓰러울 때도 많았다. 그렇지만 말릴 수가 없었다. 린다고 해도 말려지지가 않았으니까.


엄마는 일을 하는 게 힐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을 할 수 있어 감사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를 위해 내가 그동안 할 수 있는 건 믿어주고, 응원해주고, 기도해주는 것뿐이었다.


코로나는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자력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나도 2년간 하던 일을 얼마 전 엄청난 손해 보 접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낳는 당일만 빼고, 병원에서조차 난 발주를 넣었었다. 그만큼 애착을 가지고 하던 일이었다.(폐점을 하기 전 몇 달을 고민하며 머리를 쥐어뜯었고, 폐점을 하고 난 후 며칠 동안 몸살이 났다)


코로나로 인해 엄마의 삶에도, 내 삶에도 원치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쉴틈이 생겼다.


살면서 어쩌면 매일 조금씩 내려놓는 법을 배우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쉴 새 없이 감정이 변하는 내 마음의 창을 내려놓고 자연의 창으로 바라본 세상은 늘 한결같으며 고요하고 평화롭다. 계절에 따라 잎이 풍성하기도 다 떨어져 가지만 앙상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호들갑스럽게 굴지도 생색을 내지도 않는다. 나도 자연처럼 힘든 일이든 좋은 일이든 너무 드러내 슬퍼하지도 자랑하지도 않으며 그때그때의 감정에 너무 치우지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코로나로 다들 힘든 시기에 돈을 벌기는커녕 깎아먹는 가족 구성원이 되었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땅을 파고 곤두박질쳤다. 그럴 때 내게 가장 큰 위로가 되어준 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족이었다.


신랑은 오픈하고 3개월도 채 안 돼 퍼진 코로나 바이러스를 내가 신도 아닌데 어떻게 알았겠냐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문 닫은 곳 많다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애 낳고 키우면서도 그동안 사람 관리, 매장 관리한다고 너무 고생 많았다고 애썼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폐점을 고민하고 결국 앞두고 있을 때 엄마는 내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이게 끝이 아니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이 일을 하는 동안 지금 본 금전적 손해보다 인생에서 더 뜻깊은 걸 배운 거라 생각하라고.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내가 조금만 더 이 부분을 신경 썼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결과를 맞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와 아쉬움으로 범벅된 폐점을 이제 홀가분하게 털어낼 수 있었던 것도 다 가족 덕분이었다. 진흙탕에 빠져도 아무것도 아닌 듯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게 하는 힘이 가족에게 있었다.


나는 우울했던 기억들을 뒤로한 채 나의 8월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축복과 감사로 채우기로 했다.  


이를 악물고 내년에 일에 복귀해서 이번해에 나간 돈을 다 벌고 말 거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사업을 오래 한 엄마의 가장 큰 장점은 실패를 무서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길을 찾는다는 거였. 러기 위해서 엄마는 절대 힘 빠지는 말이나  되는 경우에 관한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의 힘을 믿었다. 안 되는 것도 되도록 애쓰고 긍정적인 말을 하고, 희망의 말을 다. 그러니까 엄마의 인생은 정말 그렇게 되었다.


내게도 엄마의 유전자가 있어서 그런지, 보고 자란 게 있어서 그런지 그런 성향이 있다. 내 앞 길도 결국은 꽃길일 라고, 내가 그렇게 만들고 말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그런 내게 산책하면서 만난 저 다리는 희망 미래로 건너가는 다리 같았다. 

내가 낳은 두 아이들과 나를 낳아 준 엄마와 함께 걷는 건 내 생각보다 훨씬 환상적인 일이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어렵지 않은 걸 하고 살지 못했다. 역시 하나의 끝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처음이 되기도 한다.


'엄마. 앞으로 우리가 아무리 바빠져도 이렇게 함께 느긋하게 산책할 여유 정도는 갖자'하고

속으로 속삭였다.

아직 겉으로 이런 말을 하기에는 너무 간지럽다.

일이 너무 바빴던 엄마와는 시내를 나가본 적도 영화 한 편 보러 간 적도 없었으니까. 손잡는 것도 해보질 않아 제일 어색하다.


길을 가다 보니 엄마는 날파리를 쫒는 거라며 아이들의 자전거에 식물을 꽂아놓았다. 나만 빈 손이었다.


사진을 찍다 뒤늦게 발견한 나는 조금이라도 서운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언제나 아이들을 살뜰히 챙겨주고 온전한 사랑을 주는 엄마의 존재가 더없이 고마울 뿐이었다.


나도 이제는 알고 있었다. 엄마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내게 헌신적인 사람이란 걸. 이 세상 누구보다 날 아끼고 사랑한다는 걸. 일을 한창 하던 그때도 지금도 한 번도 엄마의 삶에서 내가 배제된 적이 없었단 걸 말이다.


그런 엄마와 평일 대낮에 함께 걸을 수 있어 꿈만 같았다.

전봇대를 이어주는 전깃줄에 자연이 옷을 입혀주고 왕관까지 씌워줬다. 사람들은 자연을 훼손시키지 못해 안달인데 자연은 사람과 자연의 경계를 두지 않는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들까지 품는다. 오늘도 자연에게서 배웠다.

이곳에 전기선들은 자연으로 들어가 늘 말끔하게 차려입고 있다. 예쁘게도 옷을 입히고 꾸며주었다. 어렸을 때 종이 인형을 가지고 놀던 생각이 나서 킥킥 웃음이 나다.

끝없이 펼쳐지는 밭을 보고 있으면 드넓은 바다를 보는 것처럼 가슴이 뻥 뚫린다. 생기 넘치는 초록의 물결이 시골의 풍성함을 대변한다. 땀 흘리고 몸을 움직여야만 먹고살 수 있다는 귀한 가르침도 준다.


아이를 키우는 지금도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나중에 일을 하더라도 일,육아 어떤 것 하나도 게을리하지 말아야지.

하늘이 정성껏 불을 지핀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족들의 밥을 짓듯이 불을 지펴 편안한 안식처를 선물할 생각다. 곧 깜깜한 밤을 불러 집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데려다 줄 거다. 잠을 불러 몸도 마음도 쉬게 해 줄 거다. 참 고마운 하늘이다.

한 시간여를 걷고 또 걸은 우리는 집에 와서 땀으로  쫄딱 젖은 채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들어오자마자 에어컨을 켰을 때는 몸속 세포 하나하나가 환호성을 질러댔다.


샤워를 하려고 든 샤워기에서는 따뜻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정말 그 어느 것 하나도 감사하지 않을 게 없었다.


잃는다는 건 다른 걸 볼 기회를 얻는 것이었고, 접는다는 건 다른 걸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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